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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브리데이미 May 18. 2022

티켓팅은 이른데 기내식이 그리울 때

#기내 밖 기내식은 김 빠진 콜라일 뿐

 원래부터 기내식은 일상적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지만 코로나 기간 동안 내 삶에서 완전히 종적을 감춰 버렸다. 다행히 그 묘연한 행방에 연연하지 않아도 될 만큼 대체 먹거리가 무궁무진했다.


 전 세계의 이국적인 음식이 한국 버전으로 즐비하게 출시되는 나라였다. 돈의 한계가 있을 뿐 선택지의 한계는 없었다. 그날의 무드에 따라, 인스타에 떠오르는 사진을 따라 가보면 한국인이 넘기 힘들어하는 장벽을 배려 깊게 제거한 ‘유럽, 미국, 일본, 인도, 베트남 식’이 새롭고도 친근하게 놓여 있었다. 익숙한 입맛의 취향을 존중받으며 먹고살 수 있는 안정감 어린 행복을 만끽하느라 거부감 드는 향신료 앞에서 망설이던 지난 여행의 짜릿함을 잊을 수 있었다. 전국 지도 방방곡곡에 하트로 꼭 찍어놓은 맛집만 백개가 넘고 그중 아직 열개도 못 가본 마당에 편의점 도시락 비슷한 기내식을 그리워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이 풍성한 먹거리 틈에서도 종종 기내식이 당겼다. 난기류를 지나고 안전벨트를 풀어도 될 때쯤 뒤편에서 풍겨오는, 유명 셰프가 절대 개입하지 않았을 법한 그 단순하고 강렬한 냄새가 그리웠다.


 비슷한 마음들이 많았는지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먹을 수 있는 기내식이 출시되었다는데 기내 밖에서 먹는 기내식이라니. 김 빠진 콜라 같아 안 내켰다. 기내식이 그립지만 티켓팅은 아직 이른 요즈음. 지난 추억을 양식 삼아 조금 더 버텨보기로 했다.



 

 기내식에서는 가정집 부엌에서 정겹게 보글거리는 냄새나 식당에서 풍기는 떠들썩한 냄새와는 다른, 깔끔하게 요란한 냄새가 났다. 납작한 신문지를 구운 듯한, 공장에서 찍어내는 신문지의 컬러 잉크에 설탕과 소금을 넣고 소스로 끓이면 날 거 같은 단일품종의 대량생산적인 풍미였다. 그 맛깔스러운 신문지 냄새가 이제 막 도착한 따끈한 속보 뉴스처럼 기내를 장악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기내식의 준비를 알리는 냄새가 강렬하게 퍼지면 소시지 냄새를 맡고 미친 듯이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 신세가 되어버렸다. 숨죽인 환호성이 터지기 직전의 폭죽처럼 침샘 아래 장전되어 있었고 뭐든 삼킬 준비가 끝나 있었다. 보급품이 한정된 폐쇄적인 공간에서의 생존 본능이었을까? 음식의 꼴을 갖춘 모든 것에 대해 조건반사적인 집착이 일었다. 줄 때 받아두고 있을 때 먹어둬야 했던 학창 시절의 급식시간으로 퇴행한 기분이었다. 내 몫을 못 챙길지도 모른다는 까닭 없는 초조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내 그런 고민 따위는 필요 없음을 깨달았다. 그냥 제자리에 앉아 있으면 승무원이 알아서 갖다 줄 것이다. '지금 당장'이 아니면 금세 불안해지는 건 어떤 일이든 빨리빨리 해치우지 않으면 일이 잘못되어가고 있다고 오해하는 사고 습관의 착각일 뿐이다. 그러니 느긋하고 침착하게 행동해야 할 때였다. 숨을 고르고 머리는 고정한 채 눈만 돌리며 주위를 살폈다.                  


