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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ru journey Jun 08. 2022

목욕하고 낮잠자기

좋은 여행의 시작


수안보호텔에는 작은 야외 노천탕이 있다.

대중목욕탕 같은 시설로 발가벗은 채로 목욕을 하고

유리문을 열고 나가면 작은 노천탕이 있다.


발을 담가 온도를 확인한 뒤 그대로 쏙 물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어릴 적에는 엄마와 대중탕에 자주 갔었다.

어른이 되고부터는 왠지 발가벗고 엄마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어색해서 가지 않았었는데

엄마는 같이 씻던 그때를 그리워하고 있을까? 한 번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주머니 두 분이 들어오셨다.

깔깔거리는 소리와 뜨거워하며 발을 담갔다 뺐다 하시면서 탕에 들어오는 모습이

두 분이서 영락없이 친구인 것 같아 보였다. 보기 좋았다. 두 분이서 서로를 보고 웃고

침착하게 앉아 있는 나를 보고 또 웃었다.

"우리는 나이가 많은데 뜨겁다고 호들갑이고 아가씨는 편안하게 앉아있네." 라며,

어쩌면 나이는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차곡차곡 먹는 것뿐이고 마음에는 여전히 소녀들이 살고 있을까? 

중년에 같이 이런 여행을 할 친구가 나에게는 있을까. 아무래도 없을 것 같았다. 부러워졌다.


나는 참을성이 많은 편이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그리고 시끄러운 소리를 잘 안내는 편이다. 첫째여서 그랬을까. 학급 임원을 많이 해서 그랬을까. 잘 모르겠다. 잘 참고 어른스럽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 편이었다.

그러나 다행은 나의 남편을 만난 것. 

그와 함께 있으면 영락없이 어린애가 되어 버린다. 이상한 소리도 많이 내고 뛰고 까불고 뛰어 논다.

어린 시절 잘 못 그랬던 것을 이제야 보여줄 친구가 생겨서 보여주는 걸까.


남녀가 같이 들어갈 수 있는 혼성 목욕탕이 아니라면,

두 사람처럼 친구와 목욕탕에서 깔깔거리기는 힘들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굳이 목욕탕이 아니어도 같이 놀 수 있는 남편이 나에게는 있지.

얼른 목욕을 마치고 나가서 그를 만나고 싶어졌다.



목욕탕 저편으로 보이는 산맥을 보았다.

굽이굽이 아름다웠다. 우리나라의 산은 참 완만하고 아름답다.

그리고 그 뒤에 또 그 뒤에도 산이 이어진다.

그 뒤편에 해가 동그랗게 얼굴을 내밀어서, 새 날을 맞는 하늘이 발그레 물들어서 아름다웠다.



목욕을 마치고 방에 돌아온 우리는 창문을 반쯤 열어놓고 거실(같은 공간)의 바닥에 하얀 이불을 깔고 아무렇게나 누워 쿨쿨 낮잠을 잤다. 우리의 몸이 조금만 더 작아진다면 어린아이들 같을까.

따뜻한 목욕을 하고 긴장은 다 풀렸고 스트레스는 하나도 없고, 

열어놓은 창 밖에는 고요한 가운데 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더할 나위 없이 달콤한 낮잠이었다. 앞으로 좋은 여행이 될 것 만 같았다.



떠나기 전, 호텔 지배인님을 만났다.

2년 전인데도 우리를 기억해주었다. 아니, 정확히는 남편을 기억하고 있었다. 큰 키에 활짝 웃는 얼굴, 상대방에게 편하게 말을 걸고 질문을 하는 나의 남편은 어딜 가나 조금 기억될만한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옆에만 있어도 참 편하다. 질문을 통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누군가의 호의를 얻기도 하고. 옆에만 있어도 참 재미있다.


여행의 시작점으로 이곳에 오길 잘했다.

우리가 결혼하고 싶었던 곳을 한 바퀴 둘러보고 오토바이와 같이 사진도 찍고 길을 나섰다.

(어쩌다 보니 조금 인민군 같은 스타일이 되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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