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미림 Jun 04. 2021

영국 대학, 1등급으로 졸업하기

영국 대학 3학년 졸업반


내 생애 두 번째 졸업 작품전


영국 대학교에 3학년 졸업 반으로 편입 한 나는 1년 만에 졸업이었다. 학교 생활에 적응 좀 했을까 싶었을 때 졸업 작품을 준비해야 했다. 3학년 마지막 과제이자 졸업 작품인 이번 프로젝트는 런던에 위치한 건물 하나를 선택, 아이디어를 결합해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는 레노베이션 프로젝트였다. 난 런던 시내를 오가며 눈여겨보던 빈 건물을 선택했다.


종종 전시와 큰 이벤트가 열리는 곳이었는데, 핫플레이스들이 모인 런던 중심에 위치했고, 사람들이 접근하기도 좋았다. 인터넷으로 이 건물에 대한 리서치를 시작고, 분석을 위한 자료를 모았으나 담당 교수님들과 몇 번의 상의 끝에 이 건물이 내겐 너무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담당 교수님은 해볼 수 있으면 해 봐라 였지만, 건물의 치수를 컴퓨터 프로그램에 대입했을 때, 도저히 내가. 이 거대한 공간을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인지 했다. 한두 주 동안 망설이며,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생각해 봤지만, 혼자만으로는 불가한 규모였다. 깔끔하게 포기하고 다른 건물을 찾기 시작했다.


건물 선정 단계에서 다른 학생들보다 몇 주 늦어졌다는 생각에 새로운 건물을 찾으러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부동산 사이트에 나온 매물들을 보고 직접 가서 눈으로 확인도 하고, 주변 상황을 살피며, 내가 정한 아이디어가 잘 표현될 수 있을 적당한 건물을 찾았다. 되도록이면 사람들이 많이 방문을 해야 했기에 번화가 근처에 있어야 했고, 규모도 너무 크지 않으면서, 너무 작지도 않아야 했다. 더불어 이번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건물들을 하나하나 선별하며 마지막 후보군중에 하나를 선택했다.


내가 선택한 건물은 현재 비어 있는 5층짜리 건물로 런던 홀본역 근처에 위치 해 있고, 건물 앞에 넓은 공간이 있었으며, 크기 또한 적당 마음에 들었다. 리서치 과정에서 이미 평면도를 구했으며, 난 얼쑤~!라는 콘셉트로 삼성 디지털 체험 존과 한국 대사관을 합친 '삼성 엠바시(Samsung Embassy)'라는 공간을 만들었다. 한국 대표 브랜드였던 삼성 제품을 통해 영상 자료와 이미지들로 한국의 문화를 접하고 체험할 수 있는 체험 전시관이었다.


얼쑤라는 콘셉트에 맞게 한국 전통 춤을 분석해 그 안에 나타나는 공간적 요소들을 시각화하여 각 공간에 적용했다. 예를 들어 춤추는 사람이 앉으면 바닥을 강조하고, 양손을 높게 쳐들면 천정을, 좌측으로 손짓하면, 좌측 벽면이 강조되는 식이다. 이렇게 강조된 부분들을 음악에 맞게 순서대로 배열하고, 전통의상 속에서 컬러를 뽑아 곳곳의 공간에 입혔다. 옷깃의 곡선을 건물 외관에 적용하였고, 의 표면을 현미경으로 관찰했을 때 보이는 패턴도 함께 활용했다. 방문자가 건물 앞에서 걸어 들어가 3층까지 올라가는 과정을 3D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는데 내가 그동안 쌓은 지식과 기술을 총동원해 만든 작품이었다.


당시엔 프린트 하는 것만으로도 전쟁이었다.





내 생애 첫 영어 졸업 논문


난 졸업 논문으로 한국과 영국의 고 건축물들에 대한 비교 논문을 썼다. 한국 고 건축물에 관해서는 예대 시절 담당 교수님께 귀가 닳도록 들었고, 대학교 마스터플랜을 연구하기 위해 교수님들과 몇몇 학생들이 모여 경주 양동 마을과 부석사를 다녀왔기에 사진이나 평면도, 그때 기록한 자료들을 전부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 동시대에 지어진 영국 건축물들을 조사해 한국 건축물과 비교하는 식이었다.


논문의 방향 및 자료조사는 순탄하게 이루어졌지만, 그걸 영문으로 표현하는데 애를 먹었다. 우선 난 논문 전체를 한글로 쓰고 챕터별로 문단 문단을 하나씩 번역해 가며 완성해 갔다. 한국 고건축물에 대한 영문 용어를 하나하나 찾아보며 글을 완성해 갔다. 지금 생각하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표현들이 어색해질 수도 있지만, 당시에는 그 방법이 아니면 정해진 시간 내에 논문을 제출할 수 없었다.


