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앞둔 친구에게 부치는 글
“결혼하고도 나 자신을 잃지 않고 살 수 있을까? 내 일과 사람들, 내 성격을 유지하면서 사는 게 가능할까? 아마 달라지겠지...”
다음 주에 결혼을 앞둔 너는 내게 이렇게 속마음을 털어놓았지. 아아... 나 역시 너의 상황이라면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을 거야. 나는 결혼에 대해서는 잘 모르므로, 우리가 함께한 시간을 떠올리며 널 안심시켜줄 밖에.
솔직하고 투명하게, 서로를 대면하고 부딪칠 수 있다면
회사에서 비슷한 시기에 너는 디자인팀을, 나는 편집부를 이끄는 팀장이 되면서 우리는 적잖은 부담을 떠안은 채 고군분투했어. 나는 지금껏 사람들과 싸운 기억이 별로 없는데 우리 둘은 꽤 여러 차례 부딪혔던 것 같아. 둘 다 일을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고, 기본적으로 함께 이야기하며 문제를 풀어가려는 사람들이었으니까. 야근을 하고 마감 땐 주말에도 연락하며 우리는 몇 권의 책을 함께 만들었어. 담당한 책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를 간절히 바라며 세상에 나온 책의 운명을 애끓는 심정으로 지켜본다는 점에서 우리 둘은 비슷한 구석이 있었어. 후배들은 ‘회사에선 회사 모드, 퇴근 후엔 오프’의 룰을 꽤 잘 적용했던 반면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 그래서 힘들었고.
회사를 그만두고도 우리는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며 지냈지. 사랑을 시작하고 실패하는 시기에도, 일에서 자신감이 떨어져 바닥을 치는 시기에도 서로의 삶을 들어주는 친구로서 그 자리에 있었어. 다른 선배까지 셋이서 ‘밥벌이와 상관없는 프로젝트를 지지하는 모임’을 열었던 거 기억나? 광화문의 어느 밥집이나 맥줏집에서 ‘2주 동안 이런저런 시도를 했다’고 보고하는 그런 자리였지. 30대를 훌쩍 넘긴 우리가 부끄러움 없이 서로를 격려해주던 그 시간은 지금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좋은 자극을 줘.(다시 시작해볼까?)
아무 기반도 없던 내가 서점을 시작하고 싶다는 말을 꺼냈을 때, 주위에서 대부분 우려 섞인 조언을 건네던 때에도 너는 “재밌겠다”라며 함께 동참하고 싶다 했지. 효창공원부터 서울역까지 부동산을 찾아다니며 서점 자리를 보러 다니기도 하고, 숙대 앞 어느 세탁소 자리에서는 둘의 서점을 상상하기도 하며. 결국 함께 서점을 열지는 못했지만 내가 다른 친구와 ‘밤의서점’을 열게 되었을 때 너는 서점 로고부터 다이어리까지 디자인을 담당하는 든든한 파트너가 되어주었지.(여기까지 쓰다 보니 한없는 애정이 샘솟는다. 눈물 좀 닦고ㅠ)
우리 둘의 역사를 이렇게 길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그 시간이 어딘가로 사라지지 않고 앞으로의 나날들에도 힘이 되어줄 거라 생각해서야. 나에게 한없이 솔직하게 부딪쳐온 성정 그대로, 지금의 남편과도 서로를 투명하게 마주 보는 좋은 파트너가 될 거라 믿거든. 서로 다른 두 사람의 인생이 같은 공간에서 공통분모를 만들어가는 일은 분명 기적 같은 일이겠지. 그런데 ‘자기 자신을 잃어버릴 것 같은’ 그 지점에서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한 무언가가 시작될 수도 있을 거야. 그 방법은 나로서는 알 수 없어.
다만 우리 둘의 관계에서 한 가지 깨달은 게 있어. 우리가 이야기하고, 싸우고, 함께 울고 웃던 그 순간, 우리는 ‘나를 잃어버릴까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 그저 한없이 투명하게 서로를 향해 부딪쳤을 뿐. 웬만해선 싸우는 일이 없는 내가 너와 싸웠던 기억을 자주 이야기하는 건 그 경험이 참 소중하기 때문이야. 내가 너를 좋아하고 네가 나를 좋아한다. 그렇게 서로에 대한 애정을 확신하는 사이에서만 두려움 없이 투명하게 상대에게 부딪칠 수 있으니까. 남편과도 그렇게 둘만의 역사를 만들어가기를. by 밤의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