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사업의 철학
성장하는 스타트업 속에 있으면서 '어떤 사람을 채용해야 할까, 이 프로젝트는 어떤 사람에게 어떤 역할을 주어야 잘 진행될 수 있을까'와 같은 조직에 대한 고민을 할 때도 있었고, 프로세스를 세팅했지만 그 프로세스가 새로운 사람의 영입이나 업무 우선순위의 변경에 따라 무너져내리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end-user에게 지속적으로 동일한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까, 내부 리소스의 변화에 크게 영향 받지 않고 운영을 안착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와 같은 사업에 대한 고민을 할 때도 있었다. 이 책에서는 그런 고민에 대한 해결방안을 일부 찾아볼 수 있었다.
책에서는 사람에게는 기업가, 관리자, 기술자라는 세 가지 인격이 있다고 정의한다.
기업가는 우리 내면의 공상가이자 몽상가이며, 모든 인간 활동의 원동력이자 미래라는 불꽃을 당기는 상상력이다. 그리고 변화의 촉매제이다.(p.39)
관리자 인격은 실용적이다. 기업가가 뭔가를 창조하면, 관리자는 그것을 깨끗하고 질서 정연하게 정리한다. (p.41-42)
기술자는 실행하는 사람이다. 기술자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어떤 '작업 방식'에 관심이 있다. 기술자가 제 역할을 못했다면, 아무것도 제대로 마무리되지 못했을 것이다. (p.43-44)
사실 대부분의 회사는 수직적인 구조로 되어 있어, 대표는 기업가이기를, 팀장급 이상은 관리자이기를, 그리고 팀원들은 기술자이기를 은연 중에 강요한다. 하지만 나는 기업가, 관리자, 기술자 인격은 학습하거나 체득할 수 있는 역량은 아니고, 개인의 성향과 더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기술자 성향이 높은 사람에게 관리자의 역할을 맡긴다거나, 기업가 성향이 높은 사람에게 기술자 역할을 맡기게 되면 당사자는 업무에 대한 버거움을 느끼고, 동료들은 그의 성과에 대한 불만을 가지면서 조직은 삐그덕거릴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기업가-관리자-기술자를 수직적인 구조로 놓게 되면, 개인의 성향보다는 경력이나 나이에 따라 업무에 배치될 수 밖에 없고, 일을 시키는 사람과 시키는 일을 해야 하는 사람으로 구분되게 되어 역량을 발휘하는데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럼 기업가, 관리자, 기술자를 업무의 특성에 맞게 수평적으로 배치하고, 회사에 대한 기여도를 동일선상에 놓고 적절한 평가와 보상을 부여하는 것은 가능할까?
책에서는 프랜차이즈 원형이라는 표현을 써서,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서 어디에서 누가 하더라도 고객에게 동일한 가치를 줄 수 있는 사업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사실을 깨달은 레이 크록은 실패할 염려가 없는 예측 가능한 사업을 만드는 일에 착수했다. 바로 사람에 의존하는 사업이 아닌 시스템에 의존하는 사업이었다. 레이 크록이 없어도 잘될 수 있는 사업이어야 했다. (p. 114)
어떻게 하면 사업에 대한 통제력을 잃지 않으면서 고객이 원하는 걸 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고객이 원하는 결과를 사람이 아닌 시스템에 의해 제공할 수 있을까? 변덕스러운 인재를 채용하기보다는 어떻게 해야 정교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을까? (p.125, p.132)
예전에 프리미엄을 전면에 내세운 찜질방에 간 적이 있다. 시설 자체가 고급스럽기도 했지만, 좋다고 체감한 까닭은 그렇게 많은 사람이 오고가는 데에도 계속 깨끗하게 정리되고 있는 것, 수건 같은 소모적인 비품들이 계속 잘 채워져 있는 것 등 운영이 치밀하게 잘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매뉴얼과 어떤 교육이 있을까-도 궁금했지만 이런 서비스는 얼마나 지속가능할까-도 궁금했었다.
오래된 회사는 알게모르게 관습화된 업무 환경이 있다. 하지만 스타트업은 그걸 만들어나가야 하는데 직원이 입사하고 퇴사할 때마다 업무 매뉴얼이 흔들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특히, 외부 인재를 리더급으로 영입할 때 '그 사람'에게 익숙한 프로세스로 변경이 되고는 하는데, 때로는 그게 end-user에게 제공되는 서비스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스타트업은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기 위해 린하게 여러 시도를 해보며,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에 맞춰 가볍게 움직을 수 있는 조직이기도 하다. 그 안에서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업무 매뉴얼은 어떻게 안착시킬 수 있을까?
이 책은 '사라'라는 파이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에게 저자가 상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사업을 팔 수 있는 조언을 해주는 구성으로 되어 있어 쉽게 읽혔다. 다만 중간중간에 '어떤 훌륭한 청년이 있었죠! 남들은 아니라고 했지만 개의치 않고 색다른 일들을 해냈죠! 정말 대단한 청년 아닌가요? 그 청년은 바로... 나에요!' 같은 자화자찬이 있어서 읽다가 -_- 뭐지 -_- 싶은 순간도 살짝 있지만.
사업을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에서, 아니면 조직을 꾸리기 시작하는 단계에서 'R&R은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사람을 채용해서 어떤 일을 맡겨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 있다면 읽어봄직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