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여의 육아 휴직 후 2년째 헤매고 있는 한 엄마 기자의 일기
아기를 낳을 때 겪는 가장 큰 고통은 '진통'이다.
주리를 트는 고문이 딱 이런 느낌이겠구나 싶다.
지옥 같은 순간이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극강의 고통.
고통의 주기가 5분에서 3분, 1분 간격으로 짧아지면서 드디어 아이가 나오는 건가 싶었지만...
9시간 진통 끝에도 나오지 않던 아이는 결국 배를 가르는 '수술고(苦)'까지 추가한 뒤에야,
만날 수 있었다.
아기를 낳고는 '산후통'이 찾아온다.
젖몸살과 손발 시림, 훗배앓이 등.
이건 진통만큼은 아니지만, 꽤 오래간다.
거기에 마음의 통증도 겹친다.
만신창이인 몸으로 산후통을 감당하면서
이제 막 태어난 아이 모유 주고, 똥오줌 치워주고, 우는 거 달래주다 보면,
내 몸으로 낳은 내 아이에게 애정까지 줄 기력이 없다.
아이에게 미안하면서도, 내 몸은 아프고,
아픈 몸으로 아이 케어를 해내면서도 뭔가 자책감이 드는,
굉장히 고단하고 서러운 종류의 심신의 고통을 겪는 시기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예상치 못한 고통이 또 있었다.
바로, 복직통(復職痛).
복직통이 뭐냐고?
뭐, 뱃속 근육인 복직근이 아프다는 게 아니다.
한자로 풀이하자면, 복귀할 '복'에, 직분 '직', 아플 '통'.
직장에 복귀한 뒤에 겪는 아픔, 번민, 심적인 고민을 뜻하는 말이다.
오랜 고민 끝에 내가 지어낸 단어다.
어떤 면에서는 출산 전후 겪었던 진통, 산후통보다 더 힘든 거 같다.
2년째 복직통을 앓고 있다
나는 2019년 12월에 출산하고, 2021년 4월에 복직했다. 기자 경력은 만 13년. 이중 휴직했던 1년 4개월을 빼면, 11년 6개월쯤 된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전체 기자생활 중 고작 10분의 1 정도의 시간을 쉬었을 뿐인데... 나는 몇 배 더 퇴보한 상태로 복직했다. 머릿속이 새하얘졌고, 나빠진 기억력은 좀처럼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머리만 늙은 게 아니고, 몸도 무거워졌다. 온몸에 영양분은 다 빠져나가고 껍데기만 남은 채로 복직해서 이 겉껍데기를 이고 지고서 출퇴근한다.
복직하고 나니, 육아휴직을 포함해 나의 연차는 13년을 넘어버렸는데..
나는 휴직 이전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한다. 아니 이전만큼 생각 자체를 못 한다.
노력을 안 하는 거 아니냐고?
게으른 거 아니냐고?
그러게, 복직하고 애를 키우면서도 나름의 성과를 잘 내는 사람들도 많으니(유튭이나 SNS상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아직 내 주변에서는 보지 못했다.
조부모 도움 없이 오로지 부부 둘이 애를 키우는 집 중 헤매지 않고,
쉬이 일하는 사람들을 나는 보지 못했다.
특히 퇴근이라는 것이 일정치 않은 이 직업에서, 엄마는 더욱더.
다들 헤매는 거 같고, 일의 성취를 포기하거나, 아이와의 시간을 포기하거나,
무엇 하나를 포기하거나, 아니면 포기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거나.
복직 초반 2주 정도는 출퇴근 길에 마시는 사회적인 공기.
사람들 틈에서 나름 살아있음을 느끼며 행복한 순간도 있었다.
맘 편히 점심밥을 먹고, 여유롭게 커피 한잔을 할 수 있다니.
그리고 마음껏 글자를 읽을 수 있다니!!! 이 얼마마 호사스러운 생활인가...
하지만, 곧 아이템 압박이 닥쳐왔다.
물론 나에게 직접적으로 다그친 사람은 없었다. 나 스스로 그렇게 느꼈다.
복직하고 시간도 어느 정도 흘렀는데 대박은 아니어도 중박 정도의 성과물은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압박과 강박에 수개월을 시달렸다.
