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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ving Tree Jan 26. 2018

엄마, 마음을 그림에 담다 I

왜 엄마이고, 왜 그림책인가? 



시카고와 한국에서 주로 아이들 하고만 상담을 했었다. 아동학대 피해자들을 많이 대하다 보니 부모님 상담이 필수였지만 부모 중 한 명이 혹은 둘 다 가해자인 경우도 적지 않았다. 가해 부모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고울 리 없었지만 피해 아동의 부모 (non-offending parent)를 깊이 이해하지도 못했던 것 같다. 특히나 아이가 없었던 나는 부모 상담에서 이런저런 이론과 방법론을 늘어놓기 일쑤였고 그것은 곧 그들에게 잔소리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성폭행 피해 아동들의 부모들, 특히 엄마들이 아이와 함께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과정을 지켜보며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모든 부모가 건강한 방법으로 아이를 도왔다고 진단할 수는 없지만 모든 부모가 아이와 함께 아파했던 마음만큼은 진심이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이 아이를 완벽하게 지킬 수도 없는 것일뿐더러 아이가 잘못되어 부모가 비난을 받을 때 묵묵히 그 비난을 견뎌내야 하는 자리인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아이를 낳고 싶다는 생각이 쉽게 들지 않았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뉴저지로 이사와 새롭게 시작한 회사는 엄마들을 위한 알코올/마약 중독 센터였다. 나는 그곳에서 약물 중독과 알코올 중독으로 힘들어하고 아파하는 엄마들과 미술치료 그룹 및 개인상담을 했다. 임신을 하고 엄마가 되는 과정에서 중독을 이겨내려는 동기와 의지가 강해지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이 중독과 싸워가는 모습 속에서 나약함보다는 강함을 보았고, 불쌍함보다는 경외감을 느꼈다. 엄마라는 새로운 위치가 한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력은 참 대단했다. 엄마가 된 후에 바라보는 엄마들에 대한 마음은 참 달랐다. 

우리가 중독과 싸우는 환자들에게 던지는 시선은 너무나 따갑고 또 차갑다. 그들을 중독으로 이끈 배경 따위를 알 필요도 없다 생각하고, 이해하려는 의지 또한 없다. 하지만 정작 그들을 만나고 속 얘기를 들어보면 분명 우리의 시선은 달라질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이들에게서 엄마가 된다는 것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 배움이 엄마로서 살고 있는 나의 많은 부분을 바꿔놓았다. 그리고 그 영향력을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엄마들과 나눌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계획한 것이 엄마들을 위한 그림책 만들기 모임이다. 중독센터에서 환자들을 더 잘 돕기 위해 시작한 커리큘럼이었지만 사실은 그 과정 가운데 가장 많은 깨달음과 선물을 가져간 사람이 나였다. 그림책 그룹을 설명하기 이전에 중독 환자라는 혹은 죄인이라는 스티그마를 가지고 힘들게 살아가야 하는 엄마들과 상담하며 느꼈던 점들을 몇 가지 얘기하고자 한다. 

1. 수치심 이겨내기
    중독 치료의 첫걸음은 자신의 수치심을 만나고 해결하는 일이다. 사회가 그들을 'ADDICT'이라는 프레임 안에 끼워 넣고 온갖 손가락질과 비난을 퍼붓는 상황에서 수치심을 느끼지 않기란 힘들다. 수치심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벼랑 끝에서 선택한 약물이 그들의 수치심을 증폭시키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들에게 놀랐던 것은 그들은 중독 환자라는 프레임을 엄마라는 프레임으로 바꿔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수치심은 어디서부터 오는가? 수치심이라는 감정이 발현될 때에는 분명 가치의 부재가 원인을 제공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떤 위치에 오르고 가치를 실현하기에 부족한 사람들이라 여기고 산다. 이쁘다고 불리기에 부족하고, 똑똑하다고 불리기에 부족하고, 현명하다고 불리기에 부족하고 능력 있다고 불리기에 부족한 사람들.. 학교에서나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언제나 구성원으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가지는가에 대해 자신이 없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나 자신을 돌아봐도 그렇다. 나는 엄마로서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 생각해 보면, 내가 엄마 노릇을 잘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는 밤을 새워서 나열해도 끝이 없다. 그 리스트가 나를 엄마로서 수치심을 느끼게 만들게 분명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 수치심을 가리고자 아이의 이쁜 모습, 엄마로서 무언가를 잘 해내는 선정된 모습을 그렇게도 집착적으로 SNS에 올리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모든 엄마가 자신이 완벽하지 않음을 알고 있다면 그래서 모든 엄마들이 수치심을 크고 작게 느끼고 있다면 사실, 수치심 해결 문제는 간단하다. 

까발리면 된다. 

