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후를 보고 난 후

시간이 빚어낸 세계, 그리고 달라진 시선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온 '28일 후', '28주 후' 감독의 신작 "28년 후"를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감염자들과의 사투를 넘어, '시간'이 인류와 위협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꽤나 깊이 있게 파고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이 영화가 정말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작품 속 세계의 변화뿐 아니라, 영화를 바라보는 우리 현실의 시선 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상상도 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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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 후의 세계, 나는 이런 것들을 발견했다.


영화는 28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른 후, 모든 것이 변해버린 세계를 보여주었다. 역시나 많은 것이 변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 진화하는 감염자들 (혹은 바이러스) : '28일 후'에서 이성을 잃은 맹목적인 분노를 보여주었던 감염자들이 '28주 후'에서는 면역 보균자라는 새로운 위협을 더했다. 그리고 '28년 후'에서는 썰물의 때를 알고 섬으로 들어오는 '알파 좀비'의 등장을 보며 감염자들도 시간이 지나며 진화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위협의 수준이 작중 시간의 흐름에 따라 더 강력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위협 수준의 발전에 맞춰, 인간도 생존 전략을 진화시켜야 함을 시시하는 것 같았다.


- 변화하는 인간 공동체의 모습 : '28일 후'의 흩어진 생존자들, '28주 후'의 군 통제 아래 불안하게 재건되던 도시를 거쳐, "28년 후"에서는 외부와 거의 단절된 채 썰물 바닷길로만 본토와 연결되는 '섬 공동체'가 등장하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이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발버둥 치며 그들 나름대로의 생존 방식과 규칙을 만들고 새로운 사회를 꾸려가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 더욱 모호해진 생명과 죽음의 경계 : '28주 후'에서 면역자이면서 보균자인 존재가 등장하며 인간과 감염자의 경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면, '28년 후'에서는 임신한 감염자가 아기를 낳고 그 아기가 스파이크에 의해 섬에 남겨지는 장면을 통해 그 경계가 28년이라는 세월에 맞춰 더 흐릿해졌음을 보볼 수 있었다. 생명과 감염, 인간과 괴물의 경계가 이전보다 훨씬 더 흐릿해져 구분이 애매해지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남겨진 감염자의 아기가 과연 더 강력한 바이러스로 창궐할 것인지, 아니면 바이러스를 치료할 수 있는 하나의 키가 될 것인지는 아직 의문이지만 그런 생명과 죽음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중요한 역할의 시작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 시간이 빚어낸 새로운 시대의 서사 : 어린 시절 끔찍한 일을 겪었던 '지미'가 성인이 되어 감염자 사냥꾼 무리의 리더가 된 것을 보면서, 과거의 트라우마가 다음 세대에 어떤 형태로 발현되고 변화되는지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비뚤어진 심리상태를 표현하듯 십자가 목걸이는 뒤집어서 차고 다니는 지미의 모습은 시대의 변화에 맞춰 기존의 생존방식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지미의 모습이라고 보였다.



'모호함'의 미학 : 감독의 의도 VS 시대의 시선


'28년 후'는 전작들처럼 명확한 답을 주기보다는 3부작으로 구성한 만큼 많은 질문을 던지면서 끝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특히 28년이라는 긴 시간이 흐른 만큼,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더욱 복잡하고 모호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의 '모호함'이 단순히 결말을 흐리는 것을 넘어, 감독이 우리에게 의도적으로 던지는 질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롱폼 서사의 역설 : '28일 후'와 '28주 후'가 개봉했던 당시에는 지금처럼 숏폼 콘텐츠가 주류인 시대가 아니었다. 그때는 긴 호흡의 이야기에 몰입하고, 숨겨진 의미와 모호한 결말에서 스스로 답을 찾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던 것 같았다. 그래서 전작들이 '좀비영화의 교과서'라고 불릴 정도로 평가가 좋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다. 지금도 좀비영화 중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를 꼽으라면 '새벽의 저주'와 '28주 후'를 이야기한다. 그만큼 그 시대에 강렬한 인상과 함께 깊은 울림을 주는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 달라진 우리의 시선 : 그런데 지금은 사람들이 대부분의 플랫폼에서 '숏폼'의 형태로 콘텐츠를 즐기는 것이 익숙해져 버린 시대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학생 때 즐겨보던 만화책의 다음 편이 나왔는지 늘 책방에 둘러 확인하는 습관이 있었던 만큼 '권'단위의 콘텐츠 소비는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숏폼의 영향인지, 그런 만화의 전체적인 서사의 흐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화에서 충분한 자극을 얻지 못하면 별점테러를 당하는 현상들을 종종 목격하곤 한다. 그래서 나도 즐겨보는 웹툰의 경우에는 몇 달 정도 기다리고 만화책 단행본이 나왔을 때 서점에서 사보던 버릇처럼 한 번에 여러 화를 몰아서 보기도 한다. 시대가 그렇게 변화되다 보니 '28년 후'처럼 깊은 질문을 던지고 느리게 흘러가는 이야기가, 빠르게 결론을 원하는 요즘 사람들에게는 '불친절함'이나 '지루함'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영화는 단순히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계를 그리는 것을 넘어, '시간의 흐름과 미디어 환경의 변화가 예술 작품을 수용하는 인간의 감각과 태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한 가장 직관적인 '증거'이자 '질문'을 던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상상도 해보았다. 영화 속 세계가 28년 동안 진화했듯이, 우리가 사는 현실 속 '평행우주'에서 우리의 미디어 소비 방식도 28년 동안 다르게 진화해서, 영화가 주려는 느낌과 우리가 받는 느낌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을 영화가 스스로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어린 시절부터 좋아하던 영화들인 '28일 후', '28주 후'를 거쳐 성인이 되고도 한참 지난 뒤 개봉한 '28년 후'를 보면서 정말 한 시리즈가 긴 세월을 관통하는 영화인 만큼, 단순히 영화 이야기만 한 게 아니라, 나 자신과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되돌아보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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