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재균 Dec 24. 2023

돈을 벌어서 뭐 할 건데? 경제적 사고력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나중에는 이미 늦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부자가 되기를 꿈꾼다. 돈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돈을 버는 욕망과 돈을 번 부자들을 비판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돈을 왜 벌고 싶느냐’고 물으면 사람들은 ‘제정신인가?’라고 거꾸로 물을 것이다. 그만큼 당연한 명제이기 때문이다.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고,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있는 자기 결정권이 있기 때문이다. 쉽게 얘기하면 행복할 조건이 된다는 의미다. 그러나 모순된 말이지만 돈으로부터 자유를 얻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 돈 때문에 할 수 없이 직장에 나가야 하는 사람이라면 자기 결정권은 사라진다. 근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별생각 없이 살아간다. 삶의 자기 주도성이 사라지는 순간 행복이 사라진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사람들은 혼란에 빠진다. 돈으로부터 자유를 찾기 위해 돈을 벌기로 했는데 어느 순간, 돈의 노예가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왜 그럴까?


‘돈을 벌어야 한다’라는 당연한 명제에 또 다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돈 벌어서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고 고쳐 물어야 한다.

내가 젊은 시절, 놓친 질문이 바로 이것이었다.


“돈 벌어서 뭐 할래?”

   



창업투자회사 대표이사를 하는 중 IMF 외환위기의 전조 증세가 찾아왔다.

벌써 27년 전이다.


당시 건설사들의 연쇄부도가 이어졌다. 창투사 모기업인 건설사도 자금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그룹 계열사에도 은행에서 대출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하루하루가 살얼음을 걷는 기분이었다. 창투사가 투자한 회사의 채권 회수가 되지 않아 자금 흐름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금융업이라 대출받은 것은 별로 없고 부실채권이 그나마 적어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느 날 모기업의 법정관리인의 호출이 있었다.

계열사 간의 상호출자로 인해 소유권은 이미 채권 은행단으로 넘어간 상태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창투사 경영을 잘했을 뿐만 아니라 부채가 적기 때문에 경영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나의 창업투자에 대한 전문성을 고려하여 자르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나에게 질문했다.

“계열사 중에 자금여력이 좋은 창투사를 먼저 제삼자에게 매각할 계획“이라고 말문을 연다. ”더욱이 모기업과 특수 관계인이라 대표이사 자리를 언제 내놓겠느냐? “는 물음이었다.


지금까지 걱정했던 나의 거취에 관한 내용이다. 잠시 생각을 하고 있는데 다시 법정관리인이 묻는다.

“스스로 명예롭게 퇴직할 시간을 드릴 테니 시한을 정하시오”라고 사뭇 나를 생각하는 말투이지만 단호했다. “그동안 창투사 경영관리를 잘했지만 어쩔 수가 없소. 회사업무도 정리하고 새로운 일자리도 알아봐야 할 시간은 충분히 드리겠소”라고 아주 부드럽게 말한다.  내가 거절하면 바로 채권단을 대리한 본인이 주도하여 이사회를 열어 명퇴가 아니라 강제로 사퇴를 시킬 것이 눈에 선하다.     


승낙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약 3개월의 시간을 받았다.


그 자리를 나오면서 지난 몇 년의 시간을 돌이켜 보면서 허탈했다. 성공을 위해 돈을 벌겠다는 목표는 있지만 그것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또 다른 목표가 없었다. 돈을 향한 본능적인 욕망이었다.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나의 욕망은 언제나 타인이라는 거울에 비친 욕망이며, 그 타인의 거울이 커질수록 인간은 맹목적인 노예가 된다. 내가 그랬다.


돈을 벌기 위해 가족과의 시간을 멀리했다.

‘아빠가 지금은 바빠, 나중에 즐겁게 놀아줄게’

‘아버지 지금은 시간이 없어요, 나중에 시간이 나면 효도할게요’

‘다 가족을 위해서 이렇게 고생하는데..’라고 스스로 위로한다.     

나중은 결코 오지 않는다.


가족과 행복하게 살기 위해 돈을 번다. 근데 돈을 번다고 하면서 오히려 지금 가족과의 행복한 순간을 놓치고 만다. 이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은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이런 아이러니가 있는가? 내가 이 어리석은 짓을 했다.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싶었다. 그냥 욕망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성공해서 뭐 할 건데.?’

‘돈 벌어서 뭐 할라꼬.?’

이 질문을 하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놓쳐버렸다.


마치 경주마처럼 눈앞에 있는 먹잇감을 향해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런데 그 결과는 참담했다. 며칠을 술로 위로해도 풀릴 리가 없었다. 친구의 미국출장에 같이 따라가서 골프를 치면서 그 고통을 잊으려고 노력했다.

보름 후, 다시 귀국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내가 갈 곳이 없다는 것이 가장 비참했다.

