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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보씨 May 23. 2021

눈물겨운 그 이름, 아버지

[영화 리뷰]자전거 도둑 Ladri di Biciclette(1948)

이 리뷰는 영화 전체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원치 않으신 분은 뒤로 가기를 실행해 주시기 바랍니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이후 극심한 경제적 고통을 겪는 이탈리아는 실업자들로 넘쳐난다. 무수한 실업자 중 한 명인 '안토니오 리치'(람베르토 마기오라니 분)는 운 좋게 영화 포스터 붙이는 일자리를 구한다. 하지만 극장주는 반드시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전단을 붙여야 한다는 조건으로 '안토니오'를 고용한다. '안토니오'와 아내 '마리아 리치'(리아넬라 카렐 분)는 고민 끝에 6장의 침대 시트를 전당포에 맡기고 기존에 전당포에 저당잡혔던 자전거를 찾아 온다. 하지만 일을 시작하기 무섭게 누군가 '안토니오'의 자전거를 훔쳐 달아나고, '안토니오'는 어린 아들 '브루노'(엔조 스타이올라 분)와 함께 자전거 도둑을 찾기 위해 로마의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결국 자전거를 훔쳐간 젊은이를 찾게 되지만...







2차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이후 이탈리아에는 로베르토 로셀리니, 비토리오 데 시카, 루키노 비스콘티 등의 주도로 네오리얼리즘 영화가 발달했다. 전문 배우를 캐스팅해서 스튜디오에 대형 세트를 만들어 촬영했던 헐리웃 방식의 촬영이 아니라 비전문 배우를 캐스팅해서 야외에서 주로 촬영하고, 그간 영화에서 많이 보아왔던 관습적인 플롯에서 벗어나서 일상적 인물과 사건을 중시하는 영화제작운동이다.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이탈리아의 경제적인 환경 때문에 고육지책으로 정립된 제작방식이라고 볼 수도 있는 이와 같은 제작방식의 네오리얼리즘 영화의 역사가 길지는 않았지만, 프랑스의 누벨바그 등 후대 영화계에 끼친 영향은 적지 않다.


1948년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이 연출한 <자전거 도둑>은 네오리얼리즘 영화의 명작이다.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대표작이자 네오리얼리즘 영화의 대표작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닌 영화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주인공 '안토니오 리치'가 겪게 되는 하루 동안의 일을 통해 전후 이탈리아 사회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일을 하고 돈을 벌어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안토니오'는 자전거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그의 자전거는 이미 전당포에 저당잡힌 상황이다.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서 돈을 벌어 되찾을 요량으로 전당포에 식구들의 침대 시트를 맡기고 구해 온 자전거는, 그에게는 삶의 모든 것과 다름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영화 포스터 한 장을 다 붙이기도 전에 자전거를 도둑맞는다.



'안토니오'는 아들 '브루노'와 함께 천신만고 끝에 자전거 도둑을 발견하지만 자전거를 훔쳐간 청년은 빈민가에 사는 간질 환자이다. 그가 자전거를 훔쳤다는 증거조차 묘연한 상황인데다 청년의 이웃들인 빈민가 사람들의 비난과 야유 때문에 결국 자전거를 찾지 못하고 무거운 발길을 돌린다. 그러나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자전거가 반드시 필요한 '안토니오'는 결국 잘못된 결심을 하고 아들 '브루노'에게 차비를 주어 먼저 집으로 보낸다. 그러고는 골목에 세워져 있는 자전거를 훔쳐 달아나려고 한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자전거 주인과 행인들, 경찰에게 잡혀서 온갖 멸시와 모욕, 구타를 받게 되고, 마침 전차를 타지 못하고 정류장에 있던 '브루노'는 아버지의 몰락을 목도하게 된다. '브루노'의 모습을 본 자전거 주인은 '안토니오' 부자를 그냥 보내준다. 막막한 가족의 생계와 수치스런 모습을 아들에게 보인 것 등으로 인해 복잡한 심경의 눈물을 흘리는 '안토니오'의 손을 끌어잡는 '브루노'의 뒷모습이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한국어는 외국어의 복수 표현을 단수로 바꾸어 번역하는 경향이 강한 탓에 <자전거 도둑>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지만 사실 원제는 <자전거 도둑들>이다. '안토니오'의 자전거를 훔쳐간 청년과 골목에 놓인 자전거를 훔치려는 '안토니오' 두 명의 자전거 '도둑들'을 나타내는 제목이다. '안토니오'의 자전거를 훔친 것으로 몰린 청년이나 '안토니오' 모두 빈곤한 계층의 사회적 약자이다. 결국 그들이 절도라는 범죄를 저지른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의 천성이 악해서 그렇지는 않다. 단지 가난과 가족의 절박한 생계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가난한 것이, 가족의 생계가 위태로운 것이 그들의 무능력이나 게으름 때문일까?



영화는 초반부에 포스터를 붙이는 일자리 하나를 둘러싼 '안토니오'의 무수한 경쟁자들의 모습과 온갖 물건으로 가득한 전당포 내부의 모습을 통해 자전거 '도둑들'이 왜 그런 범죄를 저지르게 된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결국 개인의 삶은 사회적 환경이나 상황에 좌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안토니오'를 말없이 위로하는 '브루노'의 손길이 더욱 애처롭게 느껴진다. 남편이라는, 아버지라는 이름이 갖는 무게에 짓눌린 가난한 가장을 위로하고 그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은 결국 가족의 이해와 사랑일 것이다. 이 시대의 수많은 '안토니오'들에게 심심한 경의와 위로를 전한다.






뱀발.

이 영화를 모티프로 한 소설가 김소진의 동명 소설 <자전거 도둑>도 일독을 권한다. 서술자인 '나(김승호)'와 실향민 아버지의 일화는 영화 속 '안토니오'와 '브루노'의 이야기 못지 않게 눈시울을 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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