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D-10, 페인트칠 D-1. 이사갈 집 문앞으로 페인트5L가 배송됐다. 롤러랑 붓만 있으면 어떻게든 칠하겠지 낙관하는 나와 달리 짝꿍은 유튜브를 뒤졌다. 과연 이걸 우리가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객관적 근거를 수집하기 위해.
"에어컨이 일단 없잖아. 내일 30도 넘는다는데" "선풍기 두 개로 역부족일까?" "지금이라도 돈 쓰는 방법이 있어" "직접 칠하는 거 재밌을 거 같은데..."
여건상 허클베리핀 작전이 통하지 않을 것 같아서 나는 일단 한번만 해보자고 했다. 약 7~8시간의 대장정을 예상하고 일찍(자정) 잤다. 다음날 아침 해체해 닦아둔 선풍기를 조립하면서 나는 짝꿍 말을 들을 걸 후회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약간 겁을 먹었다.
버려도 되는 옷 입고, 한 손에 선풍기, 한 손에 물통, 간이의자를 들고 카카오벤티를 탔다. 폭풍전야 고요한 택시 안에서 재밌잖아파와 잘하는 걸 하자파는 각자 미래를 점쳤다.
도착해있는 노루페인트 하얀색 5L와 DIY세트를 들고 집에 들어섰다. 창문을 열고 누워 쉴 돗자리를 펴고 팔레트에 페인트를 붓고 바닥에 비닐을 깔았다. 벽이랑 문을 롤러로 문대는 게 재밌었다. 짝꿍은 의자에 올라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3단 몰딩을 인내심 있게 칠했다. 또 그 어려운 걸 해내는 게 재밌어보여 나도 의자에 올라 천장 몰딩을 칠했다.
그렇게 1시간반 정도 칠하던 중 천장 칠하느라 한껏 젖힌 머리통이 아찔했다. 호다닥 내려가 돗자리에 드러누워서 전날 밤 짝이 한 말을 곱씹었다. 약 90분이 지났는데 거실의 반도 못 칠했고, 방 두개에 화장실이 남았으며 덧칠을 최소 2번은 해야 한다. 일단 짬뽕 짜장면 탕수육을 시켰다.
"안 되겠어" "그래 그냥 돈 쓰자" "어지러워. 재밌을 줄 알았는데" "우린 우리가 잘하는 걸 하면 돼" 약은 약사에게, 페인트칠은 업자에게. 코더는 코딩을 하면 되고, 키보더는 글을 쓰면 된다. 반박할 수 없는 진리를 깨달은 날이다. 누워서 진리를 곱씹다가 맞이한 짬뽕, 짜장면, 탕수육은 또다른 교훈을 주고 만다.
그린워시 당한 내 무의식이 배민의 주의사항을 간과한 것. <일회용품이 '필요하면' 체크해주세요> ㅋ일회용품을 왜 쓰나요? 젓가락이 있는데. 이날은 내 집도 짝꿍 집도 아니었다. 너무 힘들어서 인도인처럼 먹을까 1초 생각했다가 망설임 없이 나가 땡볕으 걸어 나무젓가락을 사왔다. 다 불어터진 짜증면 아니 짜장면을 먹으면서 열심히 사진 찍어 업자에게 보내는 짝꿍을 지켜봤다.
나는 오늘의 깨달음을... 일기로 남길게. 당신은 체계적으로 일을 외주 주시게... 여전히 임모씨는 직접 해보려고 하는 무대뽀 호기심을 전부 버리진 못한 상태다. 재밌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