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알지 못하고, 나만 아는 미련한 봉투.
하루는 아버지와 결혼식장에 갈 일이 있었다.
그는 신부 측으로 가서 봉투 두 개를 내밀었다.
하나는 익숙한 나의 아버지, 하나는 부를 일 없는 낯선 큰아버지의 이름.
심부름이겠거니 생각하고 식장에 들어가려는데 아버지께서 나를 불러 세우며 나직이 말하셨다.
“어머니한테 말하지 마라이.”
그 돈이 뭐길래?
그는 가족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가족의 일이면 알아 나서는 사람이다.
아버지 밑으로 작은 아버지 두 분이 계시는데, 작은아버지들이 학업들을 마치고 도시로 나갈 때까지 아버지는 고향집을 지키셨었다.
타지에 나가있는 큰아버지들을 대신해 아버지의 큰집, 작은집의 대소사까지 스스로가 나서 하셨었고, 그 탓에 늦은 나이에 고향을 떠나 올 수 있었다.
그는 그때 오래 고향을 지킨 보상으로 강원도 밑의 경북 어딘가에 땅을 유산으로 물려받았었다.
하지만 그 땅은 다른 사람의 땅이 되었다.
그 땅이 갖고 싶어 어머니를 괴롭힌 큰댁의 큰어머니께 드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는 유산 하나 물려받지도 못하고 고향 땅을 지켰던 바보가 되었다.
욕심 많은 큰어머니가 있는 큰댁이 싫어 하나 둘 연을 끊었지만, 미워서 연을 끊을 법한대도 아버지는 제사나 명절을 꼬박 챙기며 큰댁을 들락거렸다.
그런 큰댁에 안 좋은 일이 연이어 일었다.
부모자식 간의 다툼 그리고 큰어머니는 병을 얻어 돌아가셨고, 장손도 몇 해 전에 숨을 거두었다.
얼떨결에 내가 장손이 되었다.
아버지의 아들은 장손이 되었지만, 그는 대한민국 장손의 의무를 강요하지 않았다.
그냥 자신이 해야 될 일과 그의 아들이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는 것처럼, 자신이 아들을 보고 싶어 해 와 줄 수 있는지를 넌지시 물어보기만 할 뿐이었다.
괴롭힘을 당하고, 칭찬 한 번 듣지 못해도 제 할 ’ 도리‘라 생각했는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 여기며 사셨다.
그렇게 미련하게 자신의 선을 지키며 말이다.
이제와 생각하건대, 아버지는 나에게 가르쳐 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자신은 그렇게 가족을 지켜 살았었다고, 남이 몰라주어도 가족을 위해 사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아마도 아버지의 봉투를 큰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시는 날까지도 모르실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