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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보씨 Jun 28. 2021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 추가시간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형, 목포로 좀 내려와야 쓰겄는디."

동생의 목소리는 젖어 있었다. 한참 일하고 있을 시간에 다짜고짜 전화를 걸고, 울면서 목포에 내려오라는 동생의 말에 큰일이 났구나 싶었다. 아버지가 크게 다쳤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사진을 두 장 보냈다. 머리에서 흘러내린 피로 범벅이 된 옷을 입은, 병상에 누워계신 아버지 사진과 사람의 허벅지 뼈가 저렇게 어긋날 수 있을까 싶은 엑스레이 사진이었다.






아버지가 높은 곳에서 떨어져서 머리에 큰 상처를 입었고 허벅지 뼈가 부러졌단다.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당신께서도 한숨 반 눈물 반의 목소리로, 병원에 와 계신다고 했다. 바로 내려가겠다는 나의 말에 어머니는 이제 수술한다고 하니 일단 기다려보자고 했다. 그때부터 어떤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 시간이나 지났을까. 애타는 기다림 끝에 동생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다고 했다. 다음날 마침 주말이라 목포로 갔다. 일단 눈에 들어온 것은 아버지는 구조물에 고정된 아버지의 오른다리였다. 머리에는 십여 개의 철심이 박힌 채로 꼼짝없이 병상에 누워계셨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런 나를 보고 아버지는 힘없이 손을 건네시며 무어라 말씀을 하셨지만 귀를 가까이 대지 않고서는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자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괜찮아. 울지 마. 바쁠 텐디 뭣허러 내려왔냐."






그로부터 두어 달이 지났다. 아버지는 퇴원하시고 집에 계시면서 통원치료를 받으신다. 온전히 걷지는 못하시지만 보행보조기구에 의지해서 걷기 연습도 하고 계신다. 머리의 수술자국은 거의 아물어서 이젠 흔적도 잘 찾기 어렵다. 어눌해서 귀를 가까이 대고 한참 귀기울여야 알아들었던 목소리도 사고 이전으로 돌아왔다. 추락할 당시 주위에 계신 분들이 돌아가시겠구나 했다던 것치고는 아주 건강하시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나이를 먹어갈수록 지인들 부모님의 부고가 남의 일 같지 않다. 언젠가 나의 부모님들도 돌아가시겠지만 막상 그 일이 닥친다면 내가 담담히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성으로는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지만 심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동생의 눈물 섞인 목소리에 마침내 그 날이 왔구나 생각했지만, 다행히 부자의 연을 이어갈 시간이 좀 더 남아있었나 보다. 언젠가 작별의 시간이 오겠지만 그게 지금 당장은 아니라는 사실은, 아직 이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못한 나에게는 너무 감사한 일이다. 오늘도 나는 다짐한다. 마지막 날에 후회가 조금이라도 덜할 수 있도록 남은 생을 살아야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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