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에 적응하는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첫 어린이집은 거의 한 달 반을 울며 갔고, 낮잠은 안 자고 오는 걸로 합의 아닌 합의를 봤었다. 그 후 이제야 웃으면서 잘 다녀서 한시름 놨다- 했는데 급하게 이사가 결정됐고, 적응한 이 흐름을 이어가고 싶어서 거의 곧바로 어린이집을 보냈지만.. 결국 11월부터 1월까지, 약 3달을 보낸 후 퇴소를 결정하게 됐다.
퇴소를 결정하게 된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로 선호의 기질이 가장 컸다. 선호는 예민하고 불안감이 높은 아이다. 새로운 것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시도해보기보단 오래도록 관찰하다가 본인이 할 수 있을 것 같을 때 시도하는 편이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낯선 환경을 불편해하고, 불안해한다.
새로운 어린이집에 잘 적응하는 듯싶었지만, 낮잠은 역시나 격렬하게 거부해서 3달 동안 한 번도 재운 적이 없다. 매일 아침 가기 싫다, 재미없다- 이야기를 하면서 가고, 돌아오는 길에 오늘 재미있었어? 물어보면 입을 꾹- 다물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것저것 찾아봤는데 어린이집과 관련된 이야기 자체를 꺼내지 않는 것도 방법이라는 말에 오늘은 어땠는지, 뭘 하고 놀았는지- 같은 것도 물어보지 않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이집을 가기 싫어하는 마음은 점점 커졌다. 집이 훨씬 좋고, 어린이집은 가고 싶지 않다는 것. 아빠가 회사 갈 준비를 하거나, 운동 갈 준비를 하면, 급격히 불안해하면서 나도 이제 어린이집 가야 하는 거야?라고 물어보는데, 쿨하게 이야기하긴 했지만 나도 내심 스트레스가 컸다.
이렇게까지 보내야 하나? 하는 의문. 때때로는 그래 봤자 3시간 있다가 오는 건데 왜 선호는 유독 적응을 못할까? 가면 잘 노는 것 같은데 왜 갈 때마다 그럴까? 하는 속상함.
재울 때마다 엄마, 사랑해 우리 헤어지지 말자~ 어린이집도 가지 말고~라고 이야기해서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하면서 이런저런 방법으로 넘기던 중, 선호가 불안감을 느끼는 포인트가 어린이집에 간다 = 헤어진다 인 것 같아서, 어린이집에 가는 건 헤어지는 게 아니야~ 우린 다시 만나잖아. 그럼 헤어지는 게 아니야~ 했더니 헤어지는 건 그럼 죽는 거랑 비슷한 거네?라는 말을 했었다.
그러니까 생각해보면 선호는 어린이집에 갔다가 나를 다시는 못 만나게 될까 봐 그게 계속 불안했던 거였다. 내가 늘 제시간에 데리러 가고, 데려오는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두 번째로, 아이의 짜증과 화가 늘었다는 점이다. 아이는 어린이집을 옮긴 후 걸핏하면 화를 내고 짜증을 내고 눈물을 흘렸다. 과민해졌다는 표현이 적합할 것 같다. 신경질적이고, 물건을 던진다거나 하는 폭력적인 모습을 집에서 자주 보여서, 어린이집에서도 그러는지 여쭤보니 선생님이 화들짝 놀라며 아니요? 선호가 집에서는 화를 내나요?라고 물으셨다.
어린이집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원래 집이 더 편해서 그럴 수 있어요~라고 말씀해주시긴 했지만, 화를 낼 상황에서 화를 내는 것과 이유 없이 갑자기 화를 내며 반응하는 건 다르다고 생각해서 이상하다고 느꼈다.
세 번째로, 수시로 내게 엄마 사랑해, 선호가 사랑하는 거 알아? 엄마도 선호 사랑해?라고 물으며 애정을 확인하려고 했다. 내가 카시트 옆자리에 앉지 않고 앞자리에 앉는 것만으로도 선호 사랑해?라고 물었다. 사랑을 주면서 키운다고 키운 것 같은데 왜 이런 사소한 일에 불안해할까- 걱정이 됐다.
그리고 삶과 죽음을 알게 되면서 엄마 곧 죽는 거야? 다시는 못 보는 거야? 죽지 마, 할머니가 되는 건 싫어, 내가 준비됐을 때 죽어야 해 등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또다시 불안해했다.
