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이야기
난 대학 시절 학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그것도 반도체를...
2001년 우연히 방송사에 방송기술직이란 직종이 있다는 걸 알았고, IMF 이후 위축되던 취업시장이 활성화될 시점에 운 좋게 방송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입사 후 8년간 제작기술, 송출업무를 하던 내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방송사들의 사업 분야 확장에 따라 관련 부서로 배치되었다.
사업이란 생소한 분야에서 내가 맡은 업무는 바로 신규사업이었다.
신규사업... 거창해 보이는 만큼 앞에 무엇이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를 만큼 쉽지 않은 업무였다.
많은 날을 '뭐 해야 하지?'라는 막연한 생각과 걱정으로 보내던 중 유통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담당자들의 대화 속에 '이렇게 OSMU(One Source Multi Use)해야 해!'란 단어가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OSMU...
사실 그 당시 상황을 보면 OSMU라기보다 방송사들의 사업형태의 대부분(지금도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OSMD(One Source Multi Device)의 개념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나의 콘텐츠를 실시간만이 아닌 VOD로 온라인, 모바일로 이용하던 그런 방식 말이다.
그렇다면 정말 시청자들이 OSMU 할 사업을 해보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에 들었고, 그 첫 시작은 어떤 프로그램을 가지고 무엇을 할지에 대한 고민이 들었다.
먼저 어떤 프로그램으로 시작해볼 것인가?
그 고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장르는 예능으로 결정했다.
이유인즉슨 드라마의 경우 특히 트렌디한 드라마는 보통이 미니시리즈이나 길어야 20부작 정도의...
그 당시 잘 모르지만 20부작이라야 10주, 즉 두 달 반의 시간이다.
사업을 모르던 내가 무엇을 할지 준비하다 보면 그 시간은 기획만 하다 지나갈 거고 콘텐츠 소비패턴을 보면 이미 버스는 떠난 상황일 테고... 사업이 될 리 만무한 상황이었다.
그에 반해 예능프로그램은 상대적으로 호흡이 길다. 긴 호흡만큼 기획을 할 시간적 여유도 사업을 시작했을 때 성공할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란 판단이 들었다.
당시만 해도 방송사들의 부가사업이라고 해봐야 출판, DVD가 전부였을 만큼 프로그램 이용패턴에 맞춘 것이 대부분이었다.
기왕지사 OSMU를 하자면 사람들이 프로그램을 보고 듣는 이용패턴으로 끝나지 말고 실생활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계속 경험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싶었다.
모든 일에 초보자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자신이 초보이기 때문에 두려움이 앞서는 유형과 잘 모르는 게 무기가 되어 원대한(?) 꿈을 꾸는 유형
사실 난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전자의 유형이었다. 근데 왜 그 당시 후자처럼 판단했는지 지금도 의문이긴 하다.
다양한 사업을 해보자! 다양함... 문득 떠오르는 프로그램은 바로 '무한도전'이었다.
그 당시 무한도전은 최고의 전성기였고, 그들이 해온 매주 다양한 도전들은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받고 있었다.
'그래 무한도전이라면 다양한 사업을 한번 기획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들도 첨 시작은 무모한 도전들이었다!'
'그래 나도 한번 해보자!'
(물론 두려움이 없진 않았다. 뭘 준비해야 하는지... 너무 잘 나가는 프로그램에 누가 되진 않을지... 등등)
하지만 누군가의 말처럼 절실한 사람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입사도 운이 좋았지만 입사 후 더 운이 좋았던 게 그 시절이었던 거 같다.
무한도전의 PD가 입사 동기인 김태호 PD였으니 말이다.
무턱대고 전화를 했다. 이러저러해서 사업부에 오게 되었고, 무한도전으로 부가사업을 한번 해보고 싶다고 말이다.
당시 김태호 PD의 '나도 그런 생각들을 많이 하고 있었어!'라는 긍정적인 대답에 힘을 내고 뭐에 씌였는지 '내가 무한도전 브랜드에 흠이 가지 않게 잘 해볼게!'라는 겁도 없는 얘길 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사업 초보자였던 내가 무한도전을 만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