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낯'
여행은 피난처가 되기도 하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도전이 되기도 한다. 여행을 하며 얻은 에너지와 삶에 대한 긍정은 바쁜 일상으로 복귀한 뒤 일정기간 좀 더 잘 버틸 수 있게 해주는 큰 동인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떠나고 돌아오고를 반복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이를 먹을수록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이 조금씩 힘에 부친다.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일들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일정이나 코스를 조정하는 일이라든지 숙박, 쇼핑, 식사 메뉴 등에 대한 사소한 부분마저도 서로의 이념이나 선호 등의 차이는 갈등의 큰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어릴 때는 그런 일로 언쟁을 해도 쿨할 수 있었고 이후 상대방의 감정에 대해 크게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누군가와 함께 여러 차례 여행을 하는 경험이 쌓이고 나이를 먹어가면서는 점점 더 혼자 하는 여행이 가장 편하다는 생각을 했다.
최근에 같이 여행을 한 일행은 매일 하루에도 여러 번 옷을 갈아입으며 사진마다 다른 옷을 입은 자신이 찍히는 것을 즐겼다. 나는 상대를 이해해보려고 노력을 하면서도 약간의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 사진은 모두 내가 찍어줘야 하고 옷을 고르는 일에도 조언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너무 까다로운 걸까' 여기다가 '우리가 많이 다르기 때문'이란 결론을 내고 웃어넘겼지만 '우리가 다시 여행을 함께 갈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남기도 했다.
나는 '여행 낯'을 가린다. 친하지 않은 적당히 아는 누군가와의 여행은 차라리 훨씬 나을지도 모르겠다. 잘 지내고 있는 지인이라 해도 함께 여행하는 것을 무조건 "OK" 할 수 없는 지경에 있다. 함께 여행을 가자고 말하는 지인들의 말에는 "그래요~ 갑시다" 하는 말이 쉽사리 나오지를 않는다. 그냥 웃기만한다. 누군가와 여행을 가기로 결정했다면 아주 여러 번 잘 생각해보고 대답을 한다. 여행은 서로 많은 요소들이 잘 맞아야만 함께 할 수 있다는 지나친 편견을 가지고 있다. 그래야만 누구도 불만이 없는 여행이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함께 여행을 다녀와 불편함이나 서로에 대한 불만이 1도 없는 그런 여행이 있을까? 그런 여행을 나도 해보고 싶다. 어쨌든 그동안의 경험을 핑계 삼아 혼자 하는 여행이 가장 편하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당분간은 혼자 하는 여행을 계획할 참이다. 이번 '여행 낯'은 좀 오래 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