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家한식

가족의 음식, 닭백숙

더운 여름, 복날, 보신과 같은 단어를 들려주고 어떤 음식이 떠오르느냐 물었을 때,  ‘닭백숙’이라는 단어를 내놓을 사람이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나올만한 음식이지 싶다.

적당히 손질된 통 닭의 뱃속에 찹쌀과 대추, 은행, 인삼을 가득 채우고 물과 함께 커다란 솥에 넣어 오랜 시간 끓여내야 하는 그 음식은, 친숙하고 흔한 만큼 자주 먹지는 않는다. 더운 여름을 이겨낼 힘을 얻기 위해 먹는 음식으로 알려져 있는 대로, 여름 중에도 삼복인 초복, 중복, 말복에 가히 우리나라 사람의 반이 먹는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집중적으로 소비된다.

그런 닭백숙이라는 음식에, 우리 가족은 조금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내가 어렸던 시절은 먹을거리가 부족해서 끼니 걱정을 해야 한다거나, 간식 같은 건 상상도 할 수 없다거나 하던 시절은 아니었다. 그래도 요즘처럼 풍족하진 않아서 외식을 한다거나 엄마가 특별한 음식을 하는 날은 드문 편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정기적인 특별한 날에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역시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엄마는 닭백숙을 딱히 좋아하시진 않는다고 하셨다. 그건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나 내가 어른이 되고 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런데도 여름이 오고 복날이 되면 엄마는 어김없이 시장에서 닭을 사다가 닭백숙을 하셨다. 조리시간이 길기도 하거니와 다 삶아진 뜨거운 통닭의 살을 일일이 손으로 발라야 하는 번거로움에 가끔 투덜거리기도 하셨지만, 남편도 자식들도 좋아하는 요리를 복날에 거르신 적은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결혼한 지 한참 지났는데도 내가 좋아하지 않는 요리를 남편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했던 기억이 거의 없다. 만들기 까다롭거나 뒤처리가 어려운 음식은 늘 외식이라는 카드를 썼다. 닭백숙도 그런 음식 중 하나였지만 어쩐지 닭백숙은 엄마가 해주신 것을 먹어야 제대로 먹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출가한 주제에 닭백숙이 생각나면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복날이 아니어도 엄마는 늘 흔쾌히 해줄 테니 먹으러 오라고 하셨고, 우리 가족뿐 아니라 동생네 가족까지 모두 끌고 가 왁자지껄 먹었다. 가족의 음식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건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나는 닭고기의 살보다 뱃속에 가득 들어있는 찹쌀밥이 너무 좋았다. 기름진 닭 육수에 간을 한 뒤 찹쌀밥을 살살 풀어먹으면 그 쫀득하고 고소한 맛에 평소보다 과식하곤 했었다. 어렸을 때는 부엌일에 참견할 수 없었지만 나이가 든 후로 엄마와 함께 부엌일을 하면서부터는 그 찹쌀 욕심에 엄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잔뜩 넣어서 국물이 하나도 없는 닭백숙을 만들어버리곤 핀잔을 들은 적도 있다.

어린 시절 오롯이 네 사람이 둘러앉아 땀을 뻘뻘 흘리며 맛있게 먹었던 닭백숙을 이제는 세 가족이 모여 앉아 시끌시끌 먹는다. 커다란 압력솥에서 닭을 꺼내 손으로 잘게 찢고 국물을 덜어내 찹쌀밥을 담는다. 송송 썬 파를 넣고 후추를 솔솔 뿌린 닭백숙 한 그릇은 20여 년 전부터 먹어온 그 모습 그대로 다시 어린 조카의 입으로 들어간다. 반찬이라곤 잘 익은 깍두기와 김치뿐이지만 세상 화려한 어떤 음식보다 맛있다. 큰 솥 하나로 만든 음식을 모든 식구가 나누어 먹는 풍경은 소박하고, 정겹고 따뜻하다. 닭 한 마리로 만들어진 이 화목한 식탁이 어린 조카에게도 나처럼 좋은 추억으로 남아서 대물림되리라는 사실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