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투자에 실패할 뻔한 적이 있다.
실패면 실패고 성공이면 성공이지 '실패할 뻔하다니?'.
학생들에게 투자분석에 대한 강의를 한 내가 실패할 뻔하다니? 고백하건대 실패도 많이 했다. 하지만 작은 실패들이 오히려 나중에는 큰 도움이 되었다. 이건 따로 얘기를 플어가겠다. 투자분석에 대해 강의하면서 손익분석 및 돈의 수익력과 구매력, 특히 명목이자율과 실질이자율 차이에 대해 강조했다. 이론보다 실생활에 도움이 될만한 사례를 주로 강의했다. 예를 들어, 간단하게 저금리에 고물가 시대는 예금금리는 실제로는 마이너스 금리다. 맞다. 만약, 은행에서 예금 이자율을 4%를 준다 하더라도 인플레이션이 5%라면 오히려 마이너스 수익률이 된다.
게다가 이자소득세를 고려하면 수익률은 더 떨어진다. 이자소득세는 지방세를 포함하면 15.4%를 지불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약 1.6% 마이너스 수익률이 된다. 5,000만 원을 정기예금에 넣으면 연말에 5,200만 원을 받지만 실제 가치는 세금을 포함하면 4,920만 원을 받는 셈이다. 결국 일 년간 은행에 예금하면 손해를 보는 구조다. 근데 눈에 보이는 돈은 200만 원이 늘어났기 때문에 흐뭇해할 수도 있다. 이 간단한 사실을 사람들은 잘 인식하지 못한다.
금융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다시 강조한다. 금융지식이 없으면 호구가 된다고, 가만히 앉아서 손해를 볼 수 있으니 열심히 공부하라고 다시 강조한다. 근데 금융지식만 있으면 투자에 성공할 수 있을까?
나 자신의 투자 경험을 돌아본다.
실질이자율을 강조한 내가 여유자금을 귀찮다는 이유만으로 정기예금에 넣어두고 있었다. 수업시간에 실질이자율에 대해 그렇게 강조했는데 정작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은행에 방치해두고 있었던 것이다. 공부한 것을 삶에 적용하라고 강조했는데 정작 나는 그러지 못했다. 반성하는 의미에서 투자를 결심했다.
어디에 투자할까? 고민했다. 우선 집에서 가까운 거래 은행에 가서 투자처를 추천해 달라고 했다. 은행에 가서 물어보니 새로운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별도의 창구가 있었다. 다른 일반 예적금 창구와 달리 아주 깨끗하고 고급한 분위기였다. 의자도 편안하게 앉을 수 있는 소파 형식이라 마음에 들었다.
상냥한 목소리의 여직원이 자신을 소개한다. 펀드를 많이 판매한 전문가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옷을 세련되게 입고 계신다고, 연세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고 했다. 일단 나를 치켜세운다.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아도 들으면 왠지 기분이 좋다. 또 한편으로는 ‘사람을 잘 알아보는군’하고 약간 흐뭇하기도 했다. 영업직원에 대한 경계심은 사라지고 신뢰가 간다. 벌써 심리적으로 일부 무장해제가 되었다.
그 직원은 인간 심리를 꿰뚫고 있었다.
상대방을 설득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이미 넘어갔다.
“마침 새로운 좋은 투자 상품이 나왔습니다”라고 했다.
일단 나의 투자성향을 파악해야 된다고 하면서 설문조사표를 준다. 조사를 마치고 주니 ‘나는 보수적인 투자가이지만 약간의 위험은 부담할 수 있는 성향’이라고 애매하게 평가했다. 그런가 보다 하고는 상품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처음에 들으니 조금 복잡했다.
독일 국채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였다. 파생상품이었다. 독일 국채금리연계 DLF는 만기 시점의 독일 10년물 국채금리에 따라 수익률이 결정된다. 6개월이 만기인 이 상품은 쿠폰금리(발행 당시 약정 금리) 2%는 무슨 경우라도 지급한다. 또 만기일의 독일 국채금리가 마이너스 0.2% 이상이면 원금 역시 보장한다고 했다. 설마 독일 금리가 마이너스가 될까? 일본이 아닌 독일이 설마..?
마음속으로 ‘현재 시중 정기예금 이자율이 2%도 되지 않는데 이런 수익률이 있을까?’ 의심이 갔다. 그 순간에 영업직원이 나의 속내를 읽었는지 대못을 확 박는다. 6개월에 2%이면 연간 4%의 수익률이라는 것을 다시 강조한다. 나에게 이런 수익률이 어디 있냐고 되물었다. 돈에 대한 욕망을 슬쩍 건드린다.
그렇다.
당시 시중 예금 이자율이 2%가 채 안되었다. 물가상승률과 세금을 고려하면 학생들에게 그렇게 많이 강조했던 ‘실질 이자율은 마이너스’이다.
원금손실을 보는 경우가 있냐고 물었다. 만일 독일 국채금리가 마이너스 0.2% 이하로 떨어지는 경우다. 금리가 마이너스 0.2%로 내려가면 거기서 0.01% 포인트 낮아질 때마다 원금에서 2%씩 손실이 나는 구조였다. 독일경제가 얼마나 튼튼한데 그런 경우는 없을 것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헌데, 당시 독일경제는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으로 촉발된 미중 무역갈등,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으로 인해 성장률이 둔화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유럽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펀드멘털이 견고한 국가가 아닌가?
