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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 Apr 24. 2024

완두콩

야X채소이야기#08.


학명 : Pisum Sativum
분류(과명) : 콩과 (pea)
원산지 : 서아시아 / 지중해연안
다른 이름 : snow-pea(추위를 잘 견뎌서), mange-tout(프랑스어로 '다 먹는')



#01. (20240424) 완두콩 첫 줄을 매면서

초겨울에 완두콩을 파종해서 월동하게 한 뒤 이른 봄부터 자라게 하는 예전 방식의 농사법을 처음 접했을 때 내가 함께 발견했던 것은, 이미 죽고 말라버린 고추나무였다. 한 겨울에 황량한 밭에 죽은 고추나무가 왜 그대로 있을까... 어르신들의 일반적인 농사 패턴이라면 이미 싹 다 뽑아 태워버리고도 남을 텐데... 의아했다. 그런데 봄이 되고서야 알았다. 그렇게 남아 있던 죽은 고추나무는 바로, 봄날에 덩굴을 뻗으며 자라는 완두를 위한 쓰임을 목적으로 했었음을 말이다.


나 역시 겨울에 말라죽어버린 고추를 한 줄 뽑지 않고 그냥 뒀다. 그 고추 아래에 완두콩을 파종할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봄이 되어 완두가 막상 자랄 때, 자연히 완두의 덩굴손이 고추나무를 잡고 올라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녀석들은 줄기채 바닥을 기어 다니거나, 옆에 있는 다른 잡초를 붙잡거나, 바람 따라 방향을 잡으며 스려져 있었다. 결국은 줄을 매어줘야했다.


바닥에서 10cm~15cm 정도의 높이로 줄을 하나 둘렀다. 줄 사이에 완두 줄기가 서도록 한 뒤 완두의 덩굴손을 하나씩 고추나무 쪽으로 연결해 주었다. 완두의 손을 잡고 이끌어 주는 작업. 기분이 묘했다. '이쪽에 잡고 가기에 튼실한 것이 준비되어 있잖아 이렇게. 이쪽으로 손을 잡으라고!'라고 속으로 말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어린 완두의 손은 약하지만 확실히 힘이 있다. 이미 다른 풀을 붙잡고 있는 손을 떼어내기란 쉽지 않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틀 후에 가 봐야지. 내가 이끌어 준대로 고추나무를 붙잡고 있는지, 그 손이 또 어느 엉뚱한 곳을 붙잡고 있진 않은지 확인해야지. 


그나저나, 완두 손을 하도 잡아서 그런가. 오늘따라 손에 자꾸 눈이 간다. 첫사랑이랑 처음 손 잡던 날 생각도 나는 것 같고...






#02. (20230603) 완두콩을 수확하면서

이른 봄 첫 밭꽃을 피우는, 구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작물. 어르신들 말씀이, 예전엔 많이들 심어서 팔기도 많이 팔았던 작물이지만 지금은 농사가 많이 줄었다고 하셨다.


매 해 봄마다 밭을 계약해서 농사짓다 보니 어르신들처럼 겨울 파종은 못하고 봄파종을 했다. 계속 실패했었다. 세 번째 도전한 올해도 테스트였다. 한 두둑만 심었는데 올봄은 날씨가 녀석들에게 맞나 보다. 열매가 제대로 맺혔다. 그런데 완두를 따는 일이 쉽지 않다. 덩굴로 이리저리 얽혀 있는 녀석들 사이로 웅크리고 앉아 육안으로 구분하기 어려워 하나하나 손으로 확인하며 수확하기란 쉽지 않다. 거기다 메주콩이나 서리태처럼 한 번에 수확하는 것이 아니라 고추처럼 자주 확인하며 몇 차례 따야 했다. 자칫하면 콩이 완전히 딱딱하게 익어버리니! 왜 완두콩 농사가 사라졌는지, 왜 통조림 완두콩만 먹고살았는지, 알 것 같다. 


아직 완두의 세계를 잘 모르는 농부는 수확해 온 완두를 다시 선별한다. 4단계로 상태들을 구분하고, 각각 쪄 보고도 긴가민가하다. 결국 완두콩 농사 선배에게 샘플을 들고 가 배운다. 요 며칠 완두를 집중적으로 만나며, 완두의 세계를 알아간다. 어느 하나 만만한 녀석은 없어왔지만, 이렇게 유난히 쉽지 않은 녀석들이 있다. 완두콩 샘플을 들고 모르겠다는 내게 선배님들이 말씀하셨다. "자꾸 하다 보면 확실히 알게 돼요." 결국 더 하란 말씀이다. 


내년엔 좀 더 친해지자, 완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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