아이템 하나를 취재하면서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고,
기사 쓰는 일부터 편집하고 마무리하기까지 내내 불면증과 심장 두근거림이 동반했다.
복직 후 첫 번째로 보도한 아이템은 어느 한 대학 교수들의 논문표절과 학술지 장사를 다룬 기사였다.
보도 일주일을 앞두고는 불안 증세가 심각해졌다.
자려고 침대에 누우면 천장에서 수백 장의 논문이 내 얼굴 위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문서들이 날 노려보는 것 같았다. 무서웠다.
잠을 못 자더라도 자료를 보고 있는 순간이, 일을 하고 있는 순간이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이런 기분은 기자생활 당시 11년 만에 처음이었다.
이 정도로 불안한 적은 처음이었다.
팩트 하나라도 틀릴까 봐 노심초사한 정도가 도를 넘어섰다는 걸,
보도 이후에야 깨달았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줄 알았다.
나아질 틈이 없었다.
나를 돌볼 틈 없이, 다시 내공을 쌓을 틈 없이, 충전할 틈 없이
출근해서 의무 방어하듯이 일을 하고,
돌아오면 옷도 제대로 갈아입지 못하고 아이와 놀아주기 바빴다.
남편이 정말 많은 역할을 분담했지만,
육아에 있어선 거의 전담하다시피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집에 돌아와 자기 계발을 하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렇게 일하고 집에 돌아와서 책 한자도 못 읽고, 심적 충전을 못 한 채로
다음날 다시 출근한다는 건...
나의 불안 증세가 앞으로도 나아질 리가 없다는 뜻이었다.
그런 상태로 복직한 지 2년이 다 되어간다.
지금은 좀 나아졌을까?
아니... 전혀.
나는 결국 심리상담을 받기로 했다.
내가 육아와 무관하게 무능해진 건지.
출산과 육아의 영향이 있는 건지.
원래 복직하면 이렇게나 오래 힘든 건지.
우리 회사에선 내가 최고참 여자 기자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그래서 이런 고민을 나눌 선배가 딱히 없다.
애를 키우는 아빠 선배들이 많지만, 고민의 결이 엄마와는 또 다르다.
무능하고 무기력해진 몸을 끌고 다니는 회사 생활이
불안하고 외로워서 결국 상담소를 찾았다.
지금까지 5회 차 상담을 받았다.
아직까지는 큰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
복직 후 온라인상에 기사 외에 어떠한 글도 쓰고 싶지 않았는데,
나처럼 회사 내에 선배도 없고,
혹시 나만 이렇게 복직 후에 힘든가? 싶은 사람이 있을 것도 같아서.
복직통을 극복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다.
다만, 극복하려고 분투하는 과정을 끼적여 놓으면
누군가에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두서없이 적었다.
하나는 분명히 말하고 싶다.
혹시 복직 후 2년이 다 되도록 힘든 여성 직장인이 있다면,
당신만 그런 게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해주고 싶다.
여기 그런 사람 또 있다고.
나는 나만 그런 것 같아서,
나만 허우적거리는 거 같아서,
그 외로움과 패배감이 더 힘들었다고...
나는 앞으로 나아지도록 노력하겠지만,
그렇다고 회복을 장담할 수는 없다.
상담소 선생님은 이런 고민들로 가득 찬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셨다.
모든 걸 개인의 노력 부재 탓으로 돌리면 안 된다고,
엄마가 된 기자가, 전처럼 일하기를 바라는 건
사회의 과도한 바람이라고.
그런 사회를 바꿔야지, 그런 사회의 기대에 나를 맞추려고 하면 안 된다고.
자책의 수렁에 빠져있던 나를 그 말이 조금 꺼내 주었다.
아직 완벽히 나오진 못했다.
그리고 그 말이 조금 위로가 되긴 했지만, 아직 완벽히 이해하진 못한다.
나는 사회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나를
여전히 자책하며 매일을 산다.
그래도, 상담을 받기 시작했으니
작은 답이라도 찾겠지.
어디다 하소연할 데도 없고,
솔직히 그냥 속상한 마음에 이런 글을 쓴다.
모든 복직통을 앓고 있는 엄마 직장인들이
함께 이 시간들을 잘 버티어냈으면 좋겠다.
직장에서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