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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skies Jan 07. 2019

포근하게 나를 맞아 준 시체스의 바다에 뛰어들다

시체스, 스페인

바닷가에 나가면 탁 트인 풍경에 잠시 일상의 고단함을 잊을 수 있다. 바닷바람과 파도 소리에는 어떤 힘이 있는 것 같다. 바닷바람을 맞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바닷가 풍경을 잠시 바라본다 든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는 것만으로도 내 안에 아픈 것들이 씻겨져 내려가는 것 같다. 바다를 잠시 가까이하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안에 아픈 것들을 저 멀리 가는 배에 싣고 바다 끝에다 버리고 다시 돌아와 달라고 빌었는지도 모르겠다. 


2016년 연말 동안 영국에 잠시 머무르면서 겨울이라 너무 춥고 날씨는 매일 비가 쏟아졌다. 일주일이라는 꽤 긴 시간을 머무르려고 했지만 영국 여행에 대한 기대가 높았던 탓인지 별로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일정을 변경하고 겨울에도 날씨가 따뜻하다는 영국 아래쪽에 위치한 스페인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영국을 떠나던 날, 왠 걸 햇살이 비치고 날씨가 쨍쨍했다. 내가 오는 것을 반기지 않고 떠나서 마냥 좋기라도 하듯. 어쨌든 스페인으로 향하는 길에 좋은 징조라고 느끼며 나는 비행기를 놓칠세라 전력을 다해 뛰었다. 


두어 시간 뒤에 도착한 스페인은 따뜻했고 지금까지의 유럽과는 다른 건물 스타일과 색감에 여행의 또 다른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스페인에 도착한 이튿날은 바르셀로나 옆에 위치한 바다를 볼 수 있다고 하는 시체스를 가기로 했다.


한적한 시체스 마을의 골목골목을 지나 나는 예상치 못하기라도 한 듯 시체스의 바다를 맞았다. 마을의 좁디좁은 골목길에 가려져 있던 바다는 골목길이 끝나는 곳에서 시원하게 펼쳐졌다. 


나는 그 해변가가 너무 좋아서 걷고 또 걸었다. 스페인 바다의 고요하게 파도치는 수면 아래로 그 깊이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해변가를 이쪽에서 저쪽까지 왔다 갔다 하면서 시체스의 지중해를 좋아하는 음악을 반복해 들으며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어쩐지 떠나기 싫어서 오래 시간을 있다 보니 바닷가 쪽으로 길게 뻗은 돌담 사이에서 서식하는 고양이 몇 마리 와도 마주쳤다. 나는 바로 옆에 벤치에 앉아 바닷바람을 맞으며 지중해를 바라보는 동안 돌담 위에서 하얀 고양이도 잠시 저 바다를 바라보았다. 사람을 딱히 무서워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나와 적정거리를 유지하며 우린 서로를 관찰하다가 고양이들은 이내 자기들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바닷가 구경에 지칠만 해질 즈음, 슬슬 배가 고파왔다. 해안가 근처에 있는 레스토랑에 들어가 음식을 주문했다. 어떤 게 어떤 음식인지는 몰랐지만 대충 감으로 주문하고 보니 빵 종류와 날 것 종류의 고기 음식이 나왔다. 야외에서 바닷가를 보며 맛있게 먹었다. 






서울에서도 이방인인 나는 서울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아는 곳만 가려고 하고 활동 반경은 점점 좁아졌다. 어쩐지 서울은 내가 모르는 위험이 도사리는 곳인 것만 같았고 그를 향한 내 마음의 문은 점점 닫혀갔다. 익숙함 때문일까 아니면 씻어내지 못한 상처 때문이었을까.

그런 내가, 지금껏 살던 곳과는 다른 타국이라는 곳을 왔다. 아주 낯선 곳을 매 순간 밟았고 낯선 사람들의 친절을 받았다. 그리고 시체스의 처음 보는 바다는 나를 두 팔 벌려 환영해주었고 나는 머리칼 휘날리며 그 품으로 너무도 즐겁고 포근하게 뛰어들었다. 

여기까지 오기까지 고단한 여행이었지만 저 끝을 볼 수 없는 수평선과 귓가에 들리는 음악은 잠시 방문한 시체스의 바다에서 느낀 마법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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