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뉴욕 키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eniusduck Mar 24. 2020

첼시_뉴욕 안의 베네수엘라

엘 코코테로 (El Cocotero)

미국이라는 나라의 가장 큰 특징을 꼽자면 주저하지 않고 다양성을 꼽겠다. 머릿속으로만 알고 있던 그 개성의 범위가 얼마나 협소한 것이었는가를 내 눈으로 직접 보고 깨달았을 땐 진심으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음식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맨해튼에는 세계 각국의 요리도 존재하고 있었는데, 살면서 평생  번이라도   일이 있을까 싶은 나라들의 요리를  도시에서 맛볼  있다는    혜택이. 그리고 그런 도시에 체류하면서  혜택을 누리지 않는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뉴욕에 와서 내가 베네수엘라 음식을 먹을 거라고는 솔직히 상상도 못 했다. 아니, 베네수엘라라는 나라의 음식을 평생 먹어볼 일이 있을 거라고 상상해 본 적도 없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지구 반대편에 사는 사람이 아시아 음식이라고 하면 중국과 일본만 떠올리는 것과 비슷한 걸까. 남미 음식이라고 하면 보통 브라질이나 멕시코 쪽이 잘 알려져 있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베네수엘라는 남미대륙의 북쪽에 자리 잡은 나라로 콜롬비아와 브라질 두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다른 남미대륙에 속한 나라들과 생활습관은 다른 편이지만 음식의 형태는 기본적으로 비슷하다. 직접 가서 먹어본 적은 없으니 두 나라의 음식이 실제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는 건 무리겠지만 고기나 생선소를 밀가루 반죽에 넣고 튀긴 엔빠나다는 빠스테우와 비슷하고 옥수수반죽 빵 사이에 각종 채소나 고기, 치즈 등을 넣어먹는 아레빠는 밀가루 반죽 빵에 각종 패티를 넣어먹는 따삐오까와 비슷하다.

가장 비슷하다고 생각한 건 빠베용인데, 큰 접시에 쌀밥과 팥콩, 구운 고기를 한 번에 주는 요리로 쌀밥과 팥을 주 요리로 먹는 남미 음식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베네수엘라 음식은 나라 이름 탓인지 내게는 무척 생소하다.

찾아간 가게 이름 ‘엘코코테로’는 코코넛 나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 아래 브라질이나 멕시코도 아닌 베네수엘라 음식이라고 콕 집어 간판에 써넣은걸 보면 베네수엘라만의 특징이 살아있는 음식이지 않을까 호기심이 마구마구 생겼다.


첼시의 경쾌한 밤이 느껴지는 금요일 저녁 가게 안은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시끌하다.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던 가족들과 오랜만에 만난 우리들도 안내받고 들뜬마음으로 자리에 앉았다.

메뉴판에는 온통 처음 보는 음식의 이름들이 작은 글씨로 빽빽이 적혀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끼리 머리를 맞대 봐야 결론이 나지 않아 결국 친절한 주인의 추천을 받고 설명을 들으면서 음식은 주문했다.


설명을 들으면서도 생각했지만 역시나 생경하고 흥미로왔다. 옥수수가루를 베이스로 한 음식들이 많은데 팬케이크처럼 굽거나, 만두처럼 속을 넣고 튀기거나, 바나나 잎으로 싸서 찌는 등 조리법 자체는 간단하지만 완성되어 나온 음식은 생소해서 아주 재미있었다. 유럽과 아프리카를 섞어 토속적인 느낌을 내면 이런 요리들이 나올 것 같다. 바나나를 튀겨 밥반찬으로 먹는다는 창의적인 발상도 재미있다.

처음 나온 요리는 산토스토냐스. 작은 부침개인데 옥수수가루에 튀겨 치즈 파우더를 듬뿍 뿌렸다. 까차빠 역시 옥수수 팬케이크로 두장 사이에 쫄깃한 치즈를 끼우고 크림치즈와 익힌 바나나를 얹어준다. 팬케이크라서 그런지 살짝 달콤하다. 옥수수향에 크림치즈와 바나나가 아주 잘 어울린다.


대구살을 넣은 엔빠나다, 굴라쉬 스타일의 소고기 조림과 검은콩, 쌀밥을 같이 주는 빠베용, 옥수수가루를 거칠게 갈아 기름기 없는 소고기를 싸고 그것을 다시 바나나 잎에 싸서 쪄주는 요리인 아야까 모두 생소하지만 맛있는 음식들이었다.


감자, 토마토, 양파, 시금치가 베네수엘라의 기본 식단이라는데 어째 전통 요리의 주 재료는 옥수수인 느낌이 들었다. 단 한 끼로 베네수엘라 음식을 잘 알 수는 없겠지만, 언젠가 남미를 여행하게 되는 날 뉴욕에서 먹어본 이 요리들을 회상하며 비교해 볼 즐거움을 마음속에 고이 간직해 두었다.


적당한 소란스러움에 우리도 녹아들어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 베네수엘라 요리들을 먹으며 회포를 풀었다. 뉴욕 안에 전 세계가 있다는 말이 실감 나는 식당이다.




위치 : 228 W 18th St # 1, New York, NY 10011

전화 : 212-206-8930

오픈 : (월-수)11:00-22:00, (목-토)11:00-23:00, (일)11:00-21:00

홈피 : www.elcocotero.com

매거진의 이전글 첼시 Chelsea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