중독 센터에서 엄마들은 어떤 모임이던 "Hi, my name is OOO and I am an addict."이라는 인사로 시작한다. 그곳에 있는 모두가 이미 환자임을 인정하고 시작되기 때문에 숨길 것도 포장할 것도 없다. 서로가 서로의 아픔과 연약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이해하고 있다. 수치심이 가장 위태롭게 우리를 찌를 때는 바로 누군가의 손가락질이 우리를 향해 있을 때다. 그리고 누군가를 손가락질하는 사람의 마음 너머에는 자신의 수치심을 가리고자 하는 동일한 아픔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수많은 양육서를 읽고 그 속에서 배운 것들을 나와 또 다른 엄마들을 판단하는 잣대로만 쓰고 있다면, 어쩌면 우리에겐 더 이상의 양육서는 독이 될지도 모르겠다. 아니 때로는 양육서 자체가 엄마들을 가장 많이 찌르고 판단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육아에 맞는 길도 없고 옳은 길도 없다. 내가 사는 삶이, 내가 선택한 행동이 곧 육아 방법이 된다. 여러 가지 길들 중 하나일 뿐, 맞거나 옳은 것은 아니다. 육아 방법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엄마가 되는 길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또한 내가 완벽하지 않은 것처럼 완벽한 엄마는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이렇게 어려운 길을 선택한 당신은 이미 그것 자체로 엄마가 되기에 충분하다. 엄마의 가치는 무엇을 하는 행동 (parenting)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부모라는 존재 (being parent)에서 이미 성립되어 있다. 아이와 더 잘 놀아줘서도 아니고 아이를 더 잘 훈육하기 때문도 아니다. 우리가 아이의 행동에 근거하여 사랑의 크기를 줄이거나 늘이지 않고 그들의 존재 자체만으로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느끼는 것처럼 우리 엄마들 또한 양육의 방법이나 양질을 떠나서 엄마가 될 가치가 있는 사람들임을 함께 느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중요한 것은 너의 방법이 맞는가 혹은 나의 방법이 맞는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엄마들에게 이런 유니버설 한 인사가 생겨나면 어떨까? 
"Hi, my name is OOO and I am not perfect, but worthy to be a mother."

2. 소속감 가지기 
  신기하게도 그들은 중독 센터에 와서야 소속감을 느낀다. 서로의 수치심을 인정하고 입 밖으로 내면서부터 소속감은 더 강해진다. 세상에서는 느껴볼 수 없었던 소속감이다. 중독 환자로서 연대감이 생기지만 사실은 그보다 더 엄마라는 타이틀로 인해 소속감이 깊어지는 것 같다. 소속감을 가지기 위해 나 자신을 억지로 끼워 맞출 필요도 없다. 누군가의 비위를 맞출 필요도 없고 다른 사람처럼 행동할 필요도 없다. 

내 아이가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을 때, 화내고 짜증을 낼지언정 가족 구성원에서 솎아내지 않는 것처럼, 소속감이라는 것은 조건에 의해 가입하고 탈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조금 더 그 의미를 잘 보존하자면 영어로 belongness와 fitting in의 차이라고 보면 된다 (Daring Greatly by Brene Brown).
"Fitting in is about assessing a situation and becoming who you need to be in order to be 
accepted. Belonging, on the other hand, doesn't require us to change who we are: it requires us to be who we are" - Brene Brown, <Daring Greatly>, p232
중독 치료 센터에서 엄마가 된 환자들을 받을 때, 어떠한 조건도 대지 않는다. 중독 환자이고 엄마이면 누구나 받아준다. 바로 어제까지 마약을 했을지언정 그 환자가 스스로 원할 때는 언제든 센터에 자리를 마련해 주도록 노력한다. 오직 환자를 보호하고 치료하기 위해 세워진 장소 안으로 발을 옮겨 놓으면 그때부터 환자들은 자신들의 과거가 어땠는지, 낫고자 하는 열망이 얼마나 큰지, 치료 과정을 얼마나 잘 견뎌낼 수 있는지에 따라 다른 계급이나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 모두가 센터 안에서 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구성원들이 된다. 

