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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skies May 23. 2019

허름한 현실을 뛰어넘기 위해

영화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돈 키호테에 관한 영화라고 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돈 키호테가 누구인지 몰랐다. 인터넷에 간단한 검색을 해보니 원작의 돈키호테는 17세기 스페인의 라만차라는 마을에 사는 한 남자가 한창 유행하는 기사 이야기를 너무 탐독한 나머지 스스로에게 돈키호테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리고 수지타산에 밝은 소작인 산초 판사를 시종으로 데리고 모험을 떠나는 원작의 이야기였다. 


영화에서는 산초 판사의 역할을 천재 CF 감독 '토비'라는 인물이 본의 아니게 맡게 된다. 옛날 자신이 찍었던 졸업작품 '돈 키호테를 죽인 사나이'의 촬영지 스페인의 작은 마을을 다시 찾게 되고 자신의 작품에서 역할을 맡았던 사람들과 재회한다. 그곳에서 자신의 작품의 돈 키호테의 역할을 맡았던 할아버지 역시 만날 수 있게 되는데, 구둣방 주인에서 영화 속 돈 키호테로 캐스팅된 할아버지는 영화 촬영이 끝나고 자신이 진짜 돈 키호테라고 믿게 되어 미쳐버린 것이다. 


원작의 이야기를 몰랐기 때문에 영화가 판타지적인 요소를 가미한 줄 알았는데 원작의 이야기를 찾아보니 원작의 이야기와 비슷했다. 원작에서는 소작인이 돈 키호테의 시종이 된다면 영화에서는 잘 나가는 천재 감독 토비가 엉겁결에 '노망난 할아버지 돈 키호테'의 시종이 되어 모험을 떠난다. 영화에서 돈 키호테의 판타지 같은 이상과 현실을 왔다 갔다 하는 장면이 조금 어지럽다는 생각도 들고 원작의 이야기도 모르고 보았기 때문에 영화의 흐름이 어떻게 되는 건지 종잡기 힘들다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가 끝나고 서도 같이 온 친구와 영화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누는데 친구가 할아버지의 마지막 대사가 슬펐다고 왜 할아버지가 미칠 수밖에 없었는지 알 것 같았다고 했다. 

'내 이름은 하비에르 야. 보험을 팔게 생긴 구둣방 주인이지.' 

할아버지가 죽음을 코 앞에 두고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와 실제 자신의 현실을 인지한 저 짧은 대사가 나 역시 슬프게 느껴졌었다. 그렇다고 저 짧은 대사 속 할아버지가 할아버지의 전부였을까. 


현실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살기에는 우리의 꿈과 가능성이 아깝다. 할아버지가 자신을 나타내는 저 짧은 문장에만 갇혀 있었다면 비록 미쳤다고 해도 할아버지가 해낸 모험, 사랑, 용기를 결코 경험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처한 현실을 뛰어넘고자 하는 선택은 종종 비웃음을 당하고는 한다. 할아버지가 거대한 목마를 타고 연기를 보여주고는 관객들의 웃음거리가 되는 장면에서는 보통 우리가 웃음거리가 될까 봐 도저히 용기 낼 수 없는 현실들이 떠올라 씁쓸하기도 했다. 영화 속에서 할아버지는 진짜 노망난 할아버지로 나오지만 그럼으로써 우리에게 아주 강력하고 직접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이 있는 것 같다. 


'허름한 현실을 뛰어넘어 꿈에 다가가려면 이상을 품어야 한다'고.
그에 맞게 더불어 조금은 미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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