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기록가 그게 뭔데?
“넌 뭐 하는 거야 요즘에”
어느 날 친구가 물어온 질문이다. 인스타그램 계정에 나를 ‘경험기록가’라고 소개해 두고, 다양한 활동 기록을 올린 게시물들에 궁금증이 생겼던 것 같다. ‘괜히 쓸데없는 거 하고 있다’는 부정적인 뉘앙스로 받아들일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고마웠다. 친구의 질문이 오히려 경험기록가라는 키워드에 대해 고민할 기회로 보였다. 사실 왜 이런 키워드를 잡았는지 판단을 미뤄둔 상태였기 때문이다.
왜 경험기록가인가. 바로 답장하지 않고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본 뒤에 답하기로 했다.
경험기록가라는 키워드. 처음엔 단순히 경험한 것들을 어떻게든 남기겠다는 다짐에서 만들었다. 글을 쓰지 않는 작가는 더이상 작가라고 소개할 수 없는 것처럼, 경험을 기록하지 않는 사람은 경험기록가가 될 수 없다. ‘~가’에는 그 역할에 대한 책임이 들어있으니까. 그렇기에 경험기록가라고 나를 정의한다면, 계속 기록하게 만드는 일종의 채찍이 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있었던 것 같다.
몇 시간 후 친구에게 답했다. 단지 뭘 하고 있는지에 대한 대답이 아닌 경험기록가로 뭘 하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담아서.
우선 단순히 호기심에 이끌린 경험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경험을 기록하는 나만의 콘텐츠 방식을 찾는 중이라 말했다. 내게 맞는 형식을 찾아야 기록을 지속할 수 있으니까. 형식을 찾고나면 경험에서 발견한 인사이트를 더 잘 정리할 수 있고, 나아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진짜 콘텐츠로 기능할 수 있기에. 덧붙여 회사라는 조직으로 다시 돌아가더라도 나만의 사이드 프로젝트로 남기고 싶다는 바람도 함께 전달했다.
나름대로 정의를 내리고 나니 경험기록가로 뭘 하려는지 좀 더 명확하게 그려졌다. ‘경험기록가’라는 키워드를 이제야 스스로 알게되어 훨씬 힘이 붙은 느낌이었다. 콘텐츠 제작에 가속이 붙었다. 지속할 수 있는 형식을 찾기 위해 다양한 기록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1) 인스타툰 기록, 기록에 힘이 되는 공감
경험기록가로 처음 기록한 게시글은 웰니스컬리지 오프라인 과정 인스타툰이다. 용평리조트에서 진행된 3박 4일간의 웰니스컬리지 오프라인 과정 중에 그렸다. 매일 프로그램이 끝나고 잠들기 전에 툰을 그려내니 며칠동안 함께 활동하는 동기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 좋았던 것 같다. 뜻밖에 동기 중 한 명이 인스타 스토리에 공유해줬고 그걸 본 다른 동기들도 이튿날 관심을 표했다. 전혀 기대하지 않은 반응이 오니 그릴 맛이 났다. 덕분에 오프라인 과정이 꽤 힘들었는데도 계속 제작할 수 있었다. 공감가는 기록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는 좋은 경험 기록이었다.
2) 카드뉴스식 기록, 경험을 돌아보는 회고
경험에 대한 기록은 이미 했던 활동에 대한 돌아봄이다. 그래서 ‘회고’라는 단어를 가져와 콘텐츠를 만들었다. 회고를 소재로 가져온 이유는 왜 이렇게 바쁜가에 대한 물음이었다. 퇴사했기에 자유롭게 활용할 시간은 많아졌는데 그 시간들을 마냥 정신없이 흘려 보내기만 하는 것 같았다. 손 안의 모래처럼 사라지는 시간이 야속했다. 이렇게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회고 기록은 잡지 느낌으로 제작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만든 콘텐츠는 무비랜드 투어 경험과 소셜 스포츠 살롱 프로그램 체험 기록이었다. 디지털기기로 콘텐츠를 보지만 아날로그의 따뜻한 느낌이 났으면 했다. 그래서 사진 조각들을 신문 스크랩한 것처럼 이어 붙여 수작업 분위기를 구현했다. 절취선 같은 모양과 사진 주변의 구불구불한 선을 그려넣어 스크랩 분위기를 살렸다. 이미지와 텍스트만 있으면 답답할 수 있으니 중간중간 그림도 함께 그려 분위기를 환기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렇게 여러 부분을 고려하다보니 완성할 때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고, 이미지 안의 글자를 크게 보기 어려운 인스타그램의 플랫폼 특성상 가독성이 떨어졌다. 의도는 괜찮았지만 효율이 떨어지는 기록 방법이었다. 경험기록가로서 추구하는 지속 가능한 기록과는 거리가 멀었다.
3) 카피라이팅을 활용해보자, 이목을 끄는 헤드라인
“브런치 인턴 작가?!”
가장 최근에 올린 게시글은 브런치 전시에 대한 기록이다. 이번엔 궁금증을 끌어내기 위해 제목을 신경써봤다. 지난 인스타툰 기록과 회고 콘텐츠의 제목은 단순히 나만의 경험을 보여주는 것에 그친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나의 경험이 콘텐츠로 닿으려면 그걸 보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내용이 있거나 궁금증을 끌어내야 하는데, 전에 올렸던 게시글의 제목과 비슷하게 만들면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 것 같았다. 최근 마케팅 공부를 하고 있는데 거기서 강조했던 ‘호기심을 끄는 제목’의 효과를 실험해보고 싶었다. 어떤 제목을 만들지 고민하다가 브런치 작가는 많이 들어봤어도 인턴 작가는 들어본 사람이 많지 않을것 같았다.
결과는 어땠을까? 기존에 올린 콘텐츠들과 확실히 반응이 다르게 나왔다. 댓글도 꽤 달렸고 저장도 5번이나 됐다. 프로필 활동도 6번. 물론 인플루언서나 제대로 콘텐츠를 제작하는 곳에 비할 수준은 아니지만 개인 계정에서는 인상적인 결과였다. 마케팅 공부를 하면서 시각이 조금 바뀌긴 한 건가 싶어서 내심 뿌듯한 마음도 들었다. 실험은 일단 성공적이었다. 대성공은 아니지만, 끌리는 제목의 효과를 알 수 있었다. 호기심을 끄는 기록을 해야겠다는 인사이트를 얻었다.
경험기록가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 다양한 기록을 남겼다. 인스타툰에선 뜻밖의 공감을 얻어 더 힘내서 기록할 수 있었다. 꾸준히 기록하려면 무엇보다 반응이 중요하다는 걸 다시 알게 됐다. 카드뉴스식 기록에선 너무 과하게 신경쓰면 오래 지속하기 어렵다는 걸 체감했다. 지속 가능하려면 시간과 노력을 적당한 수준에서 멈추는 것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마지막으로 제목에 신경써본 기록은 제목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
앞으로 어떤 기록을 할 것인가. 나의 경험 기록이지만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기록을 남기고 싶다. 기록을 정돈해가는 과정에서 모두가 나만의 기록을 남길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다만 모두에게 도움이 되려면 전제조건이 필요할 것 같다. 무엇보다 제목(헤드라인)에서 이 기록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암시하고, 궁금하게 해야할 것 같다. 호기심이 생겨야 일단 보기라도 하니까.
아직 나만의 기록 방식을 정하지 못했기에 앞으로도 다양한 시도를 해보려 한다. 그러다 보면 내게 적당한 양식이 나오지 않을까. 경험을 더 솔직하게 기록하고 그 과정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활용해 발전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