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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트맨 라이프 Jun 26. 2022

안토니 할아버지의 나라, 쿠바-3

목놓아 운다, 쿠바

"돈데 에스따 헤밍웨이 뮤제오?"

"뿌에데 아불라 잉글레스?"

아는 것이라곤 단 두 마디의 에스빠뇰. 아주 많이 늙으신 흰머리와 흰수염의 마르고 작은 할아버지를 보며 기대 없는 질문을 했다. 역시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할아버지를 뒤로하고, 다시 하얗고 기다란 길을 걸어갔다. 너무 날씨가 좋고 쨍하고 뜨거운데 마음은 먹구름이 가득하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을 하며 걷다 가져간 여행지침서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다시 걸어가야 하나, 아니면 택시를 잡아야 할까? 사실 택시라고 쓰인 차량을 주변에서 본 적이 없어서 택시를 잡는 것도 어려울 것 같은데, 택시를 어떻게 구분해야 하지? 방향이 어느 쪽일까? (한 푼이라도 아끼려면 반대 방향에서 타면 안 되는데...)

땀을 뻘뻘 흘리며, 이런 생각에 잠겨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어깨를 살짝 친다. 뒤돌아보니, 아까의 그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께서 뭐라고 이야기하시는데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멍하니 서 있는데, 내가 보고 있던 여행지침서의 사진을 가리키며 또 뭐라고 이야기하시더니,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신다. 아!! 아시는가 보다!! 나는 너무 기뻐서 할아버지를 향해 활짝 웃으며 따라갔다.


할아버지는 길 위의 조금 큰 도로로 나가시더니 버스정류장으로 나를 인도하셨다. 걸어가기엔 먼가 보다. 너무나 덥고, 너무 지쳐있고, 제대로 갈 수 있을지도 미정인 상황에서 내 머릿속은 아무 생각이 없어져버렸다. 할아버지께서 이끄는 대로 버스를 탔고, 내가 알고 있는 버스 금액을 내면서 내가 할아버지 차비까지 내드리려고 했는데, 괜찮다고 한사코 자신의 차비를 자신이 지불하셨다.

버스를 타고 5~6 정거장을 갔다. 확신하며 내렸는데, 정류장 개수를 잘못 셌구나. 버스에서 내려 조금 걸어가니, 정말 여행지침서에서 보던 "헤밍웨이 박물관" 표시가 보였다. 나는 눈물이 날듯이 기뻤다. 너무 기뻐하면서 할아버지께 머리 숙여 인사하면서 영어, 에스빠뇰, 한국어를 모두 다 사용하면서 감사 인사를 드렸다. 할아버지는 웃으며 어서 들어가라고 손짓을 했다. 나는 눈물을 글썽이며 정말 감사하다고 다시 인사를 드리고 폴짝폴짝 뛰면서 헤밍웨이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난 헤밍웨이라는 작가를 잘 모른다. 유명한 "노인과 바다"라는 책도 읽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 읽으려고 시도는 했지만 재미가 없어서 읽다가 말았던 것 같다. 무기여 잘있거라는 책 보다 영화를 먼저 알았고,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도 내 기억엔 없다. 영화를 그렇게 많이 티브이에서 해줬지만 너무 재미가 없어서 참고 보다가 결국 언제나 다른 채널로 돌려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헤밍웨이 작가가 살았던 곳을 꼭 가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들게 갔기 때문인지 더욱더 그곳이 아름답고 신비하게 느껴졌다. 다른 관람객들보다 더 꼼꼼하게 열심히 하나하나 다 보고 박물관을 나섰다.  


박물관을 나서서 처음 내렸던 곳 반대편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면 될 것이라 생각을 하고 버스 정류장을 갔다. 정류장 의자에 할아버지가 앉아 계셨다. 나는 잠깐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왜 아직 할아버지께서 앉아 계시지?라고 생각을 했다. 일을 보고 가시는 걸까?라고 생각을 하는데 할아버지께서 내 손을 잡아끌어 옆에 앉히셨다. 그리고 뭔가 말씀을 하시면서 이름이 안토니라고 하신다. 그때까지도 당황했지만, 잠시 앉아 있으면서 그가 나를 기다리신 걸 알게 되었다. 내가 또 헤맬까 봐 기다리신 것 같다. 어디까지 가는지 묻는 것 같다. 목적지를 말씀드리자 고개를 끄덕이시더니 잠시 후에 버스 한 대가 오자 나를 잡고 같이 버스에 타신다. 이번에도 내가 돈을 내려고 하자, 웃으면서 본인이 두 명 버스값을 내신다. 내가 너무 당황해하는데, 괜찮다고 하시는 것 같다. 나는 버스 안에서 할아버지 손을 잡은 채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내가 할아버지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아바나 사람들이 힐끔힐끔 따뜻한 눈으로 쳐다봤다. 할아버지는 5~6 정거장 후에 내리시면서 꼭 잘 내리라고 당부하시듯이 말씀하셨다. (아마도 그렇게 말씀하셨을 것이다. 알아듣진 못했지만...) 할아버지가 내리신 한참 후, 자리가 나서 앉은 후엔 휴지로 눈을 가리고 있었지만 계속 눈물이 흘렀다.


나는 살면서 이렇게 누군가에게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호의를 받은 적이 없었다.

그것도, 우리나라도 아닌 멀리 쿠바의 아바나에서 이런 따뜻한 호의를 받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길을 헤매는 동양 여자애를 위해 버스를 타고 꽤 먼 길을 가 주시고, 다시 두 시간쯤 기다렸다가 그 여자애를 데려다주시면서 버스비까지 내주시는 쿠바의 할아버지를 만날 거라고 상상한 적도 없다.

버스 정류장에서 나를 기다리시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지루하지 않으셨을까, 생각을 하며 나는 계속 마음이 벅차고 따뜻하고 아팠다.


너무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 사진 한 장 같이 찍지 못한 안토니 할아버지.

내 기억 속의 그는 키는 나 정도의 작은 키에 정말 마르고 연세가 많으신, 흰머리와 흰수염이 멋진 착하게 생긴 할아버지였다.


헤밍웨이 뮤제엄 가는 로컬 버스 정류장 (아바나 구시가지)


헤밍웨이 박물관을 알리는 표지판


헤밍웨이 박물관 전체 지도


헤밍웨이 박물관 들어가는 입구. 지금 보니 저기 서있는 차량들이 택시인것 같다



거실인듯. 사슴 박제는 싫다.


요즘 욕실이라고 해도 꽤 괜찮은 욕실...


서재. 저 책상이 너무 내 스타일이어서 탐났다.


서재마다 빼곡한 책들. 글 쓰다가 편히 누워도 될 것 같은 의자와 나의 로망인 큰 창문


수영장과 뒤에 보이는 나무로 된 요트. 참 부자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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