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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재균 Jan 07. 2024

투자심리 - 그 위험한 착각, 자기 과신

자기 합리화와 손실회피편향, 그 마음의 습관


오래전, 창업투자사 대표직을 맡고 있을 때였다.     


하루는 투자분석팀장이 심각한 표정을 하면서 사무실에 들어와 앉는다. 투자할 벤처회사의 투자분석 실무를 담당하는 김 모 대리가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명문대 경제학과 출신으로 평소에 성실하며 가끔 회의 중에 날카롭게 투자에 대한 의견을 내놓아 눈여겨보던 직원이었다. 최근에 회의 때나 얼굴을 마주칠 때면 표정이 어두웠지만 그냥 지나쳤다.


팀장이 말하길, “선물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많이 본 것 같다”는 귀띔을 해주고 나간다. 당시 우리나라에도 선물시장이 도입되면서 여기저기서 억대를 벌었다는 둥, 대박이 터졌다는 소문을 가끔 듣고는 있었다. 마치 최근에 불어 닥친 가상화폐가 붐을 일으켰던 광풍의 분위기와 흡사했다.      

 

그 후, 김대리와 면담했다.  

선물시장에 투자했는데 처음에 돈을 벌었다고 했다. 그 후 자신이 생겨 과감하게 배팅을 하다가 2~3일 사이에 본인의 연봉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대출을 받아 투자하면서 아파트까지 날리게 되었다고 한숨을 내쉰다.    

  

선물이란 파생상품의 일종으로 상품이나 금융자산을 미리 결정된 가격으로 미래 일정 시점에 매수 혹은 매도할 것을 약속하는 거래이다. 일반적으로 곡물, 석유, 환율, 채권, 주가지수 등의 변동성에 대한 위험부담을 헤징 하기 위한 수단으로 많이 사용한다.


선물과 옵션은 거래금액의 10%~15% 보증금으로 거래할 수 있기 때문에 레버리지가 큰 투자이다. 레버리지가 크다는 얘기는 그만큼 위험도 높다는 의미다. 통장에 있는 1,000만 원으로 1억을 벌 수도 있지만, 예측과 다르면 한꺼번에 1억 원을 날릴 수도 있다. <오징어 게임> 드라마에서 서울대를 졸업한 상우가 60억 빚의 늪으로 빠지게 한 그 투자이다.   

  

상담 중에 김대리는 하소연한다. 처음에 차라리 돈을 잃었으면 두려워서 선물시장에 깊이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후회했다. 자신의 능력을 너무 믿었던 것이었다. 사실 처음에 운이 조금 좋았을 뿐인데,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후회였다. 몸은 이미 늪 속 깊은 곳으로 빠져 들어갔고 해쳐 나올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사직서를 내고는 퇴사를 했다. 전도유망한 젊은 친구가 사회에 나와 얼마 되지 않아 섣부른 투자로 인해 빚의 늪으로 빠지는 모습을 보는 나 역시 안타까웠다.      


미리 학교에서 혹은 집에서 누군가가 선물과 옵션의 위험성을 얘기해 주었더라면 조금은 달라졌을 텐데. 너무 안타깝다. 누구나 젊은 시절에 자기를 과신하는 경향이 심하다. 특히 사회생활 초반에 성공한 경우에 그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단지 운이 좋아서 사업이 잘되고 투자 성과가 좋았을 뿐인데 자신을 과신하게 된다. 물론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갖는다는 것은 새로운 도전을 하는데 커다란 동기부여가 된다. 하지만 자기 확신도 정도를 지나치면 사업과 투자에 대한 판단을 그르친다. 그래서 투자도 늘 중용과 함께 자기 객관화가 필요한 이유다.   

   

내가 무엇 때문에 성공했을까?

혹은 왜 실패했을까?     

자기 객관화가 필요하다.      




     

“교수님은 투자 수익률이 얼마나 되세요?”     


지난번 한 학생이 질문했다.      


그 질문에 오히려 학생들에게 또 다른 질문을 했다. 누가 주식투자를 하고 있는 학생이 있냐고? 몇 명이 이곳저곳에서 손을 든다. 아니 무슨 돈으로.? 근데 표정이 밝지는 않다. 요즘 주식 상황 때문인 것 같다. 무엇보다 걱정이 앞섰다. “절대로 절대로..!!! 여윳돈으로 투자하라”라고 강조했다. 사회 초년생일 때는 투자보다는 자기 몸값을 키우는데 열정을 쏟으라고 했다. 자본소득에 미리 눈독 들이지 말고 몸값을 높여 근로소득을 높이는데 힘쓰라고 강조했다. 자신의 몸값을 올린 다음에 자본소득을 올려도 결코 늦지 않다고. 그래서 조금 더 실감 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나의 실패담까지 들려주었다.      




