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정의 기록 Aug 18. 2020

로우 (2)

욕망하는 여자들 - 보고 듣고 말하기 #23

쥐스틴은 알렉스의 도움을 받아 어렵사리 대학교의 입회 의식을 치른다. 피를 뒤집어쓰고 토끼 콩팥을 삼킨다. 성 요한이 물로 세례를 내렸듯이, 쥐스틴과 동기들은 피로 세례를 받는다. 이제 그들은 한패다. 피를 뒤집어쓴 쥐스틴은 처음에는 당황한 표정을 짓지만, 선배가 규칙을 알려줄 때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감돈다. 쥐스틴의 머리 위에 쏟아진 피가 그의 옷을 붉게 물들였듯이, 식인에 대한 쥐스틴의 욕망은 그의 온몸을 천천히 타고 흐른다. 물들지 않은 곳을 찾아볼 수 없을 때까지. 



영화 <로우> 스틸컷

선배는 나팔소리가 세 번 울리면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초짜 신입생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매우 힘든 상황일지라도 기한이 정해져 있으면 희망이 생기기 마련이다. 신입생들은 피 칠갑을 하고도 밥을 먹을 수 있는 것은 이 모든 것이 끝날 때가 다가오고 있노라 굳게 믿기 때문이다. 


그날 밤 쥐스틴의 온몸은 발진으로 뒤덮인다. 쥐스틴만의 성인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순간이다. 그 후에도 쥐스틴은 여성 선배에게 옷을 야하게 입으라고 타박받은 뒤 강제로 기저귀를 차게 되는 등 끊임없이 억압당한다. 그는 폭력적 일상에 완전히 순종하거나 반항하지 못하고 모호한 태도를 보인다. 방에서 파트너와 오럴섹스를 하는 아드리안의 모습에 당황하여 문을 닫고 그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식이다. 억압에 대한 스트레스로 파괴에 대한 갈망은 쥐스틴 자신에게로 향한다. 괴팍한 남성 교수에게 부정시험 의혹을 산 알렉스는 제 머리카락을 씹는다. 그리고 화장실로 가 머리카락을 토한다. 


알렉스는 쥐스틴과 전혀 딴판이다. 알렉스는 폭력의 구조에 능숙하게 적응했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그럼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바를 달성한다. 그런 알렉스가 쥐스틴의 발진 치료용 연고와 동일한 연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쥐스틴이 겪은 것을 알렉스도 겪었으며, 그 과정이 지금의 알렉스를 낳았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알렉스는 쥐스틴에게 있어 새로운 세계의 규칙을 알려줄 유일한 스승이다.


고기에 대한 열망이 커지면서 쥐스틴은 점차 변화한다. 식당에서 패티를 훔치고, 공용 냉장고에서 아드리안의 고기를 꺼내 몰래 먹는다. 알렉스의 잘린 손가락을 게걸스레 먹어치우기까지 한다. 


카니발리즘 풍습을 따르는 많은 부족은 죽은 이를 먹음으로써 그를 자신의 친구로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친구가 죽으면 자신과 함께하길 바라며 먹고, 적을 죽였으면 그가 복수하지 못하도록 먹었다. 쥐스틴은 언니의 손가락을 먹는다. 알렉스는 쥐스틴이 자신의 손가락을 다 먹어치우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다. 잠이 들었을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인지할 수 없다. 죽음의 시간을 짧게나마 경험하는 것이다. 알렉스가 생 저편의 시간에 잠시 머무를 때 쥐스틴은 알렉스의 피와 살을 먹는다. 그리하여 쥐스틴의 몸에는 어머니는 물론 언니의 피마저 흐른다. 그는 어머니와 언니를 잇는 유일한 이가 된 셈이다. 알렉스는 눈을 뜨고 입에 피를 묻힌 쥐스틴을 보자 눈물을 흘린다. 자신의 고통을 이해하고 함께해 줄 이를 찾았다는 안도감과 자신도 겪은 고통을 감당해야 할 쥐스틴에 대한 연민이 뒤섞인 눈물일 것이다. 

영화 <로우> 스틸컷

부모님이 병원에서 떠나고 둘만 남자 알렉스는 쥐스틴에게 사냥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그러나 쥐스틴은 알렉스의 방식을 거부한다. 자신의 욕망을 인정하지 못하는 쥐스틴에게 알렉스는 화를 내고 쥐스틴은 도망친다. 그러나 변화는 이미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가속도가 붙었다. 첫 사냥 이후 쥐스틴은 전과 달리 능숙하게 동물의 사체를 다루고, 아드리안의 육체를 보며 강한 충동에 휩싸인다. 아드리안과 사랑을 나눌 때, 쥐스틴은 인육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갈망에 휩싸여 자신의 손목을 물어뜯는다. 그런데도 아드리안을 해치지 않는다. 아슬아슬한 차이지만 이것이 알렉스와 쥐스틴의 운명을 가른다.     


