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의 플레이에는 치킨을 곱빼기로 맛있게 하는 '손흥민 무드'가 있다.
영화관에 가면 팝콘 냄새에 못 이겨 팝콘을 먹고, 바닷가에 가면 파도의 흥을 따라 횟집에 이르게 되듯이. 내가 메뉴를 고르는 게 아니라 메뉴가 나를 선택하는 순간이 있다.
구체적으로 고민해보기도 전에 잔뜩 무르익은 분위기에 휘둘리기만 하면 되는데. 특별한 행복이 99%의 확률로 준비되어 있고 나머지 1%는 선택만 하면 채워지는 시점에서 완성 직전의 행복을 걷어찰 필요가 있을까?
특정한 순간에 먹는 특정한 음식이 일종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는 건 그만큼 오랜 검증을 거쳐 맛없을 확률을 낮췄다는 뜻이다. 경험치의 그물에서 별로다 싶은 조합은 빠져나가고 남은 괜찮은 조합이 사계절을 적절히 배불린다. 주말에 밀린 드라마를 보면서 시켜 먹는 배달음식이나 폭염의 와중에 뜨는 설빙, 겨울의 붕어빵, 찜질방의 식혜와 구운 계란, 소풍날 도마 곁에 쌓인 김밥 꼬투리, 뜨뜻한 방구들 위에서 까먹는 귤, 산에서 흡입하는 컵라면... 시공간과 결부된 음식에는 '분위기의 맛'이 추가되어 만족도가 곱빼기로 늘어나는 특징이 있다. 흡사 행복이란 감정을 조리해서 맛보는 듯. 입 안에서 시작된 흐뭇한 감각이 마음 저편의 행복감을 일깨운다.
이 행복감을 최대한 자주 얻어내기 위해 시공간의 눈치를 살피다 보면 축구 경기를 앞둔 무렵에는 치킨이나 짭짤한 안주류 같은 것들이 떠오른다. 치열하게 몸싸움을 벌이는 화면 앞에 놓기에 딸기 케이크는 유약하리만치 달달하고 따뜻한 집밥은 그래서는 안될 만큼 훈훈하다. 훈훈, 달달... 이런 양상으로는 아무래도 원활한 몸싸움이 힘들 것 같지 않은가. 'TV 화면의 아드레날린과 걸맞은 파워풀한 뭔가를 먹고 싶다. 육즙 어린 단백질을 야성적으로 뜯으며 선수들의 기량과 합을 맞춰야 지속적인 관람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소리가 그럴듯하게 가슴을 울린다. 그렇다고 귀한 소고기를 TV 앞에서 대충 흘려 먹을 수는 없는 일. 축구 보면서 고기 굽기는 혼란스럽고 버거운 작업이라 결국 남이 튀겨주는 치킨이나 봉지만 뜯으면 되는 안주류에 의지하게 된다.
사실 아직 뭘 시키지도 않았는데 방안에는 기름진 공기가 미리 깔려 버렸다. 진짜 기름 냄새를 가져다 놓지 않으면 경기 내내 크나큰 상실감에 시달릴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를 미워하는 사태를 막으려면 서둘러 결단을 내려야 한다. 칼로리며 건강문제며 만만찮은 배달료며. 치킨 한 마리에 얽힌 복잡다단한 갈등 요소 앞에서 잠시 머뭇거렸지만 내게는 치킨 한 마리쯤은 언제 시켜도 아무도 뭐라 못할 피로가 양 어깨에 잔뜩 뭉쳐 있다. 오늘은 벼르고 벼르던 승모근을 푸는 날. 과감하게 배팅하듯 승모근 푸는데 최고라는(?) 치킨을 주문한다.
치킨은 바로 이 순간을 위해 튀겨지는 게 아닐까 싶게 축구 무드와 잘 어울렸다. 고기를 튀겨버린 박력에서 이미 압도적이었다. 압도적인 기량이 필요한 경기장의 염원을 음식으로 구현해낸 모양이랄까. 바삭한 튀김 갑옷을 두른 채 공중으로 삐죽삐죽 솟아있는 입체감이 파티 무드를 조성해 내기까지 했다. 선수들이 신체 에너지를 분출하는 쪽이라면 시청자는 지친 에너지를 채우는 쪽. 플러스 마이너스가 합을 이루며 축구계의 음양오행이 비로소 조화를 이루는 한 입 한 입이었다.
일상에 쌓인 스트레스를 풀자고 보는 경기지만 또 우리 팀이 지는 꼴은 보기 싫어서 긴장감이 잔뜩 고조되어 버리는데 그때의 긴장감은 일상의 피로를 푸는 쪽으로 조여진다는 점에서 모순어법적인 스트레스 풀기가 아닐 수 없다. 다행히 이번 시즌 토트넘의 마지막 경기는 바짝 조여지는 느낌보다는 빵빵 터지는 축제 분위기였다. 토트넘은 챔피언스 리그 진출을 달성했고 손은 아시아 최초로 득점왕이 되었다. 최근, 대한민국에 일어난 사건 중 가장 기쁜 소식이 실시간으로 생중계되었다. (그 밤의 환희를 모아 불꽃으로 터트렸다면 세계에서 가장 큰 불꽃축제로 장관을 이루었을 테지만 불꽃놀이 구경은 필요 없을 만큼 가슴속 감동만으로도 충분히 벅찬 밤이었다)
치킨은 역시 손흥민 치킨이었다. 손의 플레이에는 치킨을 곱빼기로 맛있게 하는 '손흥민 무드'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