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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브리데이미 Jun 02. 2022

얼음 가득 채운 아이스라떼

 올여름의 폭염을 예고하는 듯한 거리의 공기가 불길하게 뜨거웠다. 지난여름의 망령이 등줄기를 서늘하게 스치는 기분이었다. 카페에 들어가 ‘살려주세요!’를 외치듯 ‘아이스라떼 주세요!’를 외쳤다. 어제 마신 뜨거운 라떼의 기운이란 상상만 해도 진저리가 쳐지는 변곡점의 날이었다.


 2022년. 서른여덟이 되어 처음으로 만난 아이스라떼는 여전하다. 어째 하나도 안 늙은 게 로스팅을 알맞게 한 싱싱한 원두로 내린 커피다. 거품기 없는 또렷한 우유 위로 진한 에스프레소가 물감처럼 번져나간다. 어제의 라떼와 오늘의 라떼가 온도 차이로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어버렸다. 같은 사람이 뜨겁게 환대해 줄 때와 차갑게 돌변했을 때처럼. 어안이 벙벙할 만큼 다르다.

 

 인스턴트커피와 설탕과 프림을 기호에 맞춰 '2:2:1'이나 '1:1:1'로 달달하게 먹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제 그런 커피는 우리 엄마도 안 마신다. 어쩌다 레트로풍으로 분류되어 있는 걸 발견하면 '추억이라 하기에는 너무 동시대적인 거 아닌가?' 하다가 이런 커피를 안 마셔본 애들에게는 레트로겠구나 하고 격세지감 한다.     


 시대의 변화가 허락한, 새로운 종류의 멋짐이란 '미완성 커피'에 있다. 인스턴트커피 알갱이는 뜨거운 물을 붓고 저어야 녹는 성질의 것이었다. 성심껏 섞어도 꼭 덜 풀린 가루 몇 점이 오점처럼 떠다니고는 했다. 요새의 아이스라떼는 완전히 섞이지 않은, 미완성의 상태로 받게 되는데 그 덜됨이 바로 멋짐 포인트다. 흰 우유 사이로 갈색 에스프레소가 바닥을 따라 내려가는 여정이 아름답게 대비된다. 그걸 한참 바라보다가 빨대로 휘휘 저으면 컵을 가득 채운 얼음에서 딸그랑 딸그랑 여름이 다가오는 예고 송이 울린다.



 어릴 때의 나는 종종 헷갈렸다. 얼음은 먹는 걸까. 가지고 노는 걸까?                                                     


 어떤 음식도 얼음처럼 대해본 적이 없어서 어느 카테고리에 넣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사탕이나 아이스크림으로 분류하기에는 자격이 없을 만큼 밍밍해서 오직 재미에 있어서만 유용한 공갈 같았다. 어른들은 일찌감치 공갈을 뗀 것 같았다. 엄마는 이가 시리다며 늘 얼음 몇 개를 남기고는 했다. 남은 얼음은 자연스레 내 차지. 커피의 기운이 배어 있는 얼음을 물면 달짝지근한 여운을 훔치듯이 맛볼 수 있었다.


 데굴데굴 쪽쪽 빨다 보면 얼음이 어떻게 변했는지 보고 싶은 순간이 찾아왔다. 손바닥 위에 뱉어 놓은 얼음은 작고 투명한 조약돌처럼 둥글어져 있었다. 직육면체의 각진 덩어리가 냉동고  세상으로 나온 이래 차츰 작아지는 중이었다. 뜨거운  안에서. 미지근해진 커피 안에서.  안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몸을 소진하는 성실한 소멸자처럼 없어지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얼음의 존재 이유는 소멸. 존재 자체가 소멸. 인간의 삶을 이십 분짜리로 압축하면 얼음이 되는 걸까.


 수많은 얼음을 보내고 다시 맞은 여름. 여름의 비상약을 채우듯 얼음틀에 물을 담았다. 칸칸이 고인 네모난 웅덩이의 수평이 유지되도록 신경 쓰며 냉동고에 넣었다. 이로써 한나절 뒤의 변신이 예약 완료되었다. 같은 존재가 온도의 차이로 전혀 다르게 되고, 확연한 차이에 닿는 순간 시원한 위로를 받을 거라는 예감이 미리부터 위로로 닿았다. 그 위로의 흔적으로 하루하루를 연장받아 살아갈 것임을. 한껏 뜨거워진 몸과 마음은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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