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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 Oct 24. 2020

워라벨 확인, 손익계산서 확인보다 중요해

에필로그





드라마처럼 살라, 드라마같은 장사


"언젠간 지오선배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모든 드라마의 모든 엔딩은 해피엔딩밖엔 없다고. 어차피 비극이 판치는 세상, 어차피 아플 대로 아픈 인생, 구질스런 청춘, 그게 삶의 본질인 줄은 이미 다 아는데, 드라마에서 그걸 왜 굳이 표현하겠느냐고. 희망이 아니면 그 어떤 것도 말할 가치가 없다. 드라마를 하는 사람이라면 세상이 말하는 모든 비극이 희망을 꿈꾸는 역설인 줄 알아야 한다고 그는 말했었다....(중략)"

(KBS, 그들이 사는 세상, 2008, 준영 내레이션 중)


2019년 하반기에 준비해 12월 말에 공방 문을 열기 시작한 나의 장사는 10개월이 지나간다. 장사를 시작하며 경험하고 느꼈던 것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진건... 스스로 생각해도 내 인생이 너무 예측불허인 것 같아서였다. 장사를 하기 전에도 '내 인생 참 버라이어티 하다'고 생각하곤 했지만, 대체로 한 번쯤은 상상했던 모습이었다. 하지만 장사는 아니다.


나의 오랜 취미 활동은 한국 드라마를 챙겨 보는 것이다. 동시대 사회와 문화를 읽게 해 주고, 여러 가지 감정을 대리만족하게 해 주기 때문에 드라마를 보기도 하지만, 드라마를 끊임없이 보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나의 상상을 뛰어넘는 삶과 세상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어느 날 장사를 하고 돌아와 캔맥주 한 잔에 드라마를 보며 하루를 돌아보다, 대사 하나가 생각났다.


"드라마처럼 살아라"


2008년 노희경 작가의 작품인 <그들이 사는 세상>의 회차 제목이자 대사다. 한국 드라마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꼭 챙겨 봐야 하는 작가가,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의 삶과 세상을 그린 작품이니, 내겐 거의 고전(!)과 같다. 고전 속 내가 좋아한 대사지만 잊고 지냈는데, 장사를 마친 어느 밤 갑자기 떠오른 것이다.


'요즘 정말 내가 드라마를 찍네 찍어. 드라마처럼 살아란 대사처럼, 내가 그러고 있구만.'


상상 밖 삶과 세상을 보여 주는 드라마. 그리고 상상해 본 적 없는 장사를 하는 나의 새로운 삶과 세상. 이 두 가지가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2020년엔 새로운 드라마를 볼 때마다, 장사하는 나의 일상이 자동으로 겹쳐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리하여, 지리산소풍 탄생기를 연재하며, 드라마를 연결시킨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제 그에게 묻고 싶어 진다. 그렇게 말한 선배 너는 지금 어떠냐고, 희망을 믿느냐고..." (KBS, 그들이 사는 세상, 2008, 준영 내레이션 중)


드라마 PD인 준영은 자신의 선배이자 애인인 지오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묻는다. 모든 드라마 결론이 해피엔딩이어야 한다고, 충분히 경험하는 비극의 현실을 드라마가 재현할 필요가 뭐 있냐고, 희망을 보여 줘야 드라마라고 했었는데, 그런 드라마를 만드는 너 스스로는 어떤 희망을 꿈꾸냐고 말이다. 희망을 보여 주지 않는 드라마도 좋아하는 나는 오히려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드라마처럼 살아라는 대사를 그토록 좋아하던 너는 지금 어떠냐고, 드라마같은 장사에서 희망을 보느냐고...'


글쎄, 아직 1년도 채우지 못한 나의 장사에서 희망을 논하긴 아직 이르다. 2020년 한 해를 꽉 채우고 난 후에도 (코로나와 섬진강 범람 수해를 핑계로) 제대로 평가하기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이야기의 결말은 정해져 있다. 새드엔딩도 해피엔딩도 아니다. 그저 나의 장사는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는 결말이다.






시골살이를 선택한 초심을 잊지 말 것.

워라밸을 지키는 삶을 위해 시골로 이주했음을...


처음 해 보는 장사가 재미있긴 하지만, 내겐 농사와는 또 다른 스트레스가 분명 있다. 그래서 장사를 하고 돌아오면, 후다닥 옷을 갈아 입고 호미 하나 들고 밭으로 나가곤 한다. 그렇게 한두 시간이라도 흙을 만지고, 작물들을 돌보고 오면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새 기운이 돈다. 장사꾼이기 이전에 농부, 농부로 살고 싶어서 장사를 하는 사람임이 드러난다.


공방은 매주 목, 금, 토요일 3일만 영업을 하지만, 영업을 하지 않는 날에도 그 주에 쓸 재료나 상품을 준비하느라 다른 요일도 장사의 연장선에 있다. 주문이 많거나 공방에 신경 쓸 게 많아져 일에 매달려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 난 탄식을 한다.


"아... 내가 이러려고 시골로 온 게 아닌데...!"


돈을 많이 벌고자 한다면, 솔직히 도시에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농촌 시골에서도 대졸, 대기업 10년 차 월급 정도를 버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그럴 확률은 도시에서 보다 훨씬 낮다. 밑천과 연고가 없는 나같은 이라면 더더욱. 그렇기에 내게 돈벌이(장사)의 목표 수익은 확연히 낮은 금액이다.


목표액이 적을 수 있는 이유는 도시에서보다 (식비, 월세, 기본 세금, 자질구레한 즉흥적 소비 등의) 지출이 확연히 적기 때문이다. 그렇게 적은 생활비를 충당하고자 다른 아르바이트 대신 장사를 시작한 내가, 나의 자급자족 농사가 연결될 수 있는 방식으로 장사를 시작한 내가, 장사일로 내 일상을 잠식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엄청난 돈을 버는 것도 아니니 억울할 일이다.


나는 시골에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잘 맞추며 살고자 했다. 시골에 온 첫 해에는 일은 없고 삶만 있어서 통장 잔고에 빨간불이 켜지는 불균형이 왔었다. 그런데 장사라는 새로운 일이 생기고 나니, 삶이 뒷전이 되고 일에 치이는 상황으로 불균형이 생긴다. 내가 목표로 하는 수익을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욕심에 의해 돈을 버는 일에 과한 에너지를 투입해 워라밸을 망치고 있진 않은지 자주 확인한다. 그렇게 균형이 무너질 때면 나는 모든 일을 멈추고 산책을 나간다. 정해진 요일, 정해진 시간에는 내 방에 들어간다.


가계부만 쓰던 내가 손익계산서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손익계산서 확인보다 이 워라밸 확인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계속 장사를 할 것이다. 물론 좀 더 효율적으로 수익을 늘리기 위한 노력도 할 것이다. 그전에, 방학부터 할 것이다. 2020년 한 해, 수해를 입었던 8월의 한 주와 추석 한 주만 쉬고, 빠짐없이 영업을 했다. 2020년 12월까지 꽉 채운 1년간, 일에 무게 추가 몰려 있었으니 전반적인 균형을 위해 2021년 1월은 겨울 방학으로 정했다.


방학을 기다리며... 드라마같은 장사의 걸음마 이야기는... 페이드 아웃, 컷!




먹거리와 이야기를 짓는 브랜드, 지리산소풍의 탄생기!

밀리의 서재에서 <작고 특별한 공방을 열었습니다>로 더 많은 이야기를 읽어 보세요  :)

https://www.millie.co.kr/h4/event/brunchbook-aw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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