내가 엄마가 되고 새롭게 알게 된 직장맘과 육아맘, 이들 간의 입장 차이와 갈등은 새로운 충격이었다. 미국이라고 다를 것이 하나 없었다. 직장맘과 육아맘 사이의 은근한 신경전과 어색함이란 하얀 피부에 노란 머리 사람들에게도 다를 것 없이 느껴졌다. 엄마는 그냥 엄마지 직장맘은 뭐고 육아맘은 뭐란 말인가? 사실은 같은 팀인데.. 안타깝게도 육아맘과 직장맘은 서로 누가 더 엄마로서 혹은 여자로서 가치 있는 삶을 사는지 경쟁을 한다. 비단 육아맘/직장맘의 차이뿐 아니라 경제와 교육 면에서도 가치관과 위치에 따라 그룹이 갈리고 레이블이 붙는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없는 것조차 해내야 하는 엄마의 피곤한 삶은 이 쓸데없는 경쟁이 만들어 낸 결과물은 아닐까? 직장맘, 육아맘, 헬리콥터 맘, 타이거 맘, 요가 맘.... 이 모든 레이블들이 없어지고 우리 모두가 그냥 엄마가 될 때, 우리는 어딜 가든 엄마라는 이름만으로도 더 단단한 소속감을 느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3. 실패할 용기 얻기 
 중독 센터에 온 엄마들은 이미 한번 실패자 혹은 낙오자가 되어봤던 사람들이다. 우리가 살면서 크고 작은 실패들을 겪지만 바닥까지 내려가야 비로소 올라오기를 소망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중독이 사람을 그렇게 만든다. 내가 조절할 수 있는 행위라면 중독이 아니다. 중독은 이미 나의 조절력과 의지의 선을 넘어버린 결과로 생기는 현상이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하고 꼭 치료를 받아야 한다. 치료 결과가 항상 좋을 수만도 없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바닥에 있는 사람들 중 올라가고자 하는 목표와 희망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용기가 있는 것 같다. 그 용기 중에서 가장 빛나는 용기는 실패를 마주할 용기다. 이미 여러 번 실패해 본 사람들에게 또 한 번의 실패가 뭐 대수겠느냐 할 수 있겠지만 실패의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사람들에게 가장 아프고 두려운 것이 실패다. 실제로 중독 환자의 치료에서 긍정적이 결과를 내는 사례가 다른 환자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그만큼 어려운 것이 중독이다. 그런 이들에게 엄마가 되었기 때문에, 아이를 위해서 다시 회복을 향한 여정을 시작하기로 결심하는 모습은 경이롭다. 그들의 용기다. 과거의 실패를 마주할 용기. 

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들을 가능한 한 어려움을 겪지 않고 살게 하고 싶어 한다. 돌아가지 않고 지름길로 갈 수 있다면, 실패하지 않고 성공만 맛볼 수 있다면, 나쁜 감정은 겪지 않고 좋은 감정만 느끼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삶이 희망적인 삶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희망이란 주제를 깊이 연구한 스나이더 박사에 의하면, 희망 (Hope)이란 감정적 요소가 아닌 인지적 요소이며 적절한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한 구체적 계획을 세워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주로 부모의 모습을 보며 희망이란 요소를 학습하게 된다고도 한다. 아이들 스스로가 원하는 목표와 계획을 세우고 추진해 보다가 실패했을 때, 부모의 지지와 응원을 받고 다시 일어서서 계획을 수정하고 다시 추진해 보는 과정 자체가 희망이다. 하지만 부모들은 아이들의 실패를 아이들보다 더 무서워하고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 같다. 좋은 학교에 지원하기 위해 부모가 발로 뛰며 정보를 모으고 아이에게 맞춤형 과외나 학원을 끊어주고 필요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는 시대다. 부모의 정보력과 조부모의 재력이 아이를 성공시킨다고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렇게 스스로 목표를 정해본 적도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계획을 세워본 적도 그리고 실패하고, 실패를 견뎌내고 다시 계획을 세워본 적도 없는 아이들이 좋은 학교에 입학을 한들 사회에 나와서 독립적인 인간으로 자신의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아낼 수 있을까? 

중독 센터에서 relapse를 경험하는 환자들도 꽤나 많다. 한번 치료에 실패하고 나면 다시 세상으로 도망쳐버리는 사람도 있지만 실수를 인정하고 다시 목표를 세우는 사람들도 많다. 환자가 다시 약물에 손을 댈 수 있음을 알고 있는 치료사 입장에서 그런 싸인들이 보일 때, 장애물을 제거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그 장애물을 스스로 넘지 않는다면 언제가 더 강력한 유혹으로 다가올 장애물에 대비할 수 없다.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장애물을 뛰어넘다 넘어진 그들에게 진심으로 응원과 격려를 보내는 것이며 그들이 혼자가 아님을 알려주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부모의 역할일지 모른다. 아이의 심심함을 재밋거리로 채워주고, 아이가 겪어야 할 어려움을 대신 나서서 처리해 주고, 아이 스스로가 발견해 나가야 할 꿈을 미리 조바심 내며 결정해 버리는 해결사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세상을 마주할 용기도 배우지 못하고 실패를 통해 피어나는 희망도 맛보지 못할 것 같다. 

그래서 엄마인 나는 오늘도 실패했고 앞으로도 실패할 나의 모습에 두려움이나 부끄러움을 느끼기보단 희망이 피어나는 좋은 기회로 삼으려 노력한다. 하지만 혼자서는 힘들다. 함께 응원해주는 엄마들이 필요하다. 이런 엄마, 저런 엄마가 아닌 그저 많은 엄마들이 서로의 실패를 솔직하고 담담하게 나누고 응원하고 지지하며 가는 그림을 꿈꾼다. '엄마, 마음을 그림에 담다'라는 이런 이유에서 만들었다. 상담 프로그램이지만 예술이란 언어를 이용하여 누구보다 솔직하게 엄마의 위치에 서있는 나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고 수용하고 응원할 수 있는 통로가 되었으면 한다. 

왜 그림책인가? 는 다음 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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