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스팟이 어디냐고 물으면 나는 마토지뉴스.
엄밀히 따지면 마토지뉴스는 그 자체로 별개 지역인데, 포르투란 대도시에 붙어있어서 크게 포르투의 한 부분으로 인식되는 듯. 바다를 좋아하는 나는 마토지뉴스 해변에 누워있는 게 너무 좋다.
마토지뉴스 해변 가는 덴 포르투 중심에서 대략 40분 정도 걸린다. 상벤투 역 바로 앞에 500번 버스 타는 곳이 있는데 거기가 시점이자 종점. Detour해서 온 길을 그대로 돌아가는 순환 루트다. 사람들이 우루루 내리는 데서 타야 하는 것.
여기 버스는 제멋대로라 역에 쓰인 도착 예정시간은 믿으면 안 된다. 실시간 보여주는 전광판도 없음. 대신 정류장마다 있는 노선 정보 QR을 찍으면 내 주변 모든 정류장에 도착하는 버스 노선들이 어딨는지 실시간으로 보여줌. 이게 없으면 바보처럼 정류장에 서서 '왜 안 와??????'를 반복한다 마치 지난 날의 나처럼.
500번 버스는 2층 버스고, 도루강변을 바로 옆으로 끼고 지나 대서양까지 간다. 가는 방향으로 왼쪽 자리 앉으면 강이랑 바다 볼 수 있다. 처음 갈 때 그렇게 앉아서 갔는데 햇빛들고, 2층이라 울렁대고, 승객들 말소리 등등 때문에 멀미 남. 그래서 이번에 갈 때는 1층에 오른쪽 앉았다. 멀미 안나고 대신 잠이 옴. 도루강변에도 강태공 아저씨들 많다. 대구가 잡히나? 잡아다가 집에서 구워먹나? 무튼 그런 광경들과 정말 드넓은 대서양 보면서 대체 언제 도착하누.. 하다보면 마토지뉴스 도착한다. SOUSA AROSO 정류장에 내리면 바로 앞에 겁나 큰 핑구 도스 있다. 거기서 와인, 과자, 빵, 과일 사서 가면 이득. 오늘도 나타 2개, 포트 와인 한 병, 과자 샀다 크크. 금방 다 먹어버리는.
중요한 거슨 오늘은 파라솔을 샀다는 것. 처음 왔을 땐 파라솔도, 비치타올도 없이 먹을 거만 들고와서 모래바닥에 그냥 누워 있었다. 직사광선에 몸 상할까봐 옷도 못 벗고 찐따처럼ㅠ. 그래서 오늘은 그런 패착을 범하지 않기 위해 파라솔을 삼. 핑구 도스에서 9.99유로. 좀 허술해보이는데 그 다음 행선지 오흐리드에서도 요긴하게 잘 쓸 것 같다. 어떻게 들고 가지?
파라솔 모래에 꽂고 수영복 입고 누웠는데 바람이 세다.ㅋㅋ 또 입에 모래 들어가기 시작. 옆에 할아버지 보니까 배드민턴 가림막처럼 생긴 걸 본인 오른쪽(바람 불어오는 방향)에 꽂아놓고 누워있다. 로칼들은 모래바람 막는 방법을 역시 이미 아는 것. 저것도 살까 하다가 그냥.. 모래 입자 싶어 누움. 와인도 마시고 나타도 먹고 누워서 하늘도 보고 멍도 때리고.
근데 계속 아 책이라도 가져올 걸, 유튜브라도 다운 받아 올 걸, 뭐 쓰게 종이라도... 에어팟이라도.... 아니면 좀 골똘히 생각할만한 거리라도... 이러고 있는 날 발견. 옆에 보면 다 누워서 햇빛이나 쬐고, 수영하고, 떠들고, 노래 듣고, 잠자고, 발리볼하고 이러고 있는데. 인풋병에 걸린 한국인.
아무 것도 안 하는 걸 잘 하는 사람들 보면서 따라해보려고 한다. 늘 뭔가 분주하고 멀티태스킹에 익숙해서 뇌가 노는 걸 못 참는 것 같다. 아이러니한 건 회사에 있을 때 너무 일이 많아서 서너 시간 동안 의자에서 엉덩이 한 번 뗀 적 없이 일하다 잠시 점심시간에 밖에 나가서 한 생각이 '아무 것도 안 하고 멍 때리고 싶다' 였다. 그토록 원했던 걸 지금 지겹도록 할 수 있는데, 지겹도록 해본 적도 없이 지겨워하는 게 정말 웃겨. 중요한 건 인스타그램을 안 하는 거다. 미친 중독. 인스타그램이 인생을 망치고 있다. 밀리의 서재에서 읽을 책이나 다운 받아서 가야지 다음 번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