아침 먹고 스트레스도 풀 겸 느지막이 스포츠센터로 가서 수영을 했다. 그 시간에 모두 나이가 지긋한 아주머니가 대부분이었다. 젊은 남자는 나 혼자였다. 다들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아직 한창 일할 나이인데 이 시간에 쯧쯧...?‘라는 표정이었다. 기분이 아주 이상했다. 다음부터는 시간을 일부러 오후 늦게 회사원들이 퇴근할 즈음에 수영을 했다. 수영을 하는 순간에는 모든 걸 잊어버릴 수 있어 좋았다. 내 숨소리만 들으면서 호흡하는 그 시간은 온전히 즐겼다.


매일 스포츠센터만 다닐 수는 없다.

돈을 벌어야 했다.





원래 대학에서 강의하고 연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가끔 친구나 선배가 있는 대학 연구실에 방문하면 왠지 답답하게 느껴졌다. 미국 대학에서 연구실에 있으면서도 학위를 받아야 할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지 그다지 연구를 즐기지 못했다. 연구실에 처박혀 뭔가를 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우선 모교에 지원했다. 탈락했다. 탈락한 이유를 수소문해서 알아보니 학부 전공이 다르다는 것이다. 학부를 건축공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산업공학으로 전과한 것이 핸디캡이 되었다. 억울한 생각에 학과장을 찾아갔다. 학과장이 뜨악한 표정으로 맞이했다.


“학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분을 모셨는데 과목을 배정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어요”라고 한다.

“무슨 말씀인지요?” 내가 물었다.

“학부에서 배운 적이 없다고 배정할 과목을 안 맡겠다고 하여 곤란한 적이 많다.”라고 답한다.

“대학원 전공도 본인과 겹쳐서..” 말을 흐린다.


“학과장님도 미국에서 학위를 해서 잘 아시겠지만 산업공학은 오히려 다양한 학부 출신을 우대하고 있으며 전공이 겹치는 부분은 함께 협업하면 더 시너지 효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하니 표정이 약간 일그러진다.


“아무튼 학과회의를 통해 나온 결론입니다.”

그날 모교를 나오면서 쓸쓸했다.

나를 밀어내고 있다는 기분이 들면서 그 후, 다시는 모교를 가지 않았다.




지방대학을 알아봤지만 아내가 지방으로 내려가는 것을 반대했다. 실제로 천안에 있는 대학에 강의를 맡아서 한 학기를 서울에서 출퇴근하면서 다녀보니 우선 위험했다. 특히 3시간 연강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고속도로에서 졸음을 참지 못해 위험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나마 미국 박사학위증 덕분에 4년제 대학은 아니지만 서울에 있는 전문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우선 들어갔다가 자리를 옮기면 되지 ‘라고 생각했다.

처음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놀랐다.


같은 서울이라는 곳에 이렇게 다른 세상이 있었나 싶었다. 마치 정글에서 맹수와 사투를 벌이는 전쟁터에서 갑자기 평화로운 오아시스에 온 느낌이었다. 회사에서는 매일 투자처를 발굴하고 실적을 체크하고 투자기업이 부실화된 곳에는 채권회수를 위해 직원들과 회의하면서 늘 목표량을 달성하기를 독촉했다. 회사는 오로지 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투쟁터였다.


대학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추심을 할 회사도, 실적을 내기 위해 직원을 독려하면서 밀당을 할 이유도, 직원 월급이 제때 나갈 수 있는지 자금계획을 세울 필요도 없다. 수업시간에 강의를 열심히 하고 연구만 하면 되었다. 물론 이곳에도 승진을 하기 위해 실적을 챙겨야 했고 보직교수는 외국학생을 끌어들여 등록금 동결로 인한 학교 재정을 확충해야 한다.


하지만 수업시간에는 젊은 학생들과 함께 있으면 절로 기운이 난다. 가끔 농담을 하면 학생들의 반응이 적극적이다. 오랜만에 듣는 웃음소리다. 첫 학기에 가르친 과목은 <경제성공학>이다.


미국에서 내가 배웠고 대부분의 대학에서 사용하는 교재로 강의했다. 물론 번역본이지만 분량이 많아서 한 학기 수업으로는 벅차고, 수준이 높다고 판단되는 ‘공공사업평가’ 및 ‘회계 및 소득세’ 부분은 제외하였다. 강의를 하면서 보니, 모두 열심히 듣고 이해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근데 내 착각이었다.


첫 중간고사를 치르고 난 후 학생들이 이해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바닥이었다. 개별적으로 면담을 했다.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어렵다고 했다. 그럼 왜 아는 척했냐고? 물었다. '교수님이 열강을 하는데 반응이라도 보여야 할 것 같아서'라고 귀엽게 말했다.