‘설마 독일 장기국채 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질 수는 없지 ‘ 속으로 중얼거렸다. 은행직원은 “독일이 망하지 않는 한 손실이 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더 부추긴다.
’응, 그렇지~‘
일단 마음이 정해지면 그다음의 얘기는 귓등으로 들린다. 독일 금리가 마이너스 0.7% 미만까지 떨어진다면 원금은 다 날리고 쿠폰금리 2%(액면가 금리)만 받을 수 있는 위험도 있다는 사실은 더 이상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당시 은행권에서는 저금리로 인해 예대마진이 줄어들면서 은행의 수익률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정부는 은행의 수익확보를 위해 증권사뿐만 아니라 은행도 자산운용사가 개발하고 운용하는 파생상품을 팔 수 있는 영업 허가를 준 것이다. 펀드는 기본적으로 고객이 손해를 보더라도 먼저 판매 수수료를 떼어내기 때문에 은행과 자산운용사는 손해 볼 이유가 없다. 이런 고수익 금융상품을 예대 마진율이 낮아 수익성이 저조한 은행이 놓칠 수 없다. 은행마다 펀드 가입을 독려하기 위해 은행 직원들에게 성과평가 지표로 펀드 가입실적을 반영하고 있었다.
은행직원은 자신의 고과평가에 펀드실적이 반영되어 연봉인상에 직결된다. 영업직원은 눈에 불을 켜고 상품을 홍보하고 고객을 끌어 모으려고 했다. 자신들의 이익이 더 시급하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인 줄도 모르고 연간 4% 플러스알파의 수익률이라는 말에 홀까닥 넘어갔다. 위험요소를 과소평가하고 수익성을 과대평가한 것이다. 은행 직원은 내가 펀드투자에 대한 모든 위험요소를 이해했다는 사실을 녹음으로 남겼다. 불완전판매에 대한 책임을 면하기 위함이다. 이 날은 금요일이었다. 그리고 최종 투자는 영업일 기준 2일 이후에 실행된다고 했다.
다시 생각할 시간을 주는 숙려기간이었다. 위험성이 높은 파생결합상품인 DLF, DLS, ELS(주가연계증권)* 등은 반드시 투자 실행 날짜를 2일이 경과된 후에 집행하기로 2017년에 법에 규정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홍콩 H지수 연계 ELS 상품이 홍콩 주식이 폭락을 거듭하면서 만기가 돌아오는 내년 상반기에 대규모 손실 가능성이 나타났다고 신문에 대서특필하고 있다. 이 또한 파생금융상품이다.
* ELS(주가연계증권·Equity Linked Security)는 주가지수 등의 등락에 따라 수익률이 결정되는 금융 상품이다. 주가가 하락해도 일정한 범위 안에서만 움직이면 약속한 수익을 받을 수 있지만, 주가가 범위를 벗어나 폭락하면 원금을 잃을 수도 있다.
주말을 보내면서 곰곰이 따졌다.
돈에 대한 욕망이 앞서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럴 때, 나의 감정과 투자 판단을 객관화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당시 독일을 포함한 유럽경제뿐만 아니라 전 세계경기가 불황이기 때문에 독일 장기채권이 어떻게 곤두박이칠지 아무도 몰랐다. 일본은 벌써 몇 년째 마이너스 금리가 아닌가? 주말을 보내면서 투자에 대한 위험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과연 내가 이 위험부담을 감당할 수 있을까? 2퍼센트 추가 수익을 낸다고 엄청난 큰 이익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앞으로 6개월간 독일 금리에 괜한 신경이 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다음 주 월요일, 은행에 전화를 해서 그 상품을 취소한다고 했다.
이유를 묻는다.
"위험성이 크다"라고 했더니 더 이상 귀찮게 묻지 않았다.
투자는 없었던 일이 되었다. 간단해서 좋았다.
그 후, 그 일을 잊어버리고 있다가 몇 개월 뒤에 신문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났다.
만기가 도래하는 **은행의 독일 국채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가 사실상 원금 전액 손실을 기록했다. 선진국 국채 관련 파생상품 중 원금 전액을 날린 채 만기가 확정되는 사례는 처음이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26일 만기를 맞는 상품의 손실률은 98.1%로 확정됐다. 투자자가 1억 원을 투자했다면 190만 원만 건지게 된 것이다. 앞서 첫 만기가 도래한 **은행 DLF 상품은 원금 손실률을 60%로 확정했다. 이후 독일 국채금리가 더 떨어지면서 지난번의 만기 상품은 손실률이 63.2%로 확대됐다. **은행은 이 상품을 총 19회에 걸쳐 1,266억 원어치를 팔았으며, 2차 만기 손실률은 오는 20일에 확정될 예정이다. 한편 피해 투자자들은 오는 20일 서울역에서도 집회를 열고 추가 항의에 나설 예정이다.
- 경향신문 2019년 -
나도 서울역에 갈 뻔했다.
투자분석만 가르쳐서는 안 되겠다.
투자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영향을 미치는 것 중에 '인간 심리'도 중요한 요소이다.
다음 학기부터 파생금융상품과 함께 투자심리도 강의에 포함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