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함은 사이에 있습니다. 과거와 미래의 사이, 현실과 이상의 사이, 조직과 개인의 사이, 너와 나의 사이. 탁월함은 한쪽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습니다. 유(有)와 무(無)가 상생하듯 완전함은 서로를 내포한 속에서 도출됩니다. '사이'는 정량적인 중간이 아닙니다. 이것과 저것의 양단을 모두 아우른 상태에서의 오묘한 그 어떤 지점입니다. 탁월함은 항상적이지 않습니다. 시간과 공간, 배경과 관계에 따라 변화하기에 가역적입니다. 철학적 사유와 같은 고도의 영역일수록 기존 방식과 익숙함도 통하지 않습니다. 탁월함은 진흙 속의 진주처럼 쉽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탁월함은 객체와 조우한 주체의 경험, 지식, 노력, 지혜로부터 구현되는 존재의 정수(精髓)입니다. 하여, 부단히 갈고 닦아야만 '사이'에 숨겨진 탁월함을 취할 수 있습니다.
새문장도 그러합니다. 우리글에 내재되어야 할 세 요소, 책과 철학적 논제 그리고 자신. 바로 그 '사이'에서 탁월함을 구해야 합니다. 첫째, 새문장의 글은 책에 대한 비평 또는 평론이 아닙니다. 작가의 철학을 무조건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것 또한 아닙니다. 문학은 현실의 반영입니다. 온갖 모순이 교차하는 현실을 책에서 목도하고, 내용이 암시하는 질문과 논제를 발굴해야 합니다. 글에 젖어들어 책과 혼연일체 되고, 한편으론 냉철한 시선으로 글에 함의된 문제의식을 꿰뚫어야 합니다.
둘째, 우리글은 철학적 논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유명 철학가들의 사유를 그대로 옮기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 기존 철학을 인용한다면, 그것은 자기화되어야 합니다. 자기화란 자신의 경험과 지혜 또는 현실 세계를 통해 기존의 사유를 재해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 더 나은 자신,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사유의 발현. 이것이 통찰입니다. 이것이 철학하는 인간이며 나의 철학이 피어나는 지점입니다.
셋째, 읽기와 쓰기는 정신과 육체를 극복하는 오직 자신(自身)과의 투쟁입니다. 나에게 밀려오는 감정 또는 자아와의 투쟁이 아닙니다. 나를 벗어나 인간을 이해하고 세계를 해석해야 합니다. 잘 쓰려는 마음, 타자의 시선, 인정 욕망, 자기반성처럼 내 안에 맴도는 자아의 투영은 글의 집중을 방해하는 장애물입니다. 잘 보이려는 마음은 불안과 산만함으로 혜안(慧眼)을 어둡게 합니다. 글은 한 치의 간극도 없는 자기 자신입니다. 내용의 깊이는 곧 존재의 깊이입니다. 자신의 깊이가 설득력을 갖게 될 때, 좋은 글은 자연스레 피어납니다. 감정과 자아의 끄달림을 경계하고, 오롯이 문제의식에 집중하는 것이 좋은 글을 짓는 첩경입니다.
우리 앞에 놓인 네 번의 글쓰기와 합평은 미증유의 길입니다. 망망대해 한가운데 떨어져 어디로 노를 저어야 할지 모르는 아득함이 기다립니다. 어쩌면 그러한 시공간에서 한없이 무력한 자신을 목도하고 괴로움에 몸부림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믿고 함께하는 사우(社友)를 의지해 포기하지 않는다면, 좌절과 정진 속에 이전보다 깊어진 자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철학은 내 안에 뿜어 나오는 사자후(獅子吼)입니다. 타협하거나 토론한 것이 아닙니다. 옳고 그름이 궁극적인 문제는 아닙니다. 세계를 자기가 정하는 것이며, 자신을 믿어야만 가능합니다. 책과 철학적 논제 그리고 자신, 그 ‘사이’에서 탁월함을 길어 올리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