아직 엄마는 선호와 살 날이 70년쯤 남았을 거다- 라며 웃으며 넘기기도 해보고, 왜 자꾸 그런 말을 하냐며 네가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다그치기도 해 보고,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반응을 해봤지만 불안이 해소되는 것 같진 않았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관심을 끌려고 그런 말을 하는 건지, 정말 그런 것들이 와닿게 상상이 되어서 그런 건지..
눈앞에 엄마가 무조건 있어야 하는 상태는 아니었지만, 관심과 애정이 줄었다고 생각하면 굉장히 자주 애정을 확인하려고 했다.
네 번째로, 행동의 퇴행이 보였다. 초반에 잠깐이긴 했지만, 대변을 한 번도 팬티에 싼 적이 없었는데 한 일주일을 계속 팬티에 쌌었고, 소변도 갑자기 실수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혼자 밥을 잘 떠먹는 편이 아니긴 했지만, 선호는 못해. 떠먹여 줘. 난 혼자 못 먹어. 라며 혼자 밥을 전혀 떠먹으려고 하질 않았다.
다른 활동을 할 때도 부정적인 말을 많이 하며, 선호는 못해. 해줘 ㅠㅠ 하며 울었다. 분명 예전엔 혼자 하겠다고 난리였었는데, 너무 의외의 모습이라 왜 그럴까- 싶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고, 솔직히 화가 나기도 했었다.
다섯 번째로, 솔직히 이야기해서 바꾼 어린이집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이들을 케어하실 때 그것만으로도 바쁘실 테니 사진을 매일 찍어서 보내주셔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근데 알림장에도 오늘 뭐했는지 명확하게 쓰여있지가 않고, 사진을 붙여주시는 것도 아니고...(2달 동안 3번 붙여주심) 그렇다고 사진을 매일 보내주시는 것도 아니어서 선호도 안 말해주지, 어린이집에서도 안 말해주지- 하니 답답했다.
그리고 밥....ㅎㅎ 처음에 선호를 12시 30분에 데리러 갔었는데, 선호가 밥 먹고 한참 동안 혼자 있는데 엄마는 왜 이렇게 늦게 데리러 오냐- 빨리 왔으면 좋겠다.라고 해서 12시로 당겨서 가는데, 보통 11시 50분쯤 데리러 갔었고, 한번 11시 40분에 갔었는데 놀랍게도 그때도 밥을 다 먹고, 이도 다 닦은 상태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점..
11시 30분부터 먹는다는데 10분 만에 어떻게 밥을 먹고 양치까지 하지? 한 번은 고민하다 여쭤보니,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다 떠먹여 주신다고 이야기해주셨었다. 그냥 집에서 준 간식이 맛있었을 수도 있는데 허겁지겁 뭘 먹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냥 꼬아서 보기 시작하니 모든 것이 이상해 보였다.
어린이집을 옮기고 한 달 정도 지났을까- 폭력적인 성향이 갑자기 많이 보여서 남편과 진지하게 이야기를 많이 나눴었다. 그냥 그런 시기인 건지, 새로운 환경에 노출돼서 그런 건지, 우리 애가 약간 문제가 있는 건지. 우리의 양육태도에 문제가 있는지. 일시적인 건지, 괜찮아질 것 같은 건지.
장장 며칠에 걸쳐서 대화를 나누고, 논물을 찾아보고, 비슷한 상황의 아이를 설루션 하는 프로그램도 보며 우리가 내린 결론은 선호는 기질적으로 불안감이 높은 아이였다는 거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래와 같은 이유로 어린이집은 가는 것이 좋겠다- 가 어린이집 등원 한 달째 내린 결론이었다.
첫 번째로, 남들 다 하는데- 불안해해도 나중에는 다 적응할 텐데, 어린이집, 유치원 가는 건 일반적인 일이라는 사회적 인식 때문이었다. 엄마가 유난이다- 어린이집, 유치원을 안 보내고 싸도 보니 애가 더 소극적으로 변할 거다, 사회성이 결여될 거다- 엄마가 그렇게 만든 거다- 라는 말을 들을까 봐 솔직히 말하면 무섭다. 내 결정에 확신을 못 갖고, 조금만 더 기다려줬으면 재미있게 다닐 수 있었는데 내가 너무 크게 반응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퇴소를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퇴소를 선택하게 된 건, 남들과 꼭 똑같을 필요가 있나 싶어서였다. 그게 일반적인 일이라 할지라도 그 일반화의 기준은 무엇이며, 겨우 3시간 보내는데 애도 나도 스트레스받는데 이건 맞는 일이 아니다.라는 확신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두 번째로 비슷한 맥락인데, 불안감이 높은 아이는 오히려 그런 환경에 익숙해지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아서다. 그런데 그 과정을 어떻게 할 것이냐-인데. 나는 아이를 기다려주는 쪽을 택했었다.
