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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트맨 라이프 Jun 27. 2023

차갑고 따뜻한 모순형용-하노이_6

베트남 하노이

"잠깐 걸을래?"

주량이 소주 반 병에서 한 병인데 왜 나는 맥주 두병에 취한 거지? 오늘 날이 좀 더워서 그런 건가 아님 2주 정도의 베트남 여행 기간 동안 너무 긴장해서일까? 마침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 나도 좀 걷고 싶었는데.

웨이터가 가져온 계산서에 내가 얼른 돈을 놓자, 뚜언이 당황하며 자기가 낸다고 한다.

" 아냐. 나 내일 한국 가는데 돈이 많이 남았어. 내가 낼게. 너 덕분에 좋은 숙소에서 잤고 여행도 잘했잖아."

그래 그렇지, 난 천사처럼 말을 했다. 그 말에 뚜언은 더 이상 돈을 내려하지 않았다.


우리는 호안끼엠 호수 주변을 걸으며 또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밤에는 절대 나돌아 다니지 않는다는 나의 원칙 때문에 밤의 호안끼엠 호수를 알지 못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조깅도 하고 걷기도 하고 있었다. 마치 한국의 석촌 호수나 올림픽 공원처럼. 호안끼엠 호수 근처의 불야성 같은 술집에서는 쿵쿵 거리는 음악소리가 들리고 루프탑 바에서는 형광색 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뚜언은 내 손을 잡았다. 나도 굳이 뿌리치지 않았고 우리는 이런저런 소소한 이야기를 하며 두 바퀴 정도 걸었다. 시간이 꽤 되어 숙소로 돌아가자고 했더니, 뚜언이 눈은 마주치지 않고 조용히 말했다.

" 나 오늘 너랑 있으면 안 돼?"

" 그게 무슨 말이야?"

"... 너랑 자고 싶다고.."

다시 머릿속에서 떠오른 단어. 맙소사... 이런 결과를 원한게 아니었는데... 

난 친절한 얼굴로 거절을 했다. 머릿속에 저울을 가지고 언제나 저울질을 했던 시절이었다. 둘 다 말없이 숙소에 돌아와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누워 MTV를 틀어놓고 LMFAO의 뮤비를 보다가 샤워를 했다.


물소리 너머로 쿵쿵 소리가 난다. 무슨 소리지? 생각을 하며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내 숙소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옷을 입은 후에 티브이와 불을 끄고 최대한 조용히 잠자는 척을 하려고 했지만, 끊임없이 문을 두드린다. 아마 뚜언일 것이다. 

“ 누구세요? ”

“ 뚜언이야 문 좀 열어봐.”

좀처럼 당황하거나 무서워하지 않는 내가 정말 무서웠던 공포의 순간이었다. 나는 배낭에 있던 3단 우선을 꺼내 들었다. 그가 만약 힘을 쓴다면 나는 우산으로 때린 후 도망쳐서 방과 조금 떨어진 화장실로 가야겠다. 화장실 문을 잠그고 이야기를 시도해 보자. 만약 모든 것에 실패한다면?? 불안과 걱정되는 마음이 교차하였지만 문을 열어야만 이 상황이 끝날 것 같아 우산을 등 뒤에 숨긴 채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뚜언은 문을 연 내 손 위로 엄청난 양의 명함을 얹은 후 말없이 뒤돌아서 층계를 내려가 버렸다. 나는 당황하여 잠시 가만히 서 있다가 우산을 내려놓고 문을 잠갔다. 명함을 이렇게 많이 주다니 도대체 무슨... 20여분의 시간 동안 나를 불안과 공포에 떨게 하면서까지 명함을 이렇게 많이 나에게 줄 일인가? 게다가 이미 그는 나에게 명함과 이메일 주소까지 다 줬는데... 이해가 가지 않아 잠시 멍하니 서서 명함을 보다 화가 나서 명함을 바닥에 던져 버렸다. 

바닥에 던져진 명함 사이에서 베트남 지폐(VNS, 동)를 발견했다. 의아한 마음에 명함과 지폐를 쳐다보며 얼마가 있는지 세어보니, 내가 맥주값으로 지불한 금액만큼인 것을 보고 그제야 나는 그가 왜 왔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너무 피곤하지만 가슴이 찡해서 훌쩍이다 잠이 들어 버렸고, 다음 날 새벽 3시 짐을 꾸려 새벽 4시에 공항으로 출발하는 밴에 탄 뒤에야 긴장이 풀려 뚜언 생각을 했다. 떠나는 나에게 왜 굳이 그 돈을 주고 싶었던 걸까? 투어 판매 수익 중 일부를 베풀려고 한 것인지 아니면 나에게 남자로 맥주를 사주고 싶어 했던 것인지... 조금 생각하다가 내가 편한 대로 그가 나에게 이성적인 관심으로 맥주 한잔을 사고 싶었던 것일 거라고 결론 내리기로 했다. 


여행 후 한참의 시간이 지났지만, 나에게 베트남 특히 하노이는 달콤 쌉싸름하다, 차갑지만 따뜻하다 이런 이중적인 그림이 그려지는 나라이다. 호찌민에 처음 간 날 트렁크를 들고 너무 많은 오토바이가 절대 비켜주지 않는 당당함에 길을 건너지 못해 40분을 건널목에 서 있는데 그런 내 손을 잡고 길을 건너 주신 베트남 여성분, 유적지를 돌아보다가 우연히 마주친 하노이의 한 여성분이 다정하게 한국말을 하며 나에게 비싼 물건을 팔려고 했던 일, 하노이 공항에서 만난 유쾌하지 않은 새치기녀 그리고 신카페 직원의 꼰대짓까지... 유쾌하거나 유쾌하지 않거나 한 일들이 가득한데 그런 마음 상함들 사이에 갑자기 두둥실 뚜언의 얼굴이 떠오른다. 

내일이면 한국으로 돌아가버릴 것이고, 다시는 보지 않을 수도 있을 한국 여자애에게 일주일치 봉급쯤 될 맥주를 사주고 자신의 인생과 꿈을 이야기해 준 뚜언. 뚜언의 사진을 보며 모순형용의 나라 베트남을 꼭 다시 가볼 거라고 다짐해 본다. 그땐 여행이 아닌 몇 달 살아보기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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