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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재균 Dec 30. 2023

투자심리 -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인가?

오류투성이 존재라는 사실

오래전, EBS 다큐멘터리 <인간의 두 얼굴>에 나온 실험이다.


실험자들이 한 방에 모여 문제를 푸는 장면이다. 이 실험에 참가한 7명 중에 6명은 실험을 도와주기 위해 연기하고 나머지 1명이 실험 대상자였다. 실험의 목적은 ‘주어진 문제에 대해  6명이 엉뚱한 답을 할 때 그 실험자가 얼마나 자신의 소신대로 답을 말할 수 있는가’였다.


주위 상황에 따라 인간이 과연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실험이었다. 실험의 가설대로 그 한 명은 처음에는 자신의 소신대로 남들과 다른 정답을 말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질문과 주위 사람들의 엉터리 답변에 결국 굴복하고 자신도 그 사람들과 동조하면서 정답을 알면서도 오답을 말하였다. 자신이 처해진 상황에 따라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남들이 모두 예스(Yes)라고 할 때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친구." 오래전 영화배우 유오성이 광고모델로 등장해 화제를 모았던 어느 증권사의 광고문구입니다. 실제 우리는 이런 경우를 현실에서 실천하지 못한다. 어떤 행위의 기준이나 원칙 없이 상황에 따라 판단하고 선택한다. 바로 상황논리다.


‘설마 내가 저런 상황에서 저렇게 바보처럼 행동할까?’라는 의심을 품을 수 있다. 하지만 당신도, 나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아무리 명석한 두뇌를 가진 사람이라도 상황과 이해관계에 따라 자신의 소신까지도 바꿀 수 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정치인을 보면 바로 보인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그때그때 다르다’라는 상황논리로 자신을 합리화한다.


조금 더 시간을 뒤로 밀어 본다. 일제강점기 친일 문학인을 보면 확연하게 알 수 있다. 위키백과를 검색하면 최남선, 이광수, 채만식, 김동인, 서정주, 노천명 등 이름을 셀 수 없을 정도로 알만한 지식인은 다 나온다. 다시 냉정하게 생각하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그럴 수 있다’는 냉엄한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아니 그래도 지식인이 그러면 안 되지’,라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도 인간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리면 그렇게 되는 인간일 뿐이다.        


다른 실험도 있다.


심리학 교수가 피실험자들에게 제안한다. 당신의 손가락 모양만 가지고 성격을 알아낼 수 있다고? 피실험자가 자신의 손가락을 그리고 봉투에 담으면 그것을 심리학자가 다른 방에 가서 분석하고 돌아와 피실험자에게 각자의 성격을 설명하는 것이다. 손가락에 숨겨진 비밀이라도 있는 걸까요?


놀랍게도 모든 사람이 자신의 성격과 일치한다고 감탄한다. 심리학자는 무슨 요술을 부린 걸까? 정말 손가락을 보고 성격을 맞출 수 있는 심리분석이라도 발견할 것일까? 예를 들면, 평소 자신은 자존심이 강한 편이라고 생각한 피실험자가 그와 비슷한 결과를 받고 자신의 성격을 잘 파악하고 있다고 한다. 심리학자는 각자에게 다른 사람의 성격이 담긴 것과 바꾸어 읽어보라고 한다. 다른 사람의 것을 본 피실험자는 모두 놀란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다른 사람의 성격도 모두 똑같은 내용이었다.

바넘효과(Barnum Effect)이다. 바넘 효과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가진 성격이나 심리적 특징을 자신만의 특성으로 여기는 심리적 경향을 말한다. 점을 보러 갔다고 생각해 보자. "당신은 타인의 말에 쉽게 상처받는다"는 말에 깜짝 놀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누구에게라도 해당하는 말이다.


세상은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착각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두 얼굴이다. 누구나 자신과 관련된 정보를 처리할 때 자신과 특별히 일치하는 긍정적인 부분은 '애매모호함'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무시하는 인지적 편향 때문이다. 오직 자신에게 적용되는 의미 있는 정보로 읽는다. 사실은, 그런 모호함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는 정보임에 불구하고 말이다. 자기 착각이라는 뜻이다.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자신이 스폿라이트를 받으면서 모든 사람이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세상 사람은 당신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다.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생각은 타인도 똑같이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MBTI나 신수점을 믿지 않는다.


또 다른 실험도 있다.


