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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보씨 Jun 13. 2021

생사 길은 예 있으매 두려워하고

묘한 심정이다. 죽음에 반 걸음 앞까지 갔다 온 기분. 우연과 우연이 겹쳐서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면 지금쯤 나는 어떻게 됐을까.






머리카락을 깎을 때가 됐다. 단골 바버샵에 연락해서 시간을 잡았다. 오후 4시. 영화 한 편을 보고 볼일 좀 보면 시간이 얼추 맞을 듯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일이 빨리 끝났다. 바버샵에 도착해 보니 오후 3시 반이었다. 마침 이전 예약 손님이 막 샵을 나서고 있었다. "어, 일찍 오셨네요? 그럼 바로 머리 깎으시죠." 그래서 머리를 다 깎고 나니 오후 4시를 막 넘긴 시간이었다.


다음 일정은 오후 6시에 있었다. 두 시간의 시간이 남았다. 마침 읽던 책이 있으니 카페에서 책을 읽다가 시간에 맞춰 가면 될 듯했다. 그럼 어디 카페에 있다 갈 것인가. 바버샵 근처? 6시 일정이 있는 곳 근처? 한여름 날씨에 시원한 실내가 간절했다. 마침 눈앞에 스타벅스가 보여서 안으로 들어갔다.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다가 5시쯤 자리에서 일어섰다.


버스를 타러 정류장에 갔다. 54번 버스. 가는 길이 유난히 막혔다. 어디에 무슨 일이라도 있나 싶던 그 순간, 지인에게 연락이 왔다. 건물이 무너져서 버스가 건물 잔해에 깔렸다는 뉴스가 떴기에 걱정이 돼서 전화를 했다고 한다. 깜짝 놀라서 전화를 끊고 뉴스를 검색해 봤다. 오후 4시 22분경 광주시 학동 부근에서 철거 중이던 건물이 무너져 정류장에 정차하고 있던 54번 버스를 덮쳤다고 써 있었다. 그 때문에 도로가 그렇게도 막혔던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스타벅스에 들르지 않고 그 인근에 먼저 가 있기로 했다면 그 버스에 내가 탔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머리끝이 쭈뼛 서고 등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하루가 지난 목요일까지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기분이었다.






우리는 늘 영생할 것처럼 세상을 산다. 하지만 삶과 죽음의 갈림길은 우리 곁에 항상 있고, 우리 삶은 늘 그 경계선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브런치에 쓴 이전 글에서도 나는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같은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지만 삶의 과정에서 또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 매체에서 타인의 죽음을 접할 때에도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인 듯 무심히 바라보다가, 막상 그 뉴스나 기사 속에 나올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 때에서야 죽음에 대한 경외감을 새삼 느끼게 되는 것이 우리 삶이 아니겠는가.


토요일 근무를 대충 마무리하고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갔다. 그곳에서 미리 와 있던 3인의 손님들이 그 사고의 원인과 돌아가신 분들의 사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 안전불감증, 사람들의 터무니없는 실수 등, 이 사건의 원인은 무수히 많고 그를 비판하는 의견들 모두 들어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또한 돌아가신 분들 한분 한분 다 안타까운 사연을 갖고 있었다. 나도 이번 사건에 대한 일련의 하고픈 말을 갖고 있거니와 다른 분들의 말과 글로 갈음하고 그저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아직도 병상에 누워계신 분들의 쾌유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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