낮잠을 안 자고 오는 걸로 타협하고, 언제든 친구들이랑 더 놀고 오고 싶고, 자고 오고 싶으면 이야기해달라는 것으로. 그것만으로도 내 입장에서 굉장히 많은 부분을 아이에게 맞춰주고 기다려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그게 아니었던 것 같다.
아이의 불안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화가 많아지고 과민해지니 매일 어린이집에 가고(불안한 환경에 반복적으로 노출), 제시간에 데리러 가는 걸 보여준다 하더라도(불안감 해소) 불안감이 사라지는 쪽이 아니겠구나 싶었다. 그냥 새로운 환경에 적응시켜주는 과정이 꼭 어린이집일 필요는 없겠다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3달 동안 선호의 상태는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하고, 광주 어린이집은 싫고 울산 어린이집은 좋다고 하다가~ 밤마다 내일도 어린이집 가야 돼?라고 물어보며 기쁘지 않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나날에 이르렀다.
그러던 중 선호가 감기로 아파서 일주일을 쉬었고, 그다음 주부터 2주간은 오미크론으로 인해 어린이집이 문을 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2주간 가정보육을 하고 있는데 겨우 2주 만에 눈에 띄게 선호가 좋아졌다.
2주 만에 아이의 화가 사라졌다. 이건 남편도 느끼고, 친정 부모님도 느꼈던 부분이다. 친정부모님과 종종 영상통화를 하는데, 예전에는 반갑게 했던 것을 어느 순간부터 아무것도 아닌 일에 화를 내고 울다가 전화를 끊는 일이 많아졌었다.
그래서 한동안 전화도 안 했었는데 2주 만에 그런 공격적인 말투, 성향이 거의 없어졌다. 그리고 스스로 밥을 떠먹고, 여전히 사랑을 확인하긴 하지만 불안해하는 마음은 좀 줄었고, 집이 너ㅓㅓㅓㅓㅓ무 좋아!!!!라고 외친다. 사실... 나도 아이가 화내지 않고 차근차근 말하고 잘 웃으니 살겠다. ㅠㅠ
3월에 지금 다니는 원의 부부 중 남편이 하는 큰 어린이집으로 옮길 예정이었는데, 낮잠시간 이후 진행된다는 빽빽한 커리큘럼이 아이에게 도움이 될까- 싶고, 부부가 하는 곳인데 기조가 크게 다르겠나 싶다.
여러 가지 이유로 집에서 케어하다가 내년쯤, 유치원에 스스로 가고 싶다고 하는 날이 올 때 보내는 것이 좋겠다- 대신 집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새로운 환경에 노출시켜주고, 수영과 발레, 악기를 배워보며 사람들도 만나보는 것으로 남편과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다음날 바로 어린이집에 연락해서, 1월 말에 퇴소하는 걸로 이야기하고, 새로 옮길 어린이집에도 안 가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쳤다.
2주 동안 가정보육을 하면서 아이와 책 읽고, 같이 집 청소도 하고, 재미있는 놀이도 많이 하고, 음식도 같이 만들고, 운동도 하며 나름 하루 스케줄이 잡혔다. 그리고 정말 정말 아이가 온순해졌고, 잘 웃고, 잘 놀고, 잘 먹고, 잘 잔다. 스스로 하겠다고 건들지 말라는 게 많아져서 그것도 너무 기쁘다. 어린이집을 안 가서 그런가...? 하는 기분 탓이 아니고 정말 그렇다는 확신이 든다.
그렇지만.. 솔직한 마음으로는 지금도 선호가 다른 아이들처럼 잘 적응해서 어린이집에서 잘 놀고, 잘 자고 내일도 가고 싶어! 라며 갔으면 좋겠다. 내가 유난 떠는 엄마로 보일까 봐 무섭다.
여전히 이런 마음이 한구석에 있지만 아이를 위해 옳은 선택을 했기를, 부디 아이의 불안감이 많이 낮아지기를, 돌아보면 이때 참 잘한 결정이었어- 추억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