프로농구 시합이 열리는 경기장에서 배트맨처럼 온몸에 찰싹 붙는 타이저를 입고 등장한 남자가 있다. 가만히 보면 경기장에 어울리지 않는 복장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배트맨 복장을 한 사람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 지금 프로농구 경기에 집중하느라 미처 보지도 못하는 것이다.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눈에 뜨여도 보이지 않는다.      


인간의 뇌는 수많은 오감의 정보를 받아서 처리해야 한다. 그 많은 정보 중에 뇌는 선택적으로 받아들인다. 뇌는 외부에서 입력되는 정보를 편집하여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정보만 남기고 나머지는 버린다. 뇌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입력된 정보를 프로세싱한다. 뇌는 정보를 편집하면서 중요한 정보라고 생각되는 정보는 기억에 담는다.


뇌에서 기억으로 남는 것은 ‘내가 보고 싶은 것, 내가 원하는 것, 내가 믿는 것’ 뿐이다. 결국 인간은 내가 보고 싶은 것, 내가 원하는 것만 보고, 내가 믿는 것만 믿고 싶을 따름이다. 자신이 보고 있는 세상은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 아니다. 내가 믿는 것이 상식이고 다른 사람도 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는 착각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대화하면 불편한 감정을 느끼고 심지어 언쟁을 높이게 된다. 인간본성을 이해하면 논쟁할 필요가 없다.


인간은 편견과 착각으로 왜곡된 세상을 보고 듣고 믿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은 비합리적이라도 난 합리적인 판단을 한다.’라고 자신을 과대평가한다. 그 생각 자체가 착각이다. 결코 당신은 합리적이지 않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인간이 진화하면서 생존해 온 방식이기 때문이다. 투자를 할 때도 이 명백한 사실, ‘나도 상황에 따라 바보 같은 짓을 할 수 있다’라는 사실을 놓치면 안 된다. ‘친구 따라 강남 가듯’ 친구의 지나가는 말에 혹해 주식을 사서 폭망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남의 일이 아니다. 바로 당신 일이다.     


누구나 모두 판단에 오류를 범하고 있지만 스스로 인정하기 싫어할 뿐이다. ‘타인은 잘못된 판단을 하더라도 나는 그렇지 않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불완전한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투자에서도 똑같은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내가 산 주식은 오를 것‘만 같은 착각을 한다.     


출처: Shiromani Kant, Unsplash




현대 경제학의 기본 명제인 ‘인간은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존재’라는 조건을 뒤엎은 사람이 있다. 경제학자가 아니다. 심리학자로서 최초로 2002년에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프린스턴대학 심리학과 대니얼 카너먼 명예교수다. 그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인간은 매우 비합리적인 존재’라는 주장을 펼쳤다. 그의 이론은 ‘행동경제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열었다. 정통 경제학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비합리적 의사결정 이유와 경로를 탐구한 학문이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이다.


경제학계보다 금융시장에서 이 새로운 학문을 먼저 받아들이고 추종하기 시작했다. 금융시장에서 투자자는 결코 합리적으로 투자하지 않고, 집단적 광기나 손실회피 심리 등의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한다. 이 사실은 금융시장을 이끄는 리더는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인간은 ‘결코 손절매룰 할 수 없도록 만드는 확증 편향, 상황논리에 의한 합리화, 자기 중심성에 의한 착각, 준거점으로 인한 앵커링 효과, 손실을 회피하려는 전망효과, 불확실성에 대한 전문가의 과신’ 등 헤아릴 수 없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인간은 자본과 주식투자에서도 똑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0년 후반에 불었던 ‘닷컴’ 광풍이었다. 당시에 회사 이름에 ‘닷컴’ 혹은 ‘인터넷’만 붙으면 주가가 치솟았다. 사람들은 묻지도 보지도 질문도 하지 않고 그런 주식을 사댔다. 얼마 후 ‘닷컴’ 회사에 대한 집단 광기가 사라지자 대중들은 뭉치돈으로 투자한 돈을 고스란히 날려야 했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세기 영국의 철도 주식 폭락과  17세기 네덜란드 튤립 투자에 대한 광풍이 ‘부’를 향한 인간의 광기는 오늘까지 계속되고 있다. 사회라는 집단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주위 상황과 인간 본연의 편향 및 착각과 이기심으로 인해 개인적으로 막대한 투자 손실을 겪고 있다. 투자 시점도 그때그때 다르다.


