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로울리 Slowly Dec 17. 2023

실패와 좌절은 결국 이야기가 된다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되지 않았다.





지난 5년, 6년간은 내 인생에서 긴 터널을 지나오는 시간이었다. 갑작스럽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고 대구에서 울산으로 거주지를 옮겼고 코로나19를 맞으며 직업적으로도 더욱 고립된 시간을 보냈다. 뜻하지 않았던 크고 작은 변화에 휩쓸려 내가 사라진 것만 같았다. 아이를 키우며 사회와는 더 단절되었고 가장 편안하고 가까운 관계에서 조차 대화와 소통이 사라져 갔다. 무기력과 매일 머리끄덩이를 잡고 엎치락뒤치락하다 보니 시간이 흘렀다. 긴 시간을 그저 낭비하며 흘려보내는 것만 같아 죄책감도 들었다.




평소 잘 웃는 편이고 종종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도 보냈지만 이 소중한 일상이 그저 별 의미 없는, 혹은 버텨내야 하는 시간으로만 느껴지니 미칠 노릇이었다.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를 처방받아 복용했고 개인심리상담의 도움도 받았다. 이런 외부의 도움이 없었다면 더 오래 괴로움 안에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내가 살아온 중에 가장 긴 수렁이었다. 앞으로 또 어떤 날들이 다가올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까지는 그랬다. 아직도 터널을 완전히 벗어 나온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 다만 이제 더 이상은 그런 상태에서 빠져나오려거나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이런 감정이 내 일부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보듬으며 함께 살아가기로 했다. 행복에 대한 나의 환상을 알아차렸으며, 내 자신을 더욱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기도 했다. 




내 삶에서 마주하는 문제들과 한바탕 격투기를 벌이고, 그 안에서 눈퉁이가 밤탱이가 되고, 코피를 흘리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고 반복하는 동안 적어도 나라는 인간에 대해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이해하게 된 것이다. 인간은 각자 개별적인 존재지만 또 한편으로는 먹고, 자고, 배설하는 살아 숨 쉬는 유기체다. 대부분 거기서 거기까지가 아닌가. 내가 겪는 이 고통이나 문제가 내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드는 거다. 나의 실패와 좌절은 어쩌면 타인을 이해하는데 미량의 밑거름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인간과 자연에 친화적이고 자기 이해력이 높다. 게다가 인생의 큰 이슈를 경험하면서 실존에 대한 이해도 넓혀가고 있다. 물론 수리력이나 공간지각력 같은 건 평균치에 한참 모자라지만 모든 면에서 재능이 없는건 아니다. 스스로의 부족한  알지만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 부족한 면이 있다는 점 역시 알기 때문에 안도감이 든다.




무력하게 보낸 시간이 무의미하진 않다. 경험하고 실수하고 또다시 수정하며 자신을 알아가는 일을 두려워 말자. 우리 자신이 어리석고 부족하지만 사랑받기에 충분한 존재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다. 불완전하기에 어쩌면 더 사랑스러운지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쓸모 있는 사람이 되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