두 번째 파티에서 쥐스틴은 이전과 달리 어색해하지 않는다. 쥐스틴은 붉은 조명 아래에서 양다리를 벌린 자세를 하고 카메라를 응시한다. 그가 그동안 억제해 온 욕망과 육체적 충동이 알코올로 인해 풀려나려 하는 것이다. 몸도 못 가눌 정도로 술에 취한 쥐스틴을 본 알렉스는 그를 해부실로 데려간다. 그리고 쥐스틴에게 목줄을 채우고 시체 냄새를 맡게 한다. 먹이를 향해 달려드는 짐승처럼 쥐스틴은 시체를 향해 달려들고, 사람들은 그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는다. 전날 밤에 있었던 일을 알게 된 쥐스틴은 알렉스에게 달려간다. 아마도 알렉스는 스스로의 욕망을 부정하는 동생에게 화가 났을 것이다. 사냥하는 방법마저 알려줬는데도 쥐스틴이 욕망을 부정하고, 본능에 충실한 자신을 혐오하는 것에 분노한 것이다.


둘은 크게 충돌한다. 알렉스는 쥐스틴의 뺨을 물어 살점을 뜯어낸다. 상대의 손목을 꽉 문 채 서로를 노려보는 자매의 모습은 이들이 아무리 반목하더라도 결코 서로에게서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자매의 싸움에 끼어 들은 남성들은 그들을 제압하려 한다. 남성들이 뒤에서 자매의 목을 조르는 장면은 마치 맹수를 길들이려 시도하는 사육사의 모습과 닮았다. 어느새 싸움은 자매간의 다툼에서 자매와 나머지 인간들 간의 대결로 바뀐다. 자매는 굴복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일어서고 통제에 실패한 이들은 도망친다. 싸움이 끝나고 자매는 어설프게나마 화해한다. 


자매는 각자의 방으로 떠나지 않는다. 알렉스는 쥐스틴의 방에서 자고 알렉스는 아드리안과 함께 잔다. 쥐스틴은 알렉스가 있는 방문을 잠글까 잠시 고민하지만 잠그지 않는다. 아드리안은 바로 그날 밤 알렉스에게 잡아먹힌다. 쥐스틴이 알렉스의 방에서 알렉스의 손가락을 먹은 것처럼. 세 번의 나팔 소리가 교정을 메우고 오리엔테이션이 신입생들은 한두 명씩 졸린 눈으로 광장에 모인다. 이 나팔 소리는 유대인들이 나팔절에 부르는 뿔나팔 소리와 유사하다. 특히 회개를 강조하며 세 번 끊어 구슬피 부르는 나팔 소리를 말하는 ‘셰바림’과 닮았다. 본래 나팔절은 모세가 이끌던 유대민족이 저지를 우상숭배를 신이 용서한 것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나팔절에는 반드시 희생제물을 신에게 공양했다. 아드리안의 무고한 자고 그러므로 그는 희생제물이 될 자격이 있다. 

영화 <로우> 스틸컷

나팔소리에 이어서 이탈리아 대표하는 칸초네 가수 나다가 부른 ‘그러나 식어버리기 전에’(Ma Che Freddo Fa)가 교정 스피커에서 흘러나온다. 사랑을 잃고 방황하는 여인에 관한 노래는 굳게 닫힌 창문 사이로도 흘러들어온다. 쥐스틴은 멀리서 들려오는 음악에 눈을 뜬다. 그리고 아드리안의 죽음을 확인한다. 그 순간 쥐스틴은 진실을 알게 된 대가를 메울 수 없는 상실감으로 치른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잠들기 전 알렉스를 바라보던 쥐스틴의 얼굴과 아드리안의 옆에서 누워있는 쥐스틴의 얼굴은 어딘가 다르다. 쥐스틴의 입 주위에는 전날 밤에는 없었던 피가 묻어있다. 거울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확인한 쥐스틴은 오열한다. 왜 막지 않고 당했느냐고 울며 소리 지른다. 옆으로 누워있는 아드리안의 시체를 보면 왼쪽 허벅지의 상당 부분이 뜯겨나가 있다. 그 상처가 워낙 참혹하여 눈에 잘 들어오지 않지만, 아드리안의 등에는 구멍이 나 있다. 그리고 침대 밑에는 스키폴이 있다. 아드리안은 누군가 스키폴로 찔러 일격에 살해당한 것이다. 죽은 아드리안의 평온한 표정이 이 가정의 근거가 된다. 쥐스틴은 알렉스와 함께 아드리안의 시체를 먹은 것일까? 쥐스틴의 입에 피가 묻어있긴 하지만 진실은 알 수 없다. 입뿐만 아니라 옷까지 피범벅이 된 알렉스와 달리 쥐스틴의 옷은 말끔하다. 죽은 아드리안의 옆에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알렉스가 아드리안을 죽인 후 쥐스틴의 입에 피를 묻혔을 수도 있다. 한데 알렉스는 왜 넋이 빠져 있을까? 아드리안 외에도 여러 사람을 죽였을 텐데, 이전과 반응이 너무도 다르지 않은가. 


