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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의서점 Sep 22. 2018

더 다정해 보겠습니다.

- 2주년을 맞은 밤의서점을 돌아보며


 어제 비 오는 아침 산책을 하려 하였으나 감기 기운이 있었던 차에 감기약 대신 맛있는 라떼를 마시기로 한 나는 집 앞에 많은 까페 중 유일하게 문을 일찍 연 곳에 들어가 커피를 사들고 집에 왔다. 책상에 앉아 한 모금 마신 라떼는 충격적으로 맛이 없었다. 두 모금 마셔봐도 마찬가지다. 아메리카노도 아니고 라떼가 이렇게 맛이 없을 수가! (평소 커피숍에서 안전한 선택을 할 때는 라떼를 시키는데 왜냐면, 우유 맛으로 웬만큼 커버가 되기 때문이다. 맛없으면 우유맛으로라도 먹으면 되는 거다.)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았던(=쓸 수 없었던)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그 중 큰 변화는 아기자기한 까페와 맛있고 작은 식당들이 있는 동네로 이사를 온 것이다. 즉, 산책의 맛이 있는 동네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곳인 줄 모르고 계약이 만료된 차에 적당한 곳으로 이사 왔기에 산책하기 좋은 동네는 그간의 어려움을 보상해주는 뜻밖의 행운처럼 느껴졌다.
그간의 어려움에 대해 말하자면, 엄마가 돌아가셨다.
 엄마가 돌아가신 일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과 여러 사람들의 감정이 얽힌 아주 크고 복잡한 사건이다. 단순히 큰 슬픔이 아니라, 사라지지 않는 슬픔, 말하자면, 몸 속에 슬픔이라는 장기가 생긴 것 같은 슬픔이다. 호출하지 않아도 늘 존재하는, 상주하는 슬픔 말이다. 돈이 많은 사람이 돈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는 것처럼 슬픔이 넘치면 슬픔에 초연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엄마가 내게 준 낙천적 성향 덕인지 곧 이렇게 마음을 먹었다. ‘어차피 맨날 계속 슬픈데, 당장 생활의 일들도 잘 쳐내면서 이 애도는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수행해 보자.’ 라고. 그렇다. 영영 끝나지 않을 애도도 있는 것이다.

  
 브런치를 방치한 변명은 이 정도로 줄이고, 다시 맛없는 라떼로 돌아가자면, 어느 날 고궁을 나와서 왕궁의 음탕대신 오십 원짜리 비계덩어리 설렁탕에 대해 분개했던 김수영 같은 생각을 해 본다. 집 앞 백 미터 안에 커피숍이 생각나는 것만 꼽아도 일곱 개는 족히 되는데, 커피를 파는 편의점 동네 슈퍼 등까지 따지면 맛없는 라떼를 파는 커피숍의 경쟁상대는 열 개가 넘는데, 이른 아침 문을 연 자영업자의 녹록치 않을 사정에는 분개하지 않으면서, 맛없는 라떼에 나는 분개한다. 이 세계의 혹독함 대신에 그렇게 일찍 문을 열어도 유지가 쉽지는 않은 삶의 막막함 대신에 맛없는 라떼에 나는 분개한다.  
 그 가게는 아침 일찍 문을 열어도 유지가 쉽지가 않을 것이다. 어떻게 아느냐고? ‘유명’서점인 밤의서점의 재정상태를 보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유명서점이라는 말은 자조적인 말이기도 한데, 내가 붙인 게 아니라, 손님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우리 서점이 꽤 유명서점이 된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그건 작은 책방에 관심이 있는 소수의 사람들 사이에서 말이다. 그런 밤의서점이 지난 8월 말 2주년을 맞게 되었다. 작년 1주년에는 손님들에게 다과도 대접하고, 영업 마치고 단골들끼리 이야기도 나누고, 두 점장이 브런치에 글도 썼다. 요번 2주년은 조용히 지나갔는데, 그것은 앞서 말한 슬픔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가 조금 지친 탓이기도 하다. 어쨌든 나는 낙천적인 성향의 사람이라, 원래 두 살 생일 때 뭐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거지 돌잔치만 특별하게 하는 거지 이건 자연스런 일이지 라고 밤의점장에게 말했다. 하지만, 우리의 이러저러한 상태와는 상관없이 블로그에 글을 쓰지 못한 동안에도 밤의서점에서 참 좋은 일들이 많았다. 일기장을 들춰 보니 (엄마가 죽음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가던) 어느 우울한 날에 이렇게 써 있었다.
 
제목: 좋은 일을 떠올려보자.
오늘 이원 시인이 보내주신 쿠폰으로 폴바셋에 가서 라떼와 타르트를 먹고 있자니 기운이 나서 많은 일을 했다. 자동차 보험도 갱신했고, 미장원에도 갔고, 하루를 데리고 병원에도 가고 빨래도 했다…..(중략)…..씩씩한 사람이 낙담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잠깐 멈출 수는 있다.
 
 지난 겨울에 이원 시인께서 서점에 오셔서 독자들과 함께 좋은 시간을 보냈다. 시인께서는 서점에서 책을 많이 사 가지고 가셨다. 무겁지 않냐했더니 괜찮다고 그러시는데, 무겁지 않았을 리가. 우리는 서점 방문 기념으로 밤의서점 다이어리를 선물해드렸고 시인께서는 밤의 점장을 통해 라떼와 타르트 쿠폰을 보내 주셨다. 쿠폰으로 마신 라떼는 맛있었다. 그 곳이 라떼 맛집이어서 일수도 있지만 그보다 그 분의 다정한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손님들로부터 다정한 마음을 많이 받았다. S님은 책 선물을 했다. (밤의서점의 도장이 찍힌 책 선물이다. 밤의서점 점장에게 밤의서점 도장이 찍힌 책이라니. 너무 다정하다. 먼저 엄마를 잃은 저자가 쓴 그 책은 많은 위로가 되었다.) ‘위로가 서툰 J님’은 마음이 담긴 엽서를 주셨다.(거대한 나무 밑둥에 깃들어 눈을 감고 앉아 있는 여자가 있는 고요하고 아름다운 이 엽서는 내 방 책상 앞에 붙여 있다.) E님 커플은 서점에 들러, 서점 마치고 ‘우연히’ 연남동 초입의 바에서 만나자고 했다. 꼭 지나다 만난 것처럼 우연히. 안 와도 되지만 꼭 우연히 오라고 신신당부하셨다. 갈까 말까 하다가 간 그 자리에서 또 얼마나 많은 위로를 받았는지 모른다. 그리고 밤의점장으로부터는 얼마나 많은 따뜻한 마음을 받았는지....말로 다 쓸 수가 없다.
 

 2주년을 맞은 밤의서점의 재정을 생각하자면, 새벽부터 열어도 모자랄 판이다. 그러나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밤의서점에는 쌓이고 있다.
 1년 전 이맘때는 큐레이션을 정말 잘해 보고 싶었다. 2년이 지난 지금은? 무엇보다, 다정한 서점이 되고 싶다.(by 폭풍의 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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