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로울리 Slowly May 16. 2024

유용하지 않다면 웃게라도

저는 강사입니다만 




당신의 소중한 시간이
허비되었다고 느끼지 않게 만들게요. 
유용한 무엇을 남기지 못했다면 
웃게라도 만들게요.  






대학에서 건축과 학생들에게 교육을 진행하는데 학과 교수님이 맨 앞자리에 앉아 학생들과 2시간 동안 함께 수업에 참여했다.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교수님은 없다고 생각하자. 교육담당자가 교육하는 내내 강의장에서 떠나지 않고 열렬히 강의에 참여할 때 나는 묘한 긴장감을 느끼곤 한다.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강사는 교육 대상자가 만족할 수 있는 강의를 하면 되고 강의 평가로 승부를 보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근히 교육 담당자가 신경 쓰이는 걸 보면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일단 시작을 했으니 학생들에게 내가 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줘야지. 오늘 이 순간을 놓치면 다음은 없기 때문에. 




강의 중반부가 되자 긴 머리에 선한 인상의 남학생 하나가 헤드뱅잉을 하면서도 잠들지 않으려 기를 쓰고 있다. 가끔 눈에 흰자가 희번덕 거린다. 아차... 안쓰럽고, 민망하고, 고맙다. 과제 전시 준비로 요즘 제대로 잠을 못 잤다는 이야길 듣기 했지만 왠지 머쓱하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목소리 톤을 조금 더 살리고 강의식에서 토의 식으로 구성을 전환하기도 하며 주워진 시간을 최선을 다해 이끌었다. 




큰 표정 변화 없이 시작부터 마칠 때까지 앞자리에 앉아 있던 교수님이 앞으로 걸어 나오며 마무리하며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학생들 진로 상담에 활용할 요량으로 들어와 앉아 있었는데 강사의 경험이 자신이 서른 중반에 겪은 일과 거의 일치해 너무 놀랐다고 했다. 이론 중심의 교육을 예상했는데 인간 생애를 주제로 진로 교육에 활용한 내용에 공감했다며 소감을 전했다. 긍정적인 피드백에 마음이 벅찼다. 그런데 내가 오늘 만족시킨 것은 누구인가? 학생들인가 교수님인가? 한 명이라도 만족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긍정이든 부정이든 어떤 피드백이든 감사하다. 그 모든 것들이 자양분이 되어 결국 더 나은 단계로 갈 테니. 






작가의 이전글 봄에는 결정하지 마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