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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브리데이미 May 04. 2022

후회 없는 여행은 없지만 여행을 후회하지는 않지

 여행을 기대하면서도 두려워한다. 이왕 떠난 길이라면 지역의 대표적인 명소와 유명한 맛집은 들려줘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는 터라 모처럼 쓴 돈과 시간이 계획과 다른 쪽으로 엉뚱하게 흘러가는 와전만큼 끔찍한 낭비는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


 게임의 레벨을 깨듯. 계획대로 움직이며 체크리스트를 착착 해치워야 직성이 풀리는 고집스러운 J 행복이란 딱할 정도로 빤하다. 가기로 했던데를  가고, 먹기로 한걸  먹은  숙소 침대에 누워 내일 일정을 들여다보는 뿌듯함이란! 알뜰하게 놀아제끼며 유희적인 욕구에 대해 책임을 다한 느낌이다.


 덕분에 여행지에서의 나는 어느 때보다 능동적이고 부지런한 인간으로 분한다. 일정 수준 이상의 실적을 요구하며 닦달하는 일중독 팀장처럼 여행지의 목표 실적을 세워놓고 달성과 성취의 쾌감을 득템해 나간다. 휴식 컨셉의 여행에서조차 '휴식'과 '사색'을 목표로 시간을 짜고 그 안에서 계획대로 휴식하며 계획대로 사색한다.

 

  

그러니 여행이라고 해서 유유자적하거나 한가로울 수가 없다. 어떤 면에서는 일상의 짜임보다 치밀하고 촘촘하다. 하루를 살아가는데 드는 비용의 몇 배가 드는 데다가 흔치 않은 기회니까. 그 희소성과 소비성과 주어진 가능성에 대한 불안한 희망감에 숨이 다 막힐 지경이다.


 해가 지기 전까지 돌아다닐 수 있는 시간과 여기까지 온 김에 들를 수 있는 주변 핫플과 효율적인 여행경비에 집중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신경이 곤두선다. 부푼 기대감에 가려 발톱을 숨기고 있을 뿐, 저 깊은 곳 어딘가는 실패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나락의 끝이 버티고 있다. 그 와중에 일정 하나가 어그러지면 마음 끝자락에 버티고 있던 일말의 인간적인 여유마저 증발해버린다.


 '일생에 한 번뿐인 기회를 이렇게 날리다니'!


 마치 오늘 보기로 한 지구의 일부를 영원히 잃어버린 것마냥 안타까워한다. '일생', '한번뿐', '기회', '날리다.' 모두 같이 붙어서 좋을 게 없는 말들인데 한번 붙어 버리면 별거 아닌 일도 거대한 데미지로 증폭 된다. 지엽적인 생각이 과장된 비극으로 추락하면서 여행의 기분을 망쳐 버리고, 손해를 볼까봐 벌벌 떨다가 더 큰 손해를 입는 오류에 빠지고는 한다. 기회비용에 집착하느라 더 큰 기회를 놓친 셈이다.

  

여행의 시작은 '서칭'이죠. 맨땅에 헤딩하지 않아요. 간을 많이 봅니다.

 

 관광지 휴무일 팻말 앞에서 땅을 치고, 맛집 브레이크 타임에 눈물 흘리는 나도 여행을 다니면 다닐수록 인정하게 되는 점이 있다. 계획대로 안 풀리는 상황이 꼭 나쁘지만은 않다는 사실이다. 누군가에게는 태어났을 때부터 지극히 당연했을지도 모를 이야기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기까지 참으로 많은 짜증과 성질을 부려야 했다. 죄 없는 돌을 발로 차고, 착한 동행에게 화풀이했던 지난 시간의 찌질한 역사는 구체적으로 기억나지 않으므로 ....(생략) 하고, 성숙한 깨달음으로 성큼 도약해보면....




 

 여행 중에 일어난 불운은 흰 셔츠에 떨어진 얼룩과도 같다. 베이킹소다에 넣고 불려도 남는 희미한 얼룩처럼 잘 지워지지 않는다. 셔츠의 경우라면 확실히 반갑지 않은 일이나 여행의 경우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내밀한 기억 속에 아로새겨진 얼룩은 시간이 지날수록 간직하고 싶은 나만의 여행 포인트로 두고두고 남기 때문이다. 공장에서 찍어낸 셔츠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흔한 셔츠라면 내가 흘린 얼룩이 배인 셔츠는 유일하게 하나뿐인 내 셔츠인 것처럼.


여행의 얼룩은 이 여행이 나만의 여행으로 구별되도록 짓궂은 장난을 친다.

 얼룩진 포인트는 그때의 여행을 특징짓는 대표 상징이 되어 다른 기억을 끌어오는 견인차 역할을 한다. 노란색 M로고를 보면 맥도널드가 떠오르고 갑자기 빅맥이 먹고 싶어지는 것처럼. 당시 여행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그 사건이 생각나고 이어 다른 기억까지 줄줄이 소환되면서 여행의 추억에 푹 젖게 되는 것이다. 순조로운 시간들은 뜨뜨미지근하게 아른거리는데 여행에 정 떨어질 만큼 고생했던 사건은 도리어 또렷하게 남아 있다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게다가 일정이 꼬이는 바람에 우연히 맞닥뜨린 사람이나 사건이 의외로 괜찮은 경우도 많았다. 이 우연한 만남은 '괜찮은 무언가'를 찾아 헤맬 때 깔리기 마련인 예측 가능한 기대심리가 없는터라 더 순수하게 감동적이었다. 동선과 비용을 계산하다 보면 어느덧 그 '계산한 값'이 계산 자체에 포함되어 자체적으로 감동의 최대치를 깎아내리는지도 몰랐다.


불운이 행운으로 바뀌는 인생의 반전을
몇 박짜리 여행을 통해
 압축해서 체험한 기분이었다.


 심지어 일정이 꼬이기만 했을 뿐. 딱히 추억이라 부를만한 이야깃거리를 건지지 못한 경우라도 그랬다. 당시의 절실한 후회와 안타까움이 뇌의 깊은 곳 어딘가에 아로새겨져 버린 탓일까. 훗날 돌이켜보면 가장 멋졌던 풍경보다도 그 풍경에 도달하기 위해 겪었던 징글징글한 고생담이 더 강렬하게 기억되고는 했다. 뇌란 녀석은 대체 자기의 용량을 어떤 방식으로 관리하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여행을 떠날 때마다 크게 두 가지 기류의 영향을 받는 느낌이다.


 '계획대로 일이 착착 풀릴 때의 기쁨'과 '계획대로 풀리지 않아 꼬일 때의 짜증'.


 여행 당시에는 전자대로 착착 진행되어야 시원스럽지만 막상 돌아오고 나면 후자의 뒤틀림이 남긴 인상에 더 오래 끌리고는 한다. 그러니 일이 계획대로 풀리면 풀려서 좋고, 풀리지 않으면 그 나름대로 의미 있다는 걸 명심하자고. 자꾸만 '지금의 술술 풀림'에 집착하려는 나에게 주문을 건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이 순간이 언젠가는
시간이 흘러도 남는 추억이 될 테니까.


 현재의 나는 여행을 망친 게 아니라 미래의 기억을 독특한 방법으로 장식하고 있을 뿐이라고. 이 망침을 즐기자고 속삭이며 나를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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