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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ru journey Sep 23. 2022

3 모두의 할머니

엘리자베스 2세의 서거 소식

9/8


영국에 도착하기 전

남편과 나는 각자 버킷리스트를 만들었다.

남편은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을 줄줄이 적었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단 하나였다.

엘리자베스 여왕을 만나는 것.



***

어제는 한식을 먹었으니 오늘은 영국스러운 것을 먹자고 했다.

그래서 함께 셰퍼드 파이를 만들고 있었다.

앨리스가 뛰어들어오면서 말했다.

"BBC 켜봐. BBC!"


앵커가 심각한 분위기로 이야기를 시작했고 잠시 뒤에 화면이 바뀌고 공식적인 발표로 이어졌다.


"버킹엄 팰리스에서는 오늘 오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렸습니다.

그녀가 사랑하는 밸모럴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습니다."


파이를 만드느라 모두 모여있던 거실에 정적이 흘렀고

베키와 가족들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물론 나이가 있었지만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이렇게 돌아가실 줄은 몰랐다.

적어도 조금은 더 시간이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나도 물론 슬펐지만, 놀라고 슬퍼하는 영국인 가족들 사이에서 내가 더 많이 슬퍼할 수는 없는 것 같았다.


"그녀는 모두의 할머니였어."

라고 베키는 말했다. 


이번에는 총리가 추도문을 읽었다.

그리고 최초로 'God bless the King.'이라며 추도문을 마쳤다.

전에 베키가 영국의 애국가에 가사는 대부분 'God bless the Queen.'이라고 했던 게 생각났다.

그녀의 죽음과 동시에 찰스 왕세자는 찰스 왕이 되었고 이제 영국은 여왕의 나라에서 왕의 나라가 되었다.

그리고 베키도 베키의 부모님에게도 태어났을 때부터 늘 있었던 Queen이 아니라, King이라는 단어가 매우 낯설다고 했다.



***


그리고 우리는 다시 둘러앉아 함께 셰퍼드 파이를 먹으며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다시 웃고 다시 슬퍼하며 서로를 더 알아가며 저녁 시간을 보냈다.


특히 딸들이 엄마의 이름을 편하게 부르는 것이 정말 다르게 느껴졌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딸의 스케이팅 수업을 위해서 새벽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준비하고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하는 스토리에서 엄마는 역시 엄마구나 생각했다.


그들의 웰커밍 덕분에 우리는 정말 안전하게 있다.

편안하고 아늑한 방이 있다. 그리고 친구의 가족들과 친구가 되었다.


나의 하나뿐이던 버킷리스트는 영영 이룰 수 없게 되었지만,

크나 큰 소식으로 함께 슬퍼하고 공감하고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어서 감사했다.


영국에서의 세 번째 날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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