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의 고양이
주택생활을 시작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마당에 놀러오는 고양이에게 밥을 줄 수 있다는 점이었다. 2년간 잠시 빌린 나와 짝꿍의 집은 우리가 이사오기 전 집주인이 두 마리의 개를 키웠었기에 처음에는 작은 고양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나만 고양이 없어.’라는 마음으로 두 달쯤 지났을 때 였을까. 종량제봉투 가득 장을 보고 돌아오던 퇴근 길, 흰 고양이-정확히 표현하자면 딱 봐도 페르시안이나 터키쉬 앙고라같은 품종묘- 한 마리가 다짜고짜 내 다리에 머리를 갖다대고 부비적거렸다. 내 손에 들려있는 종량제 봉투의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흰 고양이에게 유혹적으로 들렸던 모양이다. 꼬리를 개마냥 붕붕 흔들어대는 고양이에게 나는 줄 간식이 없었고, “미안.”하고 웃으며 집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그 날 저녁 두근거리는 마음과 한껏 솟아오른 광대뼈를 두 손으로 누르며 간신히 잠들었다. 두 눈을 감으며 내일은 꼭 고양이 간식을 가방에 넣어둬야겠다고 다짐했다. 노동의 대가로 받는 월급은 왕왕 다른 생명체를 위해 쓰게 된다.
‘템테이션'이라는 간식-츄르를 싫어할지언정, 템테이션을 싫어하는 고양이는 아직 보지 못했다-을 사서 집으로 가는 퇴근 길, 또 흰 고양이를 만났다. 템테이션을 가득 줬더니 맛나게 먹고,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왔다. 매일 보이는 흰 고양이가 너무 반가웠지만 반가움만큼 걱정이 쌓였다. 잠깐 외출나오는 고양이인줄 알았던 공주님같은 외모의 이 고양이는 자꾸만 때가 꼬질꼬질껴서 왕초같은 모양새가 되었기 때문이다. 같은 골목을 쓰는 한 집사와 잠시 대화나눴는데, 어떤 집이 이사가면서부터 골목에서 보였던 고양이라며 분명 버려졌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흰 고양이에게 밥과 간식을 갖다바치며 2년간 잠시 빌린 집의 마당을 다 내준 시간이 다섯달쯤되었다. 흰 고양이에게는 ‘미미'라는 왕땅콩을 달고 있는 터키쉬 앙고라에게 딱 맞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다섯달 동안 마당을 독점하던 미미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검정색에 아주 조금 흰색이 섞인-그 모습이 마치 안 맞는 턱시도를 억지로 잠궈둔 모양새-턱시도냥이 등장. 어느 날 새벽에는 앙칼지게 고양이 우는 소리가 마당을 가득 채웠는데, 그 소리는 담을 넘어 부근에 있는 대학교까지 쩌렁쩌렁 울렸(을 것이)다. 딱 봐도 미미는 집에서 귀하게 자란 도련님 스타일이어서 턱시도 고양이의 등장으로 숨고 도망치기에 급급했다. 태풍이 한 차례 지날 때마다 어디선가 들쥐를 잡아다가 문 앞에 조공해줬던 미미의 마음을 알기에, 나도 마음이 급해졌다. 그렇게 미미는 2년 간 빌린 짝꿍과 나의 집에 들어오게 된다. 미미를 미용실에 데려가 털을 밀어 도련님 아닌 백숙 모양새로 만들었고, 병원에 데려가 17만원을 바쳐 건강함을 인증받았다. 그렇게 자식도 없고 결혼도 아직 안한 미혼커플인 짝꿍과 나는 고양이 미미를 양자로 입양했다.
회사에 영혼을 갈아바쳐 만든 조금의 돈으로 나는 미미의 캣타워를 샀다. 캣타워는 창 밖을 바라볼 수 있게 두어야 고양이 복지에 좋다는 냐옹신 박사의 뜻에 따라 캣타워는 집 안에 있는 세 개의 창 중 마당이 가장 잘 보이는 창문 옆에 멋지게 설치했다. 설치 과정은 ‘멋’과는 거리가 멀었다. 겨드랑이 가득 땀이 삐질삐질 났지만 결과는 멋졌다. 미미 녀석이 제일 좋아하는 자리가 바로 캣타워이며, 캣타워 중에서도 창가가 제일 잘 보이는 자리를 애정한다. 오늘 아침에는 눈을 뜨자마자 눈꼽만 대충 떼버리고 미미가 바라보는 시선을 따라가 보았다. 한참을 눈도 깜빡이지 않고, 쳐다보기에 그 시선을 따라갔더니 턱시도를 간신히 입은 고양이가 있었다. 나는 라이온킹을 어릴 적 100번도 넘게 본 덕후로써 그 고양이에게 ‘스카'라는 이름을 주지않을 수 없었다.
스카는 미미가 꼬질꼬질 길냥이로 지내던 시절부터 미미의 마당을 독차지하려 애썼던 녀석인데, 기어코 미미를 몰아내고 마당을 차지했다. 스카는 미미를 집 안으로 몰아낼 생각은 없었겠지만 결과는 만족스러워보였다. 스카는 다른 길냥이와는 전혀 우호적이지 못해 예쁜 고양이들을 하나같이 쫓아냈다. 나는 잠들기 전 옆으로 누워 유튜브를 보다가 잠이 들곤 하는데, 고양이 전문 유튜버들이 네 다섯마리의 길냥이들에게 밥을 주고 그 고양이들과 마당을 뛰노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부러움의 눈물이 한 방울 툭 떨어졌다. 그 모습은 내겐 판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