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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ㅅㅇ Apr 26. 2017

6. 집이 아닌 사람에 로망을 갖다.

결혼의 필요충분조건은 집이 아니다.

요즘은 결혼식을 하기 전에 집을 먼저 마련한다. 집 구하기가 그만큼 어렵고 괜찮은 집을 구하기란 더 어렵기 때문이다. 날이 갈수록 치솟는 집값에도 불구하고 집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늘어간다. 평범한 사람들 중에 빚을 지지 않고 집을 사는 사람은 극히 드물며, 집을 산다는 게 이제는 당연히 빚을 내서라도 사야 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있다. 이런 시각도 있다. 성별과 나이를 불문하고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말하는 기준에 꽤 상당한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 '집을 살 능력이 되는가'라는 것이다. 때문에 결혼 준비에서 가장 큰 산이 되는 신혼집을 마련한다면 다른 것은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진행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친오빠의 결혼식이 끝나고 나는 그의 신혼집을 방문했다. 입구에서부터 철저한 보안과 새 아파트라는 것을 증명하듯 엘레베이터 안은 아직 마감작업이 덜 되었고 25층에 달하는 높이부터가 이미 내가 사는 집과는 달랐다. 집에 들어서자 바다가 보이는 전망과 화장실이 두 개인 것과 거실 벽이 대리석이라는 것에 감탄하며 한때 품었던 살고 싶은 집에 딱 들어맞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로망 혹은 낭만의 실현처럼 오빠가 신혼여행을 간 사이 나는 그곳에서 집 주인마냥 며칠을 살았다. 밤이 되면 야경이 보이고 냉장고 안에는 먹을 것이 가득하고 게임기가 잔뜩 있어서 심심할 틈이라곤 없어 보였다. 나는 친구를 집으로 초대했고 우리는 주로 사 먹고 얘기하느라 막상 게임을 할 시간도, 야경을 볼 여유도, 냉장고 안 음식에 손을 대지도 못해서 오빠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왔을 때는 상해버린 음식들을 다 버려야만 했다.

사실 냉장고 안에는 뭐가 있었는지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경치는 하루 이틀 지나니까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급히 나가야 할 때는 25층에 산다는 게 단점이 되기도 했다. 집안 전체에 난방을 온종일 틀고 있어도 넓은 평수 때문에 온기는 은은하게만 느껴졌다. 친구와는 한 집 안에서 카톡으로 대화를 하고 오빠가 왔을 때도 나간다고 미리 연락을 줘야 거실에서 만날 수가 있었다. 존재도 알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한 음식들을 속상한 마음으로 버리면서 나는 돌연 양문형 냉장고가 삶의 축소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삶에서 너무 많은 것들이 필요 이상으로 꽉 채워져 있으며 아이러니하게도 그럴수록 보지 못하는 게 많아진다는 것이다. 집의 평수와 물건의 양만 생각했지 냉장고의 크기를 생각해본 적 없었던 나는 냉장고는 집과 더불어 클 필요가 없으며, 그때그때 먹고 버리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작은 사이즈의 냉장고를 사리라고 다짐했다.

결혼의 로망처럼 달콤한 신혼집에 대한 로망 그 속에서 9일을 지내며, 점차 '집'에서 '사람'으로 시선을 돌리게 되었다. 나도 한 때는 부부 개인마다 서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영화를 좋아해서 빔프로젝터가 있는 영화 보는 방을 따로 두고 싶었으며, 거실엔 책장 가득 책을 꽂아놓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하지만 책은 빌려서 읽으면 되고, 영화도 노트북으로 보면 되는데 굳이 뭔가를 갖추고 싶어하는 것은 소유욕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미니멀라이프를 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나는 갓 신혼부부가 된 그들을 바라보며, 좋은 배우자가 있으면 어디든 좋은 집이 된다는 확고한 신념이 세워졌다. 안타까운 것은 좋은 집을 갖고 싶다는 욕망에 비해 좋은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앞장서는 사람들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을 때 나는 좋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우리 집이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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