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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Sep 11. 2023

은색을 지닌 숙녀

나이 값을 제대로 하는 숙녀는 조롱받을 수 없다


토마스 게인즈버러(Thomas Gainsborough, 1727~1788) <파랑을 두른 숙녀> 캔버스에 유채, 76X64cm, 1770s~1780s, 에르미타쥬 박물관

50이 훌쩍 넘은 토마스 게인즈버러(Thomas Gainsborough, 1727~1788)는 오래된 도시에 칩거하며 창백한 얼굴을 한 여자를 그렸습니다. 반짝이는 블론드 헤어에 복숭아같은 두 볼, 붉게 입술을 화장한 얼굴이 아니라 창백한 피부에 핏기 없는 볼, 다소 건조한 입술이 여자의 전성기가 이미 지났음을 알려줍니다. 

가발로 단장한 회색 머리칼이 그녀의 감각과 귀한 신분을 알려줄 뿐입니다. 흰 옷은 다소 흐트러져 있지만 선을 넘지 않았고, 파란 공단이 얇은 흰 옷을 두툼하게 둘러 감쌉니다. 슬픔의 대명사이기도 하지만 신뢰와 지성을 상징하는 색입니다. 

젊었을 때는 가득한 생기로 더 아름다웠을 것이 명백합니다. 고상한 자태와 취향, 깊이 있는 눈빛과 그윽한 분위기는 색으로 치자면 은빛입니다.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고요가 들리고 있습니다. 우아한 목선이 드러나도록 기울인 고개, 비스듬한 시선과 손끝까지. 무엇 하나 더하거나 뺄 것이 없이 참으로 정확한 균형입니다. 더이상 젊지 않은 숙녀의 얼굴은, 드디어 완성되었습니다. 


페미니즘의 물결이 휘몰아치더니 남혐 여혐이 엎치락뒤치락 싸우다가 어느새 비난의 물결이 그를 덮었다. 이제는 서로를 경멸하는 시기, 젊은 남자 늙은 남자, 젊은 여자 할 것 없이 눈이 높아 결혼을 '못'하고 나이든 여자에 대한 비난이 거세다. 우연히 보게 되는 온라인 공간에서는 늙은 여자들을 신나게 비웃는 스포츠가 가열차다.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다. (개인적으로는 블라인드가 최고봉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어떤 여자들의 행태를 보면 믿을 수 없을 만큼 뻔뻔스럽다.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그런 여자들은 '일부'라고 믿는다. 나의 현실에서는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유니콘이기 때문이다. 


어찌되었건, 나는 '그들'이 그토록 비웃는 '늙은 여자'다. 그들 말을 빌리면 '주제파악도 못 하고' 눈이 높아서 인생을 스스로 망쳤고, 앞으로 그 누구도 쳐다봐 주지 않을 것이며, '자궁이 늙어서' 아이도 낳을 수 없을 것이다. 분명 그와 비슷한 인생을 살 수도 있을 것이다. 뭐, 그리 비참한 여자 카테고리에 넣어야 한다는데 아쉽지만 어쩌겠나. 저주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는 건데. 


컵 하나를 바라보아도 그 각도에 따라 다른 모양이 보인다. 우리 모두가 보는 것은 다르지만 그 모든 것은 똑같이 컵이다. 진실은 변치 않지만 보이는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일 수 있다. 보이는 현실은 똑같아 보이지만 진실은 다를 수 있다. 는 것이 내 삶의 인식이다. '그들'이 보기에 변명이라고 하더라도 상관없다. '늙은 여자'인 나는, 내 삶을 내 색으로 살았다. 또 다른 '늙은' 여자들도 그녀들의 색으로 살았을 것이다. 지금은 다들 회색으로 보일지는 모르지만.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조건을 따지며 허영을 부렸다면 나는 분명 최고의 어장관리녀가 되었을 것이며, 최고의 꽃뱀 중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제대로 남자 등을 쳐보았을 것이다. 내 지능이나 노력이나 수완은 진실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와 내 친구들은 뒤통수를 맞아본 적은 있어도 뒤통수를 쳐본 적 없이 회색 빛으로 바래버렸다. 일이나 돈이나 관계 그 무엇에도 진실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여자의 지식이나 학력에 열등감을 가지는 남자에게 참고 맞추어 주며 안정을 구했어야 하나. 여자의 벌이에 기대 뒷바라지를 노골적으로 바라는 남자를 지원하지 못한 것이 잘못인가. 여자가 무슨 자아를 가지고 있냐며 호통치는 이에게 100퍼센트 순종하지 못한 선택이 정녕 미련했던가. 관계 맺음은 그저 조건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 정도 살았으면 다 알만한 성인 남녀들이 '늙은' 여자들을 그토록 조롱하는 것은, 본인들에게도 다가올 늙음에 대한 공포 때문이 첫 번째고, 좋은 여자를 아직 만나지 못한 남자들의 반동행동, 앞으로 무능하며 늙은 여자가 될까봐 두려운 여자들의 타자화가 아닐까 싶다. 적어도 익명 실명 공간에서 그런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젊은 미남미녀에게 품위란 전혀 없다. 조용히 비난을 감내하는 '늙은' 여자 쪽에 약간의 품위가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계속 조용히 바라보기나 할 작정이다. 


우습게도 결혼을 멀리 하고 나서 삶이 무척 평화롭고 아름다워졌다. 싫지는 않은 사람을 참아가며 만나지 않아도 되고, 그러한 부조리함에 자신을 경멸하지 않아도 되고, 편안한 사람인 양 기쓰지 않아도 되고, 억지 없이 시간을 쓸 수 있는 지금이 참 좋다. 시간을 통과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지혜가 있다. 그걸 얻기 위해서 누군가는 기꺼이 나이를 먹기도 한다. 그게 나이고, 그게 당신이었으면 좋겠다. '나이값'을 못 하는 사람은 너무나 추해서, 너무나 슬프다.


나이가 들면 진선 미(眞善 美)의 여자가 될 수 있는 것 같다. 진실과 선함을 이해하고 근본적 아름다움으로 살 수 있는 여자. 진실로 선량하여 기품이 있는... 품위의 어떤 핵심은 분명 선량함 가운데 있다. 어렸을 땐 껍데기가 예쁜 여자들에게 주눅들지만 나이가 들며 그 껍질은 얇아지고 내면이 드러나기에. 이지원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예쁜 것들의 시대는 갔다' 예쁘기만 한 것들은 나이와 함께 싸그리 갔다. 


엄밀한 의미에서 숙녀는, 어느 정도의 연륜을 가져야 이룰 수 있다. 충분한 교양 이외에도 절제력 등 부단히 성품을 가꾸어야 하기에 시간이 걸린다. 진실로 나이든 여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어린 이가 숙녀가 되는 건 기적과도 같기에 프랜시스 호지스 버넷의 <소공녀>가 놀라웠던 것, 고전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알록달록한 색이 시간의 더께를 통해 회색으로 변하면서 드디어 숙녀가 제 이름을 얻는다. 숙녀 중의 상당수는 회색빛을 하고 있다. 흰 머리를 감추기 어려워 정기적으로 염색을 해야 하고, 창백한 입술이 초라해 뭔가 바르지 않고는 사람을 대하기 미안한. 하지만 나이 값만큼 숙녀의 태도를 가졌다면 회색은 회색으로 그치지 않는다. 제대로 된 나이값을 가졌다면 그녀는 정녕, 은색의 숙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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