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적 동기와 외적 동기의 적절한 배합
자기소개서의 꽃, 지원동기. 이것은 이직을 하려고 할 때마다 여전히 내 발목을 붙드는 질문이라서 여전히 자신 있게 말하긴 어려운 부분이다. 그럼에도 몇 가지 대답이 될 수 있는 여지가 있어 남겨본다.
개인적으로 지원 동기라는 것은 두 가지 관점의 콜라보라고 생각한다.
부제에서도 언급했듯 내적 동기와 외적 동기, 이 두 가지가 잘 섞이면 좋은 답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나의 경우 다음과 같은 내외적 동기가 있었다.
내적 동기는 시골로 가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고, 외적 동기는 새로운 일에 관심을 가지고 분석하고 그것을 문서로 표현하는 것을 좋아했던 성향이었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그 일을 즐겨하지 않는다는 것이 키포인트였다. 즉, 내가 가진 고유의 특성이자 강점이 회사의 필요와 맞아떨어졌다.
진짜 솔직하게 적어보면 내적인 동기에서 시작할 수 있다. 일단 공부를 못했으니 삼성은 광탈이었고(아니 뭐 그렇다고, 너네 회사를 택한 건 나의 차악이었어- 란 대답을 할 수 없…), 무엇보다 시골에 가고 싶지 않았다. 전국에 계신 화학공학과 출신들은 다 공감하겠지만.. 공돌이(공순이)들의 숙명은 컨츄리행이다. 그냥 적당한 시골이 아니다. 동네 마트에 가면 온갖 동남아 말을 구경할 수 있는 그런 전설 같은 곳도 있단다. 어쨌든 화학공학과를 졸업할 시기가 다가옴과 동시에 우린 어디가 내 비빌 언덕인가를 찾을 때가 되면서, 생경한 이름의 도시를 많이 접하게 된다. 전철도 없어서 면접은 어떻게 가야 하나 걱정해야 하는 곳도 있다.(향남.. 당신은…)
간혹 외국계 제약회사나 석유화학계 제품 관련 회사도 있다. 화학공학 전공 지식이 필요하고 영어를 잘해야 하지만,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직무는 딱 하나, 영업이었다(영업 비하가 아니라, 나는 영업을 할 수 없는 초예민성격임.. 모르는 사람한테 말 거는 것에 알레르기가 있음..). 화공, 즐거웠고, 다신 보지 말자~:-(
그러다 보니 나는 왜 굳이 화학공학과와 연관된 직장을 얻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1도 찾지 못했다. 물론 내가 좀 집순이 기질이 있어서 그런 시골도 나쁘지는 않을 뻔했지만 "내 연애는..? 결혼은...?!"을 생각하면 더 깜깜해 보였다, 내 미래가.
무조건 서울에서 일할 수 있는 직종을 찾아보았다... 없었다. 마케팅, 전략기획, 재무, 인사, 노무- 이 모든 것들이 그 유명한 인문사회상경계열 문과생들의 곡소리 나는 전쟁터였다. 거기에 문과 무면허인 내가 끼어들 틈이 있었을 리가.. 없었지..
그리하여 원했든, 원치 않았든 과거부터 내가 어떤 일을 하면서 지내왔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가만히 앉아 곰곰이 생각했다. 난 뭘 잘할까, 난 무엇을 할 때 가장 즐거운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고민하던 중 [다양한 영역에 관심을 가지고 발전시킬 수 있는 사람, 다양한 자료를 보고 수집, 분석할 줄 아는 역량이 있는 사람을 뽑는다는 한 쓰러져가는 기업의 공고]를 보게 되었다. 다른 직업은 여러 다른 조건이 필요했는데, 왠지 생소한 이 직업은 전공무관에 그냥 열정을 바칠 청년이 필요하다니 왠지 반가웠다. 물론 커뮤니케이션 스킬은 어디에서나 요구하는 역량이었기에, 내게 그런 능력치가 0 임을 알면서도 무시하고 지원했다.
그것은 바로 IT컨설턴트라는 직업이었다.
참고
제조, 장치, 금융, 서비스 등 산업 전반에서 비즈니스∙IT 서비스 전략 수립, 프로세스 개선 방안 도출, 정보보안 체계 수립 등 고객 이슈를 해결하는 것이 핵심 미션입니다. 주요 업무로는 사업 수주를 위한 사전 컨설팅, 고객 기업의 비즈니스 및 전략과제 수행과 관련한 요구사항 파악과 상세 실행한 방안의 정의∙제시가 있습니다. 더불어 시장과 경쟁사 그리고 IT Trend 등 동향 수집∙분석으로 고객의 비즈니스 수행 전략 및 마케팅 계획 수립을 지원합니다.
출처: 한화시스템 IT컨설팅 직무소개
(https://www.hanwhain.com/web/meet/detail_job/view.do?sdSeq=215&djSeq=53&pg=6&pgSz=20)
생각하는 일, 그것을 지면에 표현하는 일. 그게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이었다.
당시의 IT컨설팅은 지금과는 조금 결이 다르지만, 어쨌든 디양한 분야에 대해 알아가는 것에 재미를 느낀다면 더할 나위 없는 직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도 아무 배경지식 없는 나를 믿고 키워줄 큰 회사가 없었기에, 일단 부딪히는 것부터 해보기로 했다. 아무 중소기업이나 지원했다. 숱한 불합격 소식에 안 그래도 강한 맷집이 더 단련되어 "뭐라도 내가 배우고자 하면 배울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는 경지에 이르렀던 상태였다. 대기업 같은 훈장은 무슨, 그 비스무리한 것조차도 필요 없었다. 김치공장까지 지원서를 넣었던 나다.
역시나 서류를 내자마자 면접 기회가 주어졌고, 떨리는 마음으로 부사장실에 들어갔다. 본인이 내 아버지 뻘이니 말을 놓겠다면서 한 시간 반 가량의 부사장님의 잘났던 과거 삼성시절 자랑 타임이 이어졌다. 그러더니 마지막에 나에게 한 가지를 질문하셨다.
“이제 IT컨설턴트를 좀 해볼 수 있겠어?”
나는 대답했다. “네..? 열심히 배워보겠습니다.”
면접부터를 직장생활 시작이라고 친다면, 지금까지 7년의 직장생활 중 난 그 면접이 제일 힘들었다.
그 쓰러져가던 회사에서 4년 가까이 근무하며, 월급이 밀려보기도 했고 겁나게 일 못하고 어버버 하던 사장님 친지분이 갑자기 초고속승진을 하시더니 내 선배가 되기도 했고, 못난 아저씨들의 열폭에 속이 상해 보기도 하면서 나는 돈주고도 배우지 못할 것들을, 세상들을 배웠다. 그곳에서 나는 점차 어디에서든 잘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갔다. 그리고 이제는 이름만 들으면 다 아는 회사의 IT 전략 부서에서 4년 차다. 이제는 제법 나와 같이 일하고 싶다고 요청하시는 분들도 꽤 있는 편이다. 얼마 전만 해도 햇병아리였는데.. 조금씩 영향력 있는 닭(?)이 되어가는 중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