다음 학기부터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고민했다. 내가 직접 쉽게 <클래스노트>를 만들었다. 그렇게 하니 학생들의 이해도가 높아졌고 수업시간에 호응도가 괜찮았다. 학년이 지날 때마다 <클래스노트>를 업데이트하면서 이론적인 것도 필요하지만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주제를 심도 있게 가르치고 싶었다.


그런 고민을 하는 중에 로버트 기요사키의 책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를 읽으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경제성공학도 분명 투자 분석을 위한 학문이지만 생활 속의 적용사례가 부족했다. 기요사키가 어느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지적을 했다.


“학교에서는 학문적 사고력을 가르치지, 경제적 사고력(Economic Intelligence)은 가르치지 않습니다. 바로 이 점이 문제입니다. 제 아버지는 늘 가난하셨던 것도 매우 똑똑한 분이셨지만 돈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강의 목표를 바꾸었다.

‘학문만을 위한 것 아니라 실생활에서 경제적 사고력을 키우자 ‘


우선 기본이 되는 이론 강의를 간단히 하고 바로 실무에서 사용할 수 있는 주제를 가지고 강의하고 팀 토론시간을 갖고 발표를 시켰다. 특히 금융지식과 창업 시에 필요한 매출계획과 손익분석 및 투자수익률 계산을 집중적으로 공부시켰다. 창투사에서 근무할 때 사용했던 실제 투자분석 사례를 끄집어내어 설명했다.


특히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에서 강조한 자산과 부채의 차이를 수차례에 걸쳐 얘기했다. 자산 중에도 비용을 들이면서 이익을 창출하는 자산이 있는 반면에 소모성 비용만 드는 자산이 있다. 같은 차량이라도 상품을 팔기 위해 사용하면 돈을 벌어들이는 고정자산이 되지만 남에게 자랑하기 위해 구매한 차는 자산이긴 하지만 돈 먹는 하마가 되는 소모성 자산이 된다. 전혀 다른 자산이다.


종잣돈이 있어야 돈을 버는 자산을 만들 수 있다. 젊을 때 차를 사는 순간 종잣돈을 마련하기는 요원하다. 자산을 만들지 못하면 결코 부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요즘 연예인들은 인기가 높아지면서 돈을 벌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빌딩 등의 자산을 취득한다. 돈을 버는 자산을 만든다는 뜻이다.


젊은 시절에 종잣돈을 모으기는 쉽지 않다. 월급은 작고 온갖 유혹이 많다. 그 대표적인 것이 차량 구입과 신용카드 남발이다. 기업은 아주 친절하게 캐피털 자회사를 통해 돈이 부족한 차량 구매 의향자에게 쉽게 대출을 해준다. 차량이 담보가 되기 때문이다. 월 몇 십만 원만 내면 된다고 꼬신다. 내 월급으로 충분하다고 판단되지만 월 할부금만 드는 게 아니다.


차량 유지비에는 유류비뿐만 아니라 수선비, 자동차세, 보험료, 벌금 등과 같이 눈에 보이는 비용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감가상각비(고정자산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그  가치를 고정자산에서 공제함과 동시에 떨어진 가치를 비용으로 계상하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아무리 비싸게 준 차량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가치가 하락하는 비용을 감가상각비라는 항목으로 회계에서 처리한다.)까지 포함하면 매월 백만 원이 훌쩍 넘는다. 소모성 자산이기 때문에 이익은 제로다. 결코 종잣돈을 모을 수 없다.


취업하고 들뜬 마음에 자동차를 사지 말라고 경고했다.  

글쎄, 학생들이 얼마나 실생활에서 적용할지는 미지수다.


나 역시 직장생활에 충실하면서 스스로 돈을 버는 자산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부동산을 취득했다. 그 후로 원리금을 갚기 위해 많은 애를 썼다. 배우 윤여정은 아카데미 조연상을 수상한 소감으로 고백했다. 자신이 이혼 후 한국에 돌아와서 무슨 역할이든 관계없이 무조건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했다.


자신이 열심히 연기를 하게 된 동기는 오로지 아들의 교육과 자신의 삶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너무나 솔직한 자기 고백이 아닌가? 사실 우리나라 모든 부모들의 마음이 아닐까? 자신의 삶에서 성공하고 나면 윤여정과 같은 이런 고백이 오히려 그 빛을 발휘한다.


부동산은 한번 취득하면 주식과 달리 되팔고 싶어도 쉽지가 않다. 오히려 부동산의 고유한 특성인 매도가 어렵다는 사실이 오래 갖고 있을 수 있는 동기가 된다. 그러므로 자산가치가 증가하여 이익을 가져주는 자산이 된다.      


나의 투자 수익률은 물었던 학생의 질문이 떠오른다.

사실 돌이켜보면 나도 투자에 실패한 경험이 많다. 학생들에게 실패 경험을 들려주고 싶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위험했던 투자의 순간도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돈을 벌어서 뭘 할 건데?를 알려주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