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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berte Oct 21. 2024

2024년 10월 셋째 주의 명장면들

브런치의 <작가의 여정> 팝업에 다녀왔습니다. 작가 카드와 함께 영감의 문장들이 적힌 스티커들을 모아 왔습니다.


분주한 성수동을 벗어나 집으로 돌아와 가방 속 스티커들을 다시 주섬주섬 모아서 하나하나 읽어보다가 이 문장에서 잠깐 멈췄습니다.


"우리 인생에 버릴 것은 없다. 심지어 깊숙이 빠져 허우적대는 허방의 시간조차도 내 인생의 명장면인 것을. 장면들을, 이야기들을 꾹꾹 눌러 담아 모은다. 작가의 목소리가 나를 다독인다." - 고수리 작가


최근 깊은 수렁에서 간신히 빠져나와서 지나간 시간들을 조금 더 차분하게 돌이켜보니 그 모든 순간이 의미 있었고, 어쩌면 안정적이지만 무미건조했던 보통의 날들보다 더 빛나는 명장면은 많았던 거 같습니다.


앞으로의 삶도 이런 식이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이 순간들을 기록하고 싶어 이 매거진을 시작합니다.


인스타그램은 너무 인스턴트스럽고, 그저 종이 일기장에 쓰려니 백지에서는 다듬어진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이 쉽게 무너지고 자유로운 펜의 방향대로 생각도 자유로워져 그 나름의 특별한 용도가 있는 거 같아서 그 고유한 매력을 지키고 싶어 다른 용도로 쓰지 않기로 했어요.


그러다 문득 제가 즐겨 들었던 뮤직캐스트 <소이의 이상한 하루>가 떠올랐습니다. 잔잔하고, 시청각으로 전달하는 콘텐츠일 뿐인데도 아늑함이 느껴지고, 좋아하는 밀크티 한 잔 마시면서 일주일의 장면들을 더듬어보고 그중에 좋았던 것을 수집해 두는 느낌이면 참 좋겠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뮤직캐스트나 라디오처럼 글과 코너 속의 코너, 노래, 때로는 영상까지 함께 담을 수 있는 브런치가 딱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매주 일요일(늦으면 월요일..), <인생의 명장면들>이라는 이름으로 일기를 써보려 합니다. 공개된 플랫폼이지만, 마치 나만의 일기장처럼 부담 없이, 솔직하게, 때로는 감성적으로, 자주 간단하게 적어 내려 갈 거예요.




제주도에서의 목요러닝클럽을 이어 서울에서도 매주 일요일에 러닝을 하기로 했다. 체력이 정말 많이 좋아졌더라고.. 이젠 2.7Km 정도는 거뜬하다. 옆에서 같이 뛰는 J는 아직 땀을 뻘뻘 흘리고 자주 쉬지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조금씩 아주 조금씩 하지만 반드시, 나아질 거라는 걸 알고 있다.


첫 따릉이를 타봤다. 생애 첫 따릉이이자 서울에서 자전거를 타고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넘어오는 것도 처음이다.

그 많은 사람과 차들 사이에서의 자전거는 어딘지 모르게 너무 불안하고 무서웠는데, J가 같이 해보자고 했다. J와 함께라면 두려울 게 없는데, 따릉이 역시 별거 아니더라.

John Lennon - [Just Like] Starting Over (Ultimate Mix) ♬




주말 러닝처럼 주말에는 정기적으로 J와 함께 독서 시간이 있다. 이름은 거창하고도 오글거리게 H&J Book Society.(ㅋㅋ)

나는 <상처 없는 영혼>, J는 <윤광준의 생활명품 101>을 읽었다.

S에게 빌려온 오래된 책이라 그런지 넘길 때마다 꿉꿉하기도, 고소하기도 한 종이 냄새가 난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냄새가 너무 좋아

한 주의 마무리, 일요일의 마무리로 자기 전 조용하게 가지는 이 시간이 너무 좋다.

현재의 나와 비슷한 감정을 다루는 책을 읽으면, 활자를 넘어 과거의 시간들을 거슬러 서로의 등을 쓸어내려주는 느낌이 든다.


책에서 읽은 두 문장을 남겨둔다.

온통 회색으로 변해 가는 저 잔잔하고 깊은 바다를 바라보며, 나는 남아 있는 생과 사랑을 혹은 행. 복. 같은. 모든 사람들의 입가에서 늘 쓸쓸하게 사라지곤 하던 그 낱말들을 생각합니다.
그대여, 고통과 격정에 싸여 비통해하기에는 우리의 생이 너무 짧은 것은 아닐까요. 이 세상은 아주 넓은데.

♬  Talking Heads - The Book I Read (2005 Remaster) ♬




"자신만의 일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자유롭고 유연한 옷, 함께하는 소속감을 입다."

이런 식의 슬로건으로 브랜드를 만들고 있다.

자아, 자유, 일, 정체성,.. 이런 키워드들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영화 장면과 OST가 떠오른다.

그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두 장면의 대화를 넣어둔다.


Walter Mitty: When are you going to take it?

Sean O'Connell: Sometimes I don't. If I like a moment, for me, personally, I don't like to have the distraction of the camera. I just want to stay in it.

Walter Mitty: Stay in it?

Sean O'Connell: Yeah. Right there. Right here.

월터:사진은 언제 찍어요? 왜 안 찍어요?

숀:어떤 때는 안 찍어. 아름다운 순간이 오면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저 그 순간 속에 머물고 싶지.

월터:순간에 머문다고요?

숀:그래 바로 저기.. 그리고 여기


[reciting Life Magazine's Motto]

To see the world, things dangerous to come to, to see behind walls, draw closer, to find each other, and to feel. That is the purpose of life.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이다.


그리고 J가 해준 말도.

“ 너도 너 정체성에 대해서 탐구를 많이 했듯이 정체성이 무너지면 자아가 붕괴되어 버리잖아 “

José González - Stay Alive ♬




이제는 인정해야겠다. 나는 미어캣이다. 조그만 일에도 눈이 동그래지고 불안하고 겁에 질린다.

겁에 질려서 J에게 ‘네가 필요해애…………’ 라고 했던 날이 있었다.

상수동 이리카페에서 둘 다 방앗간 미숫가루를 시켜놓고 나는 호달달달 떠느라 정신없고, J는 온기와 용기를 주느라 정신이 없다.

결국 J집에서 따뜻한 이불에 돌돌 감싸져서 세상에서 제일 좋은 베개를 베고서야 잠이 든다.

아침에 일어나면 언제나 그랬듯이 그 문제는 역시나 별게 아니었고, 나는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 맞았다. 그런데 왜 자꾸 잊을까?

디어클라우드 - beside you (네 곁에 있어) ♬




적고 보니 내 인생은 친구 J와 있을 때 참 풍부해지는 것 같다.

J가 요즘 자주 따라 부르는 자이언티의 <마븝웨성>을 마지막으로 듣고

2024년 10월 셋째 주의 명장면들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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