쥐스틴은 넋을 잃은 알렉스의 머리를 스키폴로 겨눈다. 도축할 짐승의 머리에 스턴 건을 겨누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 맛을 본 짐승은 반드시 안락사를 시켜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은 파국에 대한 예언이었다. 불행은 이렇듯 갑작스러운 순간에 찾아든다. 화해의 밤이 살육의 장으로 뒤바뀌고, 무고한 이가 희생자로 끌려 나온다. 쥐스틴이 알렉스가 방문을 잠갔다면, 아드리안이 스키폴을 가져오지 않았더라면 결과는 달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은 불행에 빠진 이가 품는 헛된 희망에 불과하다. 쥐스틴 역시 관객과 마찬가지로 아드리안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온전히 파악할 수 없다. 알렉스가 침묵하기 때문이다. 동생이 몸을 씻겨줄 때도 그는 말이 없다. 쥐스틴이 할 수 있는 일은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뿐이다.  

   

면회가 끝나고 알렉스와 쥐스틴은 서로가 서로에게 남긴 흉터를 보이며 헤어진다. 설령 그들이 다시는 만나지 못하더라도, 그들은 자신의 흉터를 보며 끊임없이 자매의 존재를 상기하게 될 것이다. 알렉스는 쥐스틴의 그림자이고 쥐스틴은 알렉스의 그림자이다.

영화 <로우> 스틸컷

마침내 쥐스틴으로 여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어머니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아버지는 비밀을 털어놓는다. 알렉스와 쥐스틴의 갈망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고 말이다. 그는 셔츠를 풀어 가슴의 흉터를 내보이면 말한다.      


“아가, 넌 방법을 찾을 거야.”     


아버지의 말과 달리 쥐스틴은 아무 방법도 찾지 못할 것이다. 인육에 대한 갈망은 모계혈통으로 이어지는 불행일 따름이다. 미트볼과 마찬가지로 그 불행에 이유는 없다. 쥐스틴은 그저 어머니의 딸로 태어났을 뿐이다. 설령 그가 수의대에 입학하지 않았거나 채식이라는 부모의 엄격한 통제에서 벗어나지 않았더라도, 예고된 불행은 다른 외피를 빌려 찾아왔을 것이다. 쥐스틴은 이미 심연을 들여다봤고 그 사실을 절대 바뀌지 않는다. 입안에 들어온 미트볼을 뱉든 삼키든 그의 입에 미트볼이 있었다는 사실은 동일한 것처럼 말이다.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나름의 연유를 찾는 것뿐이다. 채식을 통해 욕망을 억누를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어머니처럼 말이다. 


생의 얇은 외피가 한 꺼풀 벗겨질 때 우리는 어떠한 ‘날 것’을 지켜보게 된다. 줄리아 듀코나우 감독은 자신의 첫 장편영화에서 이 사실을 능숙하게 직조한다.


날 것은 여성 혐오일 수 있으며, 전체주의일 수도 있다. 혹은 터부시 되어 온 여성의 성애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여성들이 폭력에 노출되었을 때, 이를 인내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점이다. 


<로우>에서 폭력은 부계혈통으로 계승되지 않는다. 오로지 모계혈통으로 계승될 뿐이다. 여타의 영화와 달리 여성은 피해자로 재현되지 않는다. 포식자로 현현될 뿐이다. 이제 다시 첫 장면으로 돌아가야 한다. 대담하게 사냥을 하던 이는 누구였을까. 확실한 것은 소녀는 자랐고 먹잇감을 향해 달려드는 이는 우리가 경험한 종류의 포식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로우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