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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보씨 May 25. 2021

민영화와 인간의 범주에 대한 통찰

[영화 리뷰]로보캅 RoboCop(1987)

근미래, 범죄가 판치는 도시 디트로이트의 경찰은 민영화되어 옴니 컨슈머 프로젝트(OCP)라는 대기업이 운영한다. 하지만 부족한 경찰 인력에 비해 강력범죄는 해가 갈수록 늘어간다. 순직한 경찰들이 점점 많아지자 경찰 내부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싹튼다. '디트로이트'시를, 경찰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민영화한 '델타 시티'로 바꾸려고 하는 OCP의 부회장 '딕 존스'(로니 콕스 분)는 로봇 경찰 ED-209를 개발하나 시연장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하고 그 틈을 타 '딕'의 경쟁자였던 '밥 모튼'(미구엘 페러 분)은 '로보캅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그 무렵, 신임 순경 '알렉스 머피'(피터 웰러 분)는 동료 '앤 루이스' 경관(낸시 앨런 분)과 순찰 중 일련의 경찰 사망사건의 용의자 '클래런스 보디커'(커트우드 스미스 분)와 그 일당을 뒤쫓다가 그들에 의해 빈사상태에 이를 정도로 크게 다치고, '밥 모튼'은 죽어가는 '알렉스 머피' 순경을 로보캅으로 개조하기로 하는데.







1987년에 나는 로보트 애니메이션에 푹 빠져있던 '국민학교' 5학년이었다.  당시의 나에게 '로보캅'은 그저 '크고 아름다운' 총을 쏘아대는 멋진 로보트일 뿐이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우연히 영화 <로보캅>을 다시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 영화는 그저 '크고 아름다운' 총을 쏘아대는 멋진 로보트가 나온 그저 그런 SF 영화가 아니라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주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진정한 명작 영화였다는 것을 새삼 느꼈기 때문이다.


 <로보캅>의 배경이 되는 근미래의 '디트로이트'(이후 <로보캅> 영화 속 '디트로이트'는 '디트로이트'로 표시)는 실제 디트로이트 못지 않게 막장 치안의 도시이다. ㅌㅌ영화 속 '디트로이트'의 치안이 무너진 데에는 여러 사회적인 요인들이 있겠지만 중요한 원인 중 한가지는 공권력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경찰이 민영화되었기 때문이다. '디트로이트'의 경찰 서비스는 'OCP'라고 하는 대기업이 인수하였고, 이윤이 우선인 기업의 입장에서 경찰 병력을 늘리는 데 극도로 소극적이었기 때문에 경찰 내부의 불만이 점점 쌓여간다. 


현대 사회에서 비용이나 기타 문제로 사기업이 담당할 수 없는 부분, 예를 들어 공적 인프라나 전기, 수도, 치안, 국방 등의 서비스는 국가가 담당한다. 만약 이윤 추구를 목표로 하는 사기업이  공공 서비스를 담당한다면 제대로 된 공적 서비스가 국민들에게 제공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80년대 자본주의 세계를 휩쓴 신자유주의의 물결은 미국이나 영국 등의 선진국을 중심으로, '효율성'이라는 미명 하에 많은 공적 서비스를 사기업에게 넘기는 민영화를 단행하게 하였고, 그 대가는 국민 대다수의 피해로 돌아왔다. 영화 <로보캅>은 그러한 민영화의 이면을 조소하듯이 보여준다. 'OCP'로 대표되는 탐욕스러운 자본이 로보트 경찰을 도입하려는 이유는 시민들에게 질 좋은 치안을 제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경찰 병력을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돈'을 아끼기 위해서이고, 결국 한 도시를 수익모델로 삼기 위해서이다. 그 결과 경찰의 사기는 더 추락하고, 치안은 붕괴되며, 그로 인해 시민들은 불안에 떨어야만 한다.







'로보캅'은 이름과는 달리, 엄밀히 말해 '사이보그'이다. 뇌와 주요 장기는 인간의 것이고, 팔과 다리 등의 신체 일부를 기계로 대체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들었던 의문이 있었다. 아무리 '알렉스 머피' 순경이 죽어가는 중이었다고는 하지만, 본인 혹은 가족의 동의도 없이 멀쩡한 팔 한쪽마저 절단하면서 사이보그로 만들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로보캅'은 인간인가 기계인가. 기술이 발전하고 인간의 의식이 진보하면서, 과거에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철학적, 윤리적 주제도 우리는 고려해야 한다. 배아복제의 윤리적 문제나 첨단기술로 침해되는 개인의 사생활 문제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거기다가 지금부터라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 바로 인권의 범주를 어디까지 적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지금 당장 <로보캅>에서처럼 사이보그 인간이 나타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가까운 미래 어느 순간에 사이보그 기술로 탄생한 인간 혹은 로보트가 나타난다면 우리는 그를 인간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 <로보캅>은 그 부분에서 생각해 볼 만한 영화이다. '머피'의 기억을 갖고 있는 '로보캅'은 어느 순간 '머피'로서의 자아를 일부분 되찾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이름을 묻는 'OCP' 회장에게 '로보캅'은 '머피'라고 답한다. 자신을 사이보그 로보트인 '로보캅'이 아니라 인간 '머피'라고 인식한다는 의미이다. 영화는 그저 영화일 뿐이니 단순하게 '로보캅'을 인간으로 대우하면 되지 않겠나 생각할 수 있겠지만 현실에서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그때는 단순하게 생각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오늘날은 수많은 영화나 소설, 게임 등을 통해서 사이보그나 안드로이드, 인간형 로보트들도 인간으로 인정할 것인지 문제를 제기한다. 기술의 수준이 오늘날과 비교할 수도 없었던 1987년에 이러한 화두를 던진 것만으로도 <로보캅>은 높이 평가받을 만한 영화라고 할 만하다.






"음~ 치키, 음~ 치키, 마이 네임 이스 로보캅!"

90년대 모 개그 코너에서 '로보캅'을 개그 소재로 이용해서 많은 인기를 끌었다. <로보캅>이 그만큼 많은 이들에게 인기를 끌고 흥행을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단순한 SF 영화로만 <로보캅>을 보더라도 이 영화는 충분히 재미있는 영화이다. 하지만 <로보캅>은 꽤 진지한 철학적 논제를 제기하고, 당시의 사회, 경제적 상황을 비판하는 훌륭한 영화이다. 가벼운 오락거리 영화를 찾는 사람이나 대중성을 뛰어넘는 진지한 영화를 찾는 사람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영화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로보캅>은 명작이라 불러도 전혀 손색 없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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