챕터 하나가 완성되면 언어교환을 하던 친구들에게 표현이 어색하거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알려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논문 제출 마감일 전까지 담당 교수님과 몇 차례 만나 내용 및 구성에 대해 논의를 했고, 몇 가지 챕터는 교수님께서 전혀 이해를 못하셔서 통째로 내용을 수정하기도 했다.


논문은 결과만큼이나 진행하는 과정도 중요했다. 담당교수한테 착 달라붙어 어느 부분이 표현이 어색한지 상대방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고민에 고민을 더해 이해시키는 게 중요했다. 혼자 고민하고 풀어가려고 한다면 자신도 인지하지 못한 체 방향이 틀어지고 내용이 뒤죽박죽 산으로 갈 수 있기에 조심해야 한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몇 만자를 쓰면서 정말 많은 글을 읽었던 것 같다.




노트에 그려진 작은 왕관


일반적으로 디자인 대학 졸업 작품은 A0 사이즈 패널 한 두 개 정도다. 공모전에선 A0 사이즈 하나로 접수를 받기도 한다. 졸업 작품으로 딱 전해진 분량은 없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A0 사이즈 패널 두 개를 세로로 붙여 준비하는 듯했다. 하지만, 난 A0 사이즈 6장을 붙여 긴 패널 3개를 준비했다.


작품의 세부 내용도 많긴 했지만, 영어가 서툴기 때문에 내가 생각한 아이디어를 최대한 많은 이미지로 표현해야 했다. 건물 구석구석을 3D로 표현하고, 그 공간이 생기는 과정도 일일이 이미지와 3D로 표현했다. 마지막 평가 한 두 주 전에 교수님과 상담을 할 때 내가 준비하고 있는 작품의 규모를 듣고 깜짝 놀라 주변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했다. '지미는 프레젠테이션 보드를 3개 준비한단다.' 다들 들으라는 듯이 외치며 내 노트에 작은 왕관을 하나 그려 준 적이 있다.


영국 학생들은 질문에 거리낌이 없었다. 자신보다 나아 보이거나 조금이라도 특이한 점이 있으면, 어떻게 했는지 물어보고 다음에 같은 방식으로 적용해 오거나, 더 발전시켜 자신의 작품에 적용하기도 했다. 난 업그레이드된 그 작업물 자극을 받아 내 작품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곤 했다. 내가 패널 3장을 준비한다는 말에 졸업 작품 발표 당 나와 비슷한 규모로 준비해온 학생들이 상당히 많았다.


몇 날 며칠을 밤새 준비한 프레젠테이션에 비해 발표시간은 정말 순식간에 지나갔다. 같은 과 담당 교수님 3명과 졸업생 두 명을 포함한 5명이 내 앞에 앉아 있었고, 작품에 대한 설명 이후 질문 공세가 이어졌으며, 마지막으로 한 명씩 코멘트를 하며 평가가 이어졌다. 발표 포함 약 1시간 정도의 시간이었지만, 마치 꿈꾼 것처럼 정신없이 지나갔다.




성적 앞에선 모두가 적이다.


졸업반 학생들 중 극소수만 받을 수 있는 1st class를 받았다. 솔직히 내가 생각하기에 노력상이었다. 표현이 서툴러 더 많이 보여주고자 함이 플러스 요소가 되었고,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학교에 붙어 있음은 성실한 학생이라는 인식이 들었을 거다. 수업에선 맨 앞자리에 앉았고, 선생님을 뚫어져라 쳐다다. 물음엔 먼저 대답하고, 뭔가 끊임없이 이어리에 적어 두었다. 난 이런 방식을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꾸준히 이어갔다.


내가 1학년부터 다녔다면 처음부터 죽도록 열심히 하 않았을 거다. 1학년 땐 실컷 놀고, 2학년은 열심히 달리고 3학년은 죽도록 달려서 3년 동안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줬을 거다. 외에 나와 일하는 한국 기업의 주재원들의 예를 들어보자. 1년 차는 정신없이 적응할 시기이고, 2년 차 때는 업무에 조금 힘을 실을 수 있으며, 3년 차에는 열심히 뛰어 성과를 내야 하고, 4년 차에는 미친 듯이 뛰어 최고 성과를 기록해야 한다. 이렇듯 사회생활에 앞서 학교 생활에도 전략이 필요하다.





내게 꽂힌 명함들


평가 이후 우린 런던 동쪽 브릭 레인에 위치한 전시장에서 졸업 작품전을 했다. 예술가들의 작업실도 많고, 전시공간 및 특이한 상점들, 길거리에 예술적인 작품들도 많이 그려져 있으며, 우리나라로 치면 과거 활황을 이루던 홍대와 비슷하다 하겠다. 이 지역의 분위기가 특히나 마음에 들어 나중에 대학원 졸업 작품을 할 때도 이 장소를 선택했었다.


