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여행의 시작
수안보호텔에는 작은 야외 노천탕이 있다.
대중목욕탕 같은 시설로 발가벗은 채로 목욕을 하고
유리문을 열고 나가면 작은 노천탕이 있다.
발을 담가 온도를 확인한 뒤 그대로 쏙 물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어릴 적에는 엄마와 대중탕에 자주 갔었다.
어른이 되고부터는 왠지 발가벗고 엄마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어색해서 가지 않았었는데
엄마는 같이 씻던 그때를 그리워하고 있을까? 한 번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주머니 두 분이 들어오셨다.
깔깔거리는 소리와 뜨거워하며 발을 담갔다 뺐다 하시면서 탕에 들어오는 모습이
두 분이서 영락없이 친구인 것 같아 보였다. 보기 좋았다. 두 분이서 서로를 보고 웃고
침착하게 앉아 있는 나를 보고 또 웃었다.
"우리는 나이가 많은데 뜨겁다고 호들갑이고 아가씨는 편안하게 앉아있네." 라며,
어쩌면 나이는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차곡차곡 먹는 것뿐이고 마음에는 여전히 소녀들이 살고 있을까?
중년에 같이 이런 여행을 할 친구가 나에게는 있을까. 아무래도 없을 것 같았다. 부러워졌다.
나는 참을성이 많은 편이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그리고 시끄러운 소리를 잘 안내는 편이다. 첫째여서 그랬을까. 학급 임원을 많이 해서 그랬을까. 잘 모르겠다. 잘 참고 어른스럽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 편이었다.
그러나 다행은 나의 남편을 만난 것.
그와 함께 있으면 영락없이 어린애가 되어 버린다. 이상한 소리도 많이 내고 뛰고 까불고 뛰어 논다.
어린 시절 잘 못 그랬던 것을 이제야 보여줄 친구가 생겨서 보여주는 걸까.
남녀가 같이 들어갈 수 있는 혼성 목욕탕이 아니라면,
두 사람처럼 친구와 목욕탕에서 깔깔거리기는 힘들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굳이 목욕탕이 아니어도 같이 놀 수 있는 남편이 나에게는 있지.
얼른 목욕을 마치고 나가서 그를 만나고 싶어졌다.
목욕탕 저편으로 보이는 산맥을 보았다.
굽이굽이 아름다웠다. 우리나라의 산은 참 완만하고 아름답다.
그리고 그 뒤에 또 그 뒤에도 산이 이어진다.
그 뒤편에 해가 동그랗게 얼굴을 내밀어서, 새 날을 맞는 하늘이 발그레 물들어서 아름다웠다.
목욕을 마치고 방에 돌아온 우리는 창문을 반쯤 열어놓고 거실(같은 공간)의 바닥에 하얀 이불을 깔고 아무렇게나 누워 쿨쿨 낮잠을 잤다. 우리의 몸이 조금만 더 작아진다면 어린아이들 같을까.
따뜻한 목욕을 하고 긴장은 다 풀렸고 스트레스는 하나도 없고,
열어놓은 창 밖에는 고요한 가운데 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더할 나위 없이 달콤한 낮잠이었다. 앞으로 좋은 여행이 될 것 만 같았다.
떠나기 전, 호텔 지배인님을 만났다.
2년 전인데도 우리를 기억해주었다. 아니, 정확히는 남편을 기억하고 있었다. 큰 키에 활짝 웃는 얼굴, 상대방에게 편하게 말을 걸고 질문을 하는 나의 남편은 어딜 가나 조금 기억될만한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옆에만 있어도 참 편하다. 질문을 통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누군가의 호의를 얻기도 하고. 옆에만 있어도 참 재미있다.
여행의 시작점으로 이곳에 오길 잘했다.
우리가 결혼하고 싶었던 곳을 한 바퀴 둘러보고 오토바이와 같이 사진도 찍고 길을 나섰다.
(어쩌다 보니 조금 인민군 같은 스타일이 되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