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쟁반도 컨셉 #쟁반을 든 채로
흔한 갈색 쟁반을 쓸 수도 있었을 텐데. 카페 전체 공간의 컨셉과 같은 맥락으로 설정되어 있는 쟁반은 주인이 내미는 명함처럼 보여서 간직하는 마음으로 보게 된다. 컵과 쟁반의 관계까지 고려한 가게라면 쓸 수 있는 신경은 다 썼다는 이야기다. 쟁반에까지 공을 들인 가게 중에는 부수적인 부분에 엉뚱한 에너지를 할애한 경우도 있지만 대게는 디테일한 쓰임까지 놓치지 않을 정도로 감각이 좋은 경우가 많다.
손님으로서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쟁반에 대한 인상은 생각보다 강렬한 편이었다. 커피 맛을 감지하는 미각에 대한 평가는 아리송할 때가 있는데 한눈에 보이는 쟁반은 시각적으로 구별 가능해서 감동받기 쉬운 편이랄까. 어쩌면 원두 투자 대비 이익률보다 쟁반 투자 대비 이익률이 더 높지 않을까. 어림잡아 본다.
요새는 쟁반에 담긴 모양새로 시선을 압도하는 카페가 많아졌다. 입으로 먹기 전에 눈으로 먹는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눈이 침을 질질 흘리고 있을 것 같은 비주얼이다. 일반적이라고 생각되는 커피의 가격을 넘어서도 수긍하게 된다. 모나미만으로도 문제없지만 몽블랑 펜을 사는 이유가 이런 쟁반에도 있지 않을까.
카페에서 진동벨이 울려 가보면 내 몫으로 약속된 잔이 쟁반 위에 놓여있다. 매장 내 일회용 컵 사용이 금지되는 추세라 오랜만에 무게감 있는 유리나 도자기를 마주하게 된다. 종이컵에서는 못 느끼던 견고한 질감에서 일회용일 수 없는 것들에 내재된 어떤 격을 느낀다. 완성된 형태에 가까운 커피를 대접받는 느낌.
그나저나. 컵의 테두리까지 봉긋하게 채운 우유 거품을 들고 자리까지 어떻게 무사히 가나 싶다. 한껏 모양을 낸 거품이 일그러지면 5천 원짜리 카페라테의 꽤 많은 요소를 망친 기분이 든다. 조심스레 쟁반을 들고 살금살금 이동하는 모양새가 스스로 느끼기에도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소심해 보인다. 몸의 균형감각에 이토록 신경 써본 건 요가의 나무 자세 이래 처음인 거 같다. 다행히 테이블 위에 안착한 거품아트는 처음 모습 그대로. 나무 자세를 수련한 보람을 여기에서 얻는다. 집에서 연출하기 힘든 인스타그래머블한 잔이라면 몇 장 찍어두고, 흔한 프랜차이즈면 그냥 먹던 대로 마신다.
위에서 내려다본 쟁반은 직사각형의 형태라 2차원적인 평면의 캔버스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 폭의 그림 같다'라고 감탄해놓고는 좀 과한 해석이다 싶어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하기로 한다. 비밀인 김에 덧붙이자면 위에서 내려다보던 시선을 바꿔 앞에서 바라보면 도자기 그릇의 단단한 커피잔에 입체감이 더해지면서 조각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역시 조소과 학생들이 들으면 혀를 찰 거 같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기로 한다.
시각적인 형태만으로도 휴식감을 주는, 일상의 흔치 않은 정물.
커피잔이 없었다면 모니터 앞에서의 노동은 한 컵 더 외로웠을 것이다.
어떨 땐 쟁반에 대여섯 개의 잔이 놓일 때도 있다. 서열상 막내라고 생각되면 그 모든 잔은 자연스레 내 몫이 된다. 별거 아닌 일이 함께 하는 사람에 따라 무겁게 느껴지기도, 가볍게 느껴지기도 한다. 쟁반의 도착이 본격적인 대화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면 남은 여정이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자리도 있다. ‘빨리 치우고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 드는, 쟁반을 돌려주는 시점을 간절히 소망하게 되는 순간이다.
세상에는 원대하고 비장한 꿈도 있지만 포스트잇에 썼다가 접착력이 닳기도 전에 떼어버릴 만큼의 자잘한 꿈도 있다. 마지막에 먹으려고 남겨둔 소세지, 월급날 이전의 날들, 개봉박두를 예고하는 넷플릭스의 시즌2 등등. 포스트잇처럼 붙었다 떼어졌다 하는 꿈이 삶을 버티게 하는 작지만 강한 동력이 아닐까, 하고 텅 빈 쟁반을 보며 꿈꾸듯 생각한다.
'받쳐준다'는 동사가 곧 성질이 되어 테이블과 카운터의 동선을 매끄럽게 이어주는 쟁반. 그러고 보면 접시는 깨져도 쟁반은 늘 멀쩡했다. 모든 공을 화려한 접시에게 돌리고 역할을 다하자마자 빠지는 겸손함을 지녔으면서도 추락할지언정 본래의 자신을 잃지 않는 쟁반. 낙하의 순간에도 단단한 쟁반이고 싶다는 바람은 사람이 품기에는 조금 무리한 야망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