졸업 전시를 위해 한 사람에게 정해진 건 2미터 정도 높이의 결과물  장, 지난번처럼 예외는 없고 무조건 사이즈를 맞춰야 했다. 동료 학생들과 각목을 사용해 전시장에서 직접 만든 프레임을 세워 결과물을 걸고, 기울어지거나 쓰러지지 않게 개개인의 프레임 윗부분에 버팀목을 이어 붙였다. 전시장을 빌린 기간이 빠듯했으므로 우린 전시 오픈 전날 거의 밤을 새우며 설치 준비를 했다.


작품을 다 설치하고 각자 자신의 작품 옆에 작은 박스를 하나씩 걸어 두는데, 내 작품이 맘에 드는 회사에서 명함을 놓고 가는 용도였다. 어떤 회사에서 보러 올지 모르기에 되도록이면 작품 옆에 계속 서있어야 했고, 누군가 내 작품에 흥미로운 눈길을 보면 최대한 자세히 설명을 해줘야 했다. 난 명함을 세 개 받았고, 졸업 작품이 끝난 후에 이메일로 연락을 했다. 취업용으로 만든 포트폴리오와 커버레터, 회사를 인터넷으로 찾아보며 어떤 프로젝트를 주로 하는지와 그 프로젝트들에 대한 나의 관심도를 피력하며, 바로 인터뷰를 할 수 있다고 적어 보냈다.


마지막 대학 졸업작품전. 옆에 포트폴리오도 세워둔다.


뭐, 무급 인턴?


이메일을 보낸 세 회사 중 두 군데에서 연락이 왔고, 면접을 본 후 한 군데에서 오퍼를 받았지만, 무급 인턴 조건이 붙었다. 무급 인턴의 기간이 정해 진 건 아니었고, 추후 노티스가 있을 때까지 계속 인턴으로 일해야 했다. 그 회사에는 마침 우리 학교 졸업생이 인턴으로 일하고 있었고, 따로 물어보니 현재 1년째 무급 인턴을 하고 있다고 했다. 1년 무급이라니, 부모님이 영국에 계시고, 집값, 밥값 걱정 없이 용돈 받으면서 다니는 거라면 괜찮지만, 난 집값, 밥값에 차비까지 생각하면 1년은 무리였다.


부모님께 전화드려 상황을 말씀드렸지만, 우리에게 남은 돈은 대학원을 갈 수 있는 비용뿐, 1년의 생활비를 추가로 감당하실 수는 없으셨다. 어차피 대학원까지 생각하고 온 거라 중간의 취업은 무의미 하긴 했다. 몇 년 일하고 다시 대학원을 다니려고 휴직을 하느니 그냥 바로 대학원을 다니는 게 나을 것 같아, 조금 아쉽긴 했지만 회사를 포기하고, 대학원을 가기로 결심했다.




영국 대학원의 문을 두드리다


대학원은 이미 생각한 학교들이 있었다. 건축과로 옮길까 생각도 해봤지만, 정식으로 배운 게 아니기 때문에 추후 졸업에 대한 위험 부담이 컸다. 실내디자인 관련 학과 중에 가장 알아주는 상위권 학교들을 알아봤다. 취업과 연계된 실습 위주의 학교가 있었고, 연구 중심의 학교가 있었는데, 각 학교의 졸업작품을 비교해 봤을 때, 난 연구 중심의 학교에 더 끌렸다. 더불어 학교를 미리 방문해 볼 수 있는 오픈 데이날에도 참석하게 됐는데, 내가 최종으로 선택한  대학은 그리 크진 않았지만, 역사가 깊고, 런던 중심에 위치했으며, 학생들의 작품들도 전공 구분 없이 다양하고 재미있었다.


영국 대학이나 대학원은 몇 개의 단과 대학교들이 모여 그룹을 이룬다. 내가 정한 대학원은 UAL(University of the Arts London), 런던 예술대학교 소속인 첼시 예술 대학이었다.


영국 대학의 졸업식은 졸업과 동시에 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수개월 후에 했다. 내가 한창 대학원을 다니고 있던 때였고, 학사모와 가운을 빌리는 비용이 상당히 비쌌다. 이미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해 부모님과 학사모를 쓰고 사진도 찍었었고, 부모님이 또 오시기엔 부담스럽기도 하거니와 조만간 대학원을 졸업하면 또 졸업식을 할 테니 이번에는 그 돈으로 유럽 여행을 가자 결심하고, 졸업식은 참석하지 않았다.


난 이제 대학원에 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유학? 신나게 놀아봄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