주식시장에 매일 오른다는 소식을 들을 때까지 마음에 동요가 일어나지 않는다. 나와 관계없는 남의 얘기로 치부한다. 차츰 핸드폰의 실시간 뉴스에 주식 활황에 대한 소식으로 넘쳐나기 시작할 때 즈음 조금씩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바로 옆에 있는 동료나 가까운 친구가 주식으로 돈을 벌었다는 ‘성공담’에 결정적으로 마음이 동요된다. 이러다 ‘벼락거지’가 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진다. 동료는 이미 분산투자를 하여 위험부담을 줄이는 단계에 들어갔는데 동료는 그런 사실은 얘기하지 않는다.


그 친구의 말만 듣고 덥석 ‘몰빵’으로 투자한다. 어느 날 진짜 ‘벼락거지’가 된다.


나와 관계없는 사람이 부동산에서 돈을 벌었다면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하지만 가까운 친구나 친척이 아파트를 사서 돈을 벌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때부터 마음이 불안해진다. 자신도 모르게 질투가 일어나면서 부동산 시세를 자주 쳐다본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진짜 ‘영혼까지 끌어 모아 투자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평소에는 핸드폰 하나를 살 때도 이것저것 ‘가성비’를 따진다. 정작 평생을 모으고 갚아야 할 부동산에는 과감하게 돈을 확 질러버린다.


주위 상황이 나를 그렇게 몰아가버리기 때문이다.


부동산을 포함한 자본시장은 인간의 무지와 탐욕을 먹고 살아간다. 왜냐하면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콩나물을 살 때는 한 푼이라고 깎으려고 할머니와 입씨름을 한다. 그러나 여행을 계획하면서 ‘인생 뭐 있어’하면서 외국의 유명 휴양지에 특급호텔을 예약하고 항공기도 비즈니스 클래스를 끊는다.


왜 그럴까?

보상심리다. 내가 이만큼 알뜰히 살았으니 한 번쯤 누리고 살아도 된다는 심리다.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       


인간은 왜 이렇게 어리석을까?


윌리엄 번스타인의 책 <군중의 망상: 욕망과 광기의 역사에 숨겨진 인간 본능의 실체>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첫 번째 이유로 인간은 남들과 같아지려는 모방 심리가 있기 때문이다. 집단에서 남과 다르면 불편을 느끼기 때문에 무리와 같은 행동을 하려는 경향이 있다. 인간은 원시시대를 거치면서 맹수가 이글거리는 사바나에서 집단생활을 통해서만이 생존할 수 있었다. 집단에서 떨어지는 순간 ‘죽음’이다. 마치 아프리카 초원에서 얼룩말 무리에서 빠져나온 얼룩말은 바로 그 순간 사자의 표적이 되어 먹잇감이 되고 마는 것과 같다. 남과 달리 판단하고 행동하는 순간 ‘죽음’이 기다린다. 연약한 동물 집단들은 무리와 같은 생각, 같은 행동을 해야 살아남는다. 인간 역시 수십만 년을 거치면서 이러한 집단의식이 진화되고 내면화되었다.


두 번째 이유는 집단생활에서는 일사불란한 통일성과 함께 사람들의 힘을 이끌어내는 ‘이야기’가 필요했다. 유발 하라리의 <호모사피언스>에 따르면 원시시대 작은 무리 생활을 하면서 공동체 결속의 힘을 키우기 위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공동의 ‘이야기’를 만듦으로써 가족과 부족 단위를 넘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과 더 큰 공동체를 이끌어 서로 협력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누군가의 ‘성공 내레이션’에 귀가 솔깃해지는 이유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그 심리적 강도는 더 세다. 아주 설득력 있는 주장이었다.


인간은 남의 ‘스토리’에 약하다. 오죽하면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이기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라고 할까? ‘내로남불’은 정치권에서만 적용되는 담론이 아니다. ‘남이 하면 투기고 내가 하면 투자’라고 착각한다. 자본투자시장에서도 정확하게 인용할 수 있는 인간 현상이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 또한 그렇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타인의 잘못을 인식하기보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기가 더 어렵다’

‘나는 결코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존재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고대 그리스의 현인 소크라테스가 인간의 결함을 간파했다.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알아라’

투자에서도 명심해야 할 명언이다.

    

투자심리에 대한 함정은 아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그 판단의 순간에 무의식이 작동되기 때문이다. 나도 인식하지 못한 채 인지적 편향이나 상황의 논리에 따라 투자한다는 뜻이다. 특히 전문가라는 권위를 앞세우거나 단지 친하다는 이유로 투자자를 속이고 가짜뉴스가 넘치는 현실에서는 투자심리에 대한 이해가 더욱 필요하다. 심하게 말하면 투자에서 심리적 현상에 대한 무지는 ‘쪽박’을 차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투자에서는 오히려 작은 실패가 더욱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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