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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보씨 Feb 03. 2024

사라지는 것들이 주는 쓸쓸함

추억의 조각을 담은 사진 한 장

광주 계림동, Copyright 2024. 구보씨(Special K). All rights reserved.



나의 부모님들은 복 중에서부터 근검절약을 타고 나신 듯한 분들이다. 덕분에 우리집에서 비디오를 볼 수 있게 된 것은 내가 수능 시험을 치르고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게 된 때부터였다. 나는 청소년기까지 독서는 좋아했으나 영화 관람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에 부모님이 비디오를 사지 않는 것에 불만을 갖지 않았다. 다만 친구가 녹화해 준 1994년 NBA 올스타전 경기를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을 뿐.






집에 비디오가 생기자 내 일상의 두 가지가 바뀌었다. 첫 번째는 일본 NHK1 채널에서 7시부터 방송해 준 미국프로농구 경기를 녹화하는 일이었다. 좋아하는 팀이나 선수의 경기라도 있는 날에는 녹화한 경기를 몇 번이고 되돌려 보았다.

또 다른 한 가지는 보고 싶은 영화들을 집에서 보는 것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나는 혼자 영화를 본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던 모태솔로였기에 영화관에 가지 않았다. 그러니 보고 싶은 영화가 비디오 테이프로 출시되는 날짜만 손꼽아 기다렸다.

집에서 손가락 몇 번 까딱하는 걸로 수많은 콘텐츠를 볼 수 있는 편리함을 누리고 있지만 가끔은 보고 싶은 영화가 출시되는 날짜를 기다렸다가 비디오 대여점으로 달려갔던 그 시절이 그립다.  모든 것이 편해진 시대에 불편함을 그리워하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하지만 내가 그런 종류의 사람인 것을 어쩌겠는가. 사진을 찍고 나면 바로 확인이 가능한 디지탈 카메라와 스마트폰이 있어도 필름을 사랑하는 '옛날 사람'인 것을.






동네를 한 바퀴 돈다. 노출부터 초점까지 모든 것을 수동으로 조작해야 하는 빈티지 필름카메라를 들고서. 여기저기를 헤집고 다니다가 문을 닫은 지 오래돼 보이는 비디오 대여점을 발견하고, 그 앞에 버려진 소파를 전경으로 한 컷 찍었다. 이제는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비디오 대여점 주위는 다 허물어지고 새로 지어진 아파트가 완공을 기다리고 있다. 주거 환경이 깔끔해지고 편리해지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추억이 주는 위로로 오늘을 살아가는 ‘옛날 사람’에게는 쓸쓸한 마음이 드는 것을 어찌할 수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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