 배식은 맨 앞열부터 차례로 진행되었다. 어떤 메뉴를 택할 건지, 음료수는 또 뭘로 할 건지 일일이 물어보는 세심함이 좀 지나친 친절이 아닌가 싶었지만 막상 내 차례가 오면 마음에 드는 서비스일 것이므로 잠자코 기다렸다. 많은 사람들 틈에서 내 몫을 기다리는 상황은 언제나 좀 그렇다. 초조와 흥분을 감추기 위해 뻘쭘한 연기를 하게 된다. 가령 식판을 받기 위해 간이 테이블을 내리는 간단한 일에도 의식이 개입되면서 괜히 부자연스러워지고는 한다. 나는 이걸 승무원이 내 앞 좌석까지 왔을 즈음 슬쩍 내리는 동작으로 처리한 후, 짐짓 심드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마치 이제야 그들의 존재를 알아차렸다는 듯이. 주시니까 먹기는 먹겠다는 듯이. 무심한 톤을 유지했지만 내 영혼은 마침내 소시지를 받아먹은 똘이(우리 집 개)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기내식이 좋은 이유의 절반쯤은 모양새에 있지 않을까? 주메뉴와 샐러드, 과일이 각자의 용기에 따로 담겨 네모난 식판에 효율적으로 정돈된 배열을 보면 소화기관까지 단정하게 정리되는 느낌이다. 몸이 구름 위를 날으니까 마음도 구름 위를 날고 입맛은 너그러운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다. 고기며 생선, 야채 등 재료를 다루는 최적의 이해도를 노골적으로 무시한 모양새가 마치 "여긴 식당이 아니랍니다."하고 당당하게 못 박는 듯한데 그 못에 그대로 박히는 느낌으로 이해가 된다. 비행의 본질은 식도락이 아니라 안전한 이동에 있다고 주장하는 듯한 당당한 태도, 인간 문화의 풍요로움보다는 기계의 획일성을 닮은 식단이 나를 오차 없이 안전하게 착륙시켜줄 것만 같다. 비행 컨셉의 일환 같은 기내식의 어설픔이 싫지 않다.



                                      

 나의 경우, 기내식의 문제는 음식 자체보다는 그걸 내 것으로 하는 과정에 있었다. 기내에서의 식사 풍경이란 다소 괴이한 구석이 있어 몇 번을 경험해도 여전히 겸연쩍은 것이다.

                                                                                                                

  모르는 사람들끼리 일렬로 앉아 각자의 테이블을 내리고 밥을 먹는데 일행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는 않다. 함께 온 이들도 일인용 간이 테이블로 나뉘어야 한다. 혼밥인 듯 혼밥이 아닌데 결국은 혼밥인 이 시간은 결국 '단체 혼밥'이 되면서 구내식당 같은 데서도 이뤄내기 힘든 사무적인 풍경을 어색하게 달성한다. 정형화된 구조 속에 뭐라 형언하기 힘든 전체의 고독을 각자의 분량만큼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도 밥을 먹고 나니 낯선 이들이 최고로 낯설게 느껴질 때의 삭막한 지점은 지나간 느낌이다. 같은 공간에서 비슷한 메뉴를 먹어서일까. 이걸 '밥정'이라고 불러도 될까? 친밀감이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하고 친근감이라고 하기에도 아직 거리가 있는, 그러나 분명 식사 전과 같지 않은 온도가 기내 안을 살짝 덥혀 놓았다.



 한결 나른해진 공기 속에서 졸음이 쏟아졌다. 전날부터 잠을 설치던 차였다. 공항에 무사히 당도한 후에도 조바심은 사라지지 않고 내면 깊은 곳을 닦달해왔다. 검색대를 통과하면서도. 면세점을 구경하면서도. 긴장을 놓는 순간 비행기를 놓치고 여행 전체가 엎어질세라 졸인 마음을 풀지 못했다. 긴장감은 티켓에 적힌 좌석에 안착해서야 기다렸다는 듯, 와르르 풀리며 묵직한 피로감으로 바뀌었다. 중요한 스케줄은 블랙홀처럼 자기의 앞과 뒤에 놓인 시간의 에너지를 빨아먹는 법이라 비행기에 무사히 오르고 나서도 한동안 정신을 못 차렸다. 노곤노곤 풀리는 몸과 마음을 기분 좋게 깨운 기내식도 다 먹었겠다, 여행의 1차전을 무사히 치른 안도가 일었다. 그제야 어젯밤부터 미뤄두었던 잠을 잘 수 있었다.





 비행기를 타고 여행하던 시절, 기내식은 흡사 포상과도 같았다. 여행의 1차 관문을 무사히 치러냈음을 확인하는 절차이자 열심히 살아온 지상에서의 삶에 대한 하늘 위의 보상이었다. 그런 면에서 기내식은 재료와 소스의 맛이라기보다는 성공적인 여행의 출발을 배당받은 '통과의 맛'에 가까웠다.  


  코로나 이후 첫 비행을 하게 되어 다시 기내식을 먹는다면 어떤 맛일까? 투명한 가림판을 사이에 두고 단체로 혼밥 하던 코로나의 일상을 통과했으니 비행의 혼밥에도 좀 더 잘 적응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며 위의 미래에 기내식의 자리를 예약해두었다. '가고 싶은 맛집'에 점찍어 두는 하트를 지도의 상공에도 찍을 수 있다면 나의 하트는 전 세계의 하늘을 누비고 있는 중일 것이다. 언젠가 다시 꼭 그 맛집을 방문하게 되기를. 리뷰 별점 다섯 개는 맛도 안 보고 꽉꽉 채워 드릴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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