얼마 전, 메일함에 아내에게 온 편지가 있어 집으로 가져왔다. 봉투 겉면을 보니 ‘**투자증권사’이다.


'아내가 주식투자를 하고 있었나? 어떤 기업에 투자를 하고 있는 걸까' 궁금했지만 열지 않고 봉투채로 거실 탁자 위에 놓아두었다.    

 

다음날 아침을 먹고 아내와 얘기를 나누다 아내가 ‘**투자증권사’ 봉투를 열어 확인한다. 어떤 주식을 가지고 있는지 물었더니 30년 전에 구입한 주식을 아직 갖고 있다고 했다. 아니 30년이나 가지고 있었으면 엄청 올랐을 텐데..


그게 아니었다.     

아픈 기억이 있는 주식이었다.     

아내는 내가 퍼질러놓은 주식을 아직 갖고 있었다.


30대 중반 시절, 당시 정보통신 관련 주식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상한가를 치고 있었다. 친구로부터 얘기를 듣고 출근하면서 **통신회사의 주식을 매입하라고 아내에게 부탁했다. 당시에 통장을 아내가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내가 직접 전화로 매수 주문을 넣어야 했다. 난 회사에서 일이 있어 차로 이동하면서 아내에게 다시 전화해서 주문 확인을 하니 아직 안 했다고 한다. 그래서 빨리 주문을 넣으라고 독촉까지 하고 전화를 끊었다. (당시에는 전화로 주문해야 함) 왜냐하면 그 이전에 다른 정보통신사의 주식을 사서 이익을 조금 내고 있었기에 자신감이 충만했다.     


다음 날, 또 상한가를 쳤다.

‘역시 내 판단이 맞았어’라고 속으로 흐뭇했다.     


근데 며칠이 지나지 않아 통신주 모두가 곤두박질치면서 폭락하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의 닷컴 기업들의 버블과 함께 파산이 이어지면서 국내 주식시장 전체가 폭락하기 시작했다. 더구나 통신사들은 그동안 통신장비와 통신망에 과도한 투자로 인한 손실로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주식 매도시점을 놓쳐버려 팔지도 못하고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아내는 지금까지 갖고 있었던 것이다.      


아내가 주식 현황이 적힌 데이터 중에 수익률이 얼마인지 나 들으라고 큰소리로 알려준다. 당연히 마이너스 수익률이다. 뼈아픈 수익률이다. 30년 간의 물가상승률만 따져도 200퍼센트 이상의 수익이 되어야 하는데 말이다.       


이런 아픈 기억으로 인해 학생이 나에게 질문한 ‘수익률’에 대해 답을 선뜻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나마 여윳돈으로 투자했기에 천만다행이었다. 그렇지 않고 초반에 성공했더라면 나 자신을 과대평가하여 더 어려운 상황으로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그때 쓰라린 경험을 겪고 난 다음부터 투자에 신중에 신중을 기하게 되었다.    

  

주식투자에서 망하는 지름길이 있는 듯하다. 그 첫 번째가 ‘자기 과신’이다. 운 좋게 투자수익을 얻었지만 오로지 나의 명석한 판단과 능력 덕분이라고 착각한다. 물론 자신의 능력이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때’를 잘 만난 것이 더 크다. 단지 ‘때’를 잘 만났을 뿐인데 그걸 자신의 능력이라고 착각한다. ‘운칠기삼’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자기 과신이 충만해지고, 결국 적게 벌고 한꺼번에 크게 잃는다.       


그 마음의 습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자신과 거리를 두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자신을 객관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글쓰기’다. 지금 내가 글 쓰는 이 시간에 지난 과거의 나를 돌이켜본다.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모른다. 친구가 주식투자에 돈 벌었다는 얘기에 귀가 솔깃하고, 주식이 조금 오르면 이익을 너무 빨리 실현하면서 그 이익에 나 자신을 능력이상으로 평가하는 어리석음이었다. 자기 과신에 대한 착각은 ‘자기 합리화’와 ‘손실회피편향’이라는 인간 본성에서 출발한다. 인간의 내면 깊숙이 잠재되어 있는 마음의 습관에서 시작된다. 다음의 질문에서 그 답을 찾는다.      


‘나는 왜 아직도 폭락한 주식을 가지고 있을까?’

‘왜 개인 주식투자자는 대부분 종국에 가서는 투자에 실패할까?’

‘왜 부동산 투자는 상대적으로 주식과 비교할 때 성공할 확률이 높을까?     


단언컨대, 인간의 심리적 기제는 주식투자에 절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누가 성공하는데?
그 본능을 알고 그것을 거슬러 올라가는 사람들이다.   


  


그림 출처: Jamie Street by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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