샵들만 다녀도 하루가 충분한 포틀랜드 투어
2017년 12월, 시작은 단순했다. 브랜딩에 관심이 많던 나는 포틀랜드가 궁금했다. 포틀랜드에 도대체 무엇이 있길래 스몰 비즈니스의 성지인지, 왜 크래프트 산업이 잘 되는지, 로컬이 무엇이길래, 에이스호텔 로비에서 스텀프타운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정말로 나도 힙해지는 것인지.(아니었다 이건.)
2016년 초 뉴욕을 여행했던 영향도 컸다. 거기서 볼드하고 미국스러운 디자인을 살펴볼 때면 죄다 포틀랜드 로컬 브랜드였던 것이다. 뉴욕의 짧은 여행에서 브랜드들의 이야기를 좀 더 면밀히 듣고자 종사자들로 하여금 간단한 인터뷰를 진행했었는데, 같은 방식의 만남-인터뷰를 포틀랜드에서 진행한다면 훨씬 많은 걸 배울 수 있을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떠난 이 여행에서 나의 포커스는 온통 '취향'이었다. 포틀랜드 사람들은 어떤 취향을 소비하고 있는걸까? 그것은 포틀랜드만의 오리지널리티일까 아님 현재에 최적화된 트렌디한 씬일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나는 남들이 하지 않는 방식의 여행을 선택했다. 하루의 아침을 시작할때면 몇 개의 샵을 구글에서 서칭하고 그걸 바탕으로 구글 맵핑을 하고, 그렇게 동선을 짜서 하루종일 샵만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에는 그냥 '편집샵' 혹은 포틀랜드 태생의 로컬 브랜드샵 정도의 기준만 가지고 열심히 다녔는데 지금 살펴보니 일정이 짧은 분들께는 유용한 자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현재는 사라진 샵도 많을 것이다. 2년 전 자료이지만 포틀랜드에 호기심을 가지고 가시는 분들께 작게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고, 나에게 좋은 기억을 안겨준 포틀랜드가 재밌는 여행지로 오래 사랑받기를 희망한다.
크래프티 원더랜드 : 아기자기한 기념품 가게 정도의 느낌이다. 캐쥬얼한 크래프트 상품들만 모아두었다. 포틀랜드산 제품만 모아둔 편집샵을 원한다면 개인적으로는 뒤에 소개할 made here pdx를 더 추천한다. 누구나 호기심을 가질만한 제품들이 많지만 가격이나 구성에서 일관됨이 느껴진다기보다 들쑥 날쑥하다. 캐쥬얼하고 재밌는 포틀랜드의 것들을 모아둔 느낌이고 아이와 둘러보기 좋은 느낌의 샵이었다.
포틀랜드에서 먹어야할 것, 체험해야할 것, 방문해야할 곳의 체크리스트로 만들어진 편지지가 딱 이 곳의 느낌을 대변한다. 큰 기대는 하지않고 둘러보면 좋은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국내 인사동의 정체 모를 기념품샵들보단 훨씬 정제되어 있는 느낌이다. 의외로 비싼 울 블랭킷 같은 제품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10-20$에서 구성되어 있다. 당시 결혼을 준비하고 있던 나는 여기서 울로 만든 10$짜리 반지로 프로포즈를 했고 행복한 가정의 남편이자 아빠가 되었다. 돌이켜보니 정말 고마운 샵이다.
검색해보니 North East에 선물가게 아닌 홈 굿즈 스토어가 또 있다. 여긴 가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홈 굿즈는 Canoe, Mentel를 추천한다. 크래프티 원더랜드라는 브랜드 자체가 fine goods 보다는 구매가 편한 가격대에 포틀랜드 기념품이라 부를만한 제품들 위주로 구성되어 홈 굿즈도 큰 차이가 없을것 같다.
펜들턴 : 포틀랜드에서 꼭 살펴보는 브랜드 아닐까? 오레건의 가장 유명한 로컬 브랜드 중 하나로 브랜드 스스로 가지는 자부심도 대단하지만 실제로 이를 소비하는 포틀랜드 사람들의 높은 로열티가 잘 어우러진다. 포틀랜드 내에서 몇 군데 옮겨다닌 에어비앤비에서도 늘 1-2개의 울 제품은 펜들턴이었다.
나는 Yamhill st에 있는 매장을 방문했는데 첫 인상은 썩 좋지 않았다. 아마 물건을 사지 않는 뜨내기라 생각했을 것이다.(정확히 잘봤다. 녀석들..) 하지만 제품들을 살펴보며 불편한 마음은 눈녹듯 사라진다.
펜들턴은 좋은 양모, 다양한 디자인 패턴, 컬러에 대한 스토리텔링에 아주 능하다. 각 패턴과 컬러는 분명한 히스토리가 있고(그것을 떠나 예쁘다. 특히 포틀랜드에서 직접 보면 매력이 더블이 되는 느낌) 로컬 상품에 대한 자긍심이 높은 포틀랜드 피플은 물론, 좋은 퀄리티의 로컬 상품을 찾으러 온 방문객까지 손쉽게 사로 잡는다. 자신들을 잘 알뿐만 아니라 무엇을 기대하는지도 정확히 알고 있는 느낌이다.
그렇지만 정작 내 눈길을 많이 끌었던 것들은 정통한 울 제품이 아니었다.
내가 난방에 익숙하고 캠퍼도 아니기 때문인 점도 있었겠지만 나는 위와 같은 상품들이 더 눈에 더 들어왔다. 그리곤 생각했다. 펜들턴이 정말로 똑똑한건 단순한 울 제품들을 벗어나 다양한 제품에서 아이덴티티를 전달한다는 점. 그리고 콜라보를 통해 브랜드의 컬러를 보다 확장시킨다는 점. 이 두 가지 방식이 펜들턴을 평범하게, 그리고 구식으로 보이지 않게 만들고 고객들과 현재를 함께 호흡하게 만든다고.
스타워즈와 콜라보한 담요에는 스토리를 담은 고유한 패턴은 물론 제품 라벨에도 '새로운 동맹'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위트를 보인다. 매장에 왠 동화책이? 하면서 집어든 젤리캣북스와 콜라보한 책에는 텍스쳐가 다른 원단들로 각각의 동물 표피의 질감이나 특성을 입체적으로 표현해두었다. 당시 결혼도 하지 않은 미혼이었음에도 이 책을 사지 않을 이유를 찾지 못했다. 다만 '내일 와서 사야지' 하곤 깜빡한 내 망각에 감사할뿐...
은 현재 진행형이다. Live in oregon. 펜들턴을 보았을 때 '로컬' 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국내에서도 온라인에서 구매가 가능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꼭 포틀랜드에서 펜들턴을 만나보고 오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