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고래서점에서 생긴 일
우리는 하루의 반 이상을 회사, 일, 업(業)을 위해 보낸다.
하루 8시간의 근무 시간에 출퇴근 시간과 점심시간을 포함하면 거의 10~11시간을 보내는 ‘회사’라는 곳은 감히 내 인생을 만들어 나가는 곳이라고 생각해도 무리가 없는 것 같다. 다시 말하면 회사에서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 가고, 여기서 어떤 사람들과 어떤 생각, 말을 하면서 나의 액션을 취하는지가 내 영혼의 일부를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일이 인생의 전부다. 뭐 이런 워라밸 씻나락 까먹는 소리는 아니다.)
‘시간’에 대한 진지한 철학을 가진 아이스크림 가게 <녹기 전에>의 운영자 박정수 님의 책인 <좋은 기분> 에도 머리를 떠나지 않는 글과 그 글 안에 녹아있는 가치관이 나온다.
이 한정된 혹은 영원한 시간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의식하면서 살아가야 하는지
(중략)
직장인 시절, 저를 지독하게 괴롭혔던 질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죽을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 어떤 삶의 계획을 세워야 하는가’였습니다.
(중략)
몸의 기능이 원활하지 않을 때 의존할 만한 안식처는 ‘즐거운 기억’ 뿐일 겁니다. 그래서 기억을 양적으로 많이 쌓는다면, 죽임이 조금은 두렵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다양한 기억을 가지려면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기보다는 조금이라도 늘 새로운 날들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아예 다양한 직업을 가져본다면? 하나의 직업을 가졌을 때보다 훨씬 많은 기억이 머릿속에 새겨지고, 언젠가 거스를 수 없는 죽음 앞에서도 추억의 정원을 가꾸며 고요히 잠들 수 있지 않을까요?
앞의 모든 내용을 종합해 봤을 때 내 안에서 정리된 생각은 이것이다.
죽을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은 즐거운 기억이 많은 사람인데, 내 기억과 영혼의 일부를 만들어 가는 이 ‘일’이라는 존재와 함께 하려면
내가 누구인지를 명확히 알고
나를 잃지 않고
그럼에도 먹고사니즘, 즉 일은 어떻게 할지
일놀놀일을 할지 아니면
일과 노는 것을 명확하게 구분할지
를 나름대로 정답을 찾아야겠구나.
그래서 7회 차 심리상담과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3회 차 진료 이후 나는 휴직을 했다.
거창한 준비를 하고 휴직을 한 건 아니고 ‘살아야겠다’와 ‘이렇게 살면 안 된다’가 가장 큰 이유였다. 그리고 다음날 M와 같이 강릉으로 떠났다.
M(디자이너)와 나(개발자)는 운이 좋게도 우연히 타코야끼를 먹다가 친해졌다.
그리고 강릉의 고래서점에서 웃긴 대화로 M과 함께하는 <6/1 ~ 8/31까지의 프로젝트 빠밤 (feat. H 휴직)> 이 시작되었다.
그 이야기들을 매우 캐주얼하게 (너무 캐주얼해서 어쩔 땐 그냥 손으로 휘갈겨놓은 사진 한 장이 될 수 도 있겠다.) 여기 남겨두려고 한다.
잠시 기록에 대해서….
M와 나는 2023년 5월부터 공동 Notion을 만들어서 잡다한 것들을 기록하고 있다.
너무 잡다해서 <잡동사니 (임시!)>라는 페이지라는 게 있을 정도이다.
올해가 아직 반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올해의 책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좋았던 모빌스 그룹의 <프리워커스>에는 기록에 대해서 이런 글이 있다.
기록은 우리가 갖고 있는 자산 중 가장 큰 자산이다. 내부 구성원들이 같은 지향점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떻게 시작해서 흘러왔고, 문제를 만났을 때 무슨 수로 극복했으며, 중요한 순간에 어떤 결정을 했는지를 알면 우리 자신을 파악할 수 있다. ‘맥락’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마치 나무들이 모여 숲을 이루듯 우리의 기록들이 모여 팀 전체의 맥락을 이룬다. 우리는 나무를 많이 심을수록 숲이 더 짙은 빛을 낸다고 믿는다. 기록이 쌓일수록 우리는 더 선명해진다.
우리 Notion도 이런 용도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뭐 꼭 이런 용도가 아니더라도 지금도 충분히 우리 Notion의 의미는 차고 넘친다.
그리고 나에게는 휴직과 이 프로젝트의 가장 큰 목표인
‘나에 대해서 알고 앞으로 내 삶에 맞는 먹고사니즘을 찾아나가기’에 흐름을 잃지 않고 파악하기에 기록은 꼭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 소중한 기억을 Notion에서 한 번 더 정리해서 여기에 남겨두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