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보씨 Jun 11. 2022

빌어먹을 슈퍼 ‘히어로’!

[시리즈 리뷰]더 보이즈 The Boys(2019~)

슈퍼맨이 사이코패스라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슈퍼 히어로인 줄 알았던 존재가 슈퍼 빌런이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영화 <맨 오브 스틸 Man Of Steel>(2013)에서 '조드 장군'과 싸우는 '슈퍼맨' 때문에 발생한 많은 사상자와 처참하게 파괴되는 도시를 본 '브루스 웨인'은 인간의 능력을 까마득히 초월한, 압도적인 힘을 가진 '슈퍼맨'이 인류에게 위협이 될 상황을 두려워한다. 후속작인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Batman v Superman: Dawn Of Justice>(2016)에서 '브루스 웨인'은 '슈퍼맨'의 유일한 약점인 크립토나이트를 '렉스 루터'에게서 탈취하여 그것을 무기화한다. 그리고 '슈퍼맨'을 궁지에 몰아넣는 데 성공한다. 결국에는 자신의 어머니와 동명이인이었던 '슈퍼맨'의 어머니 이름을 듣고 친구가 되기로 하지만... (미안, 잭 스나이더. '마사' 드립은 어떻게 해도 쉴드 치기 힘드네.)


뭐, 너네 엄마 이름도 마사라고?







슈퍼 히어로가 영화와 드라마 등 많은 컨텐츠에서 대세가 된 지 10년이 훌쩍 넘었다. 슈퍼 히어로는 늘 우리 곁에서 우리와 우리의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 싸운다고 하지만 만약 인간의 힘을 까마득히 초월한 존재가 악인이라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어린 시절, 텔레비전에서 영화 <슈퍼맨 Superman>(1978)을 본 나는 '슈퍼맨'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여담이지만 크리스토퍼 리브는 아직까지도 내 마음 속에 진정한 슈퍼맨이다. Rest in peace..) '슈퍼맨'처럼 하늘을 날고 악당들을 통쾌하게 물리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슈퍼맨'이 지구인들을 몰살하는 악몽을 꾸었다. 그 이후 심각하게, 정말 심각하게 두려워했다. 만약에 '슈퍼맨'이 정의의 편이 아닌 광기 어린 살인마라면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인간들은 과연 그를 막을 수 있을 것인가.


편히 쉬어요, 나의 영원한 슈퍼맨.








어린 시절 나의 두려움과 동일한 문제 인식에서 출발한 영화가 있다. <더 보이 Brightburn>(2019)이다. <더 보이>의 주인공 '브랜든 브라이어'는 우주선을 타고 외계에서 왔고 아이가 없는 부부에게 발견되어 입양된다. 망토를 두르고 눈에서 '히트 비전'을 쏜다. 그는 누가 봐도 슈퍼맨의 안티테제이다. 순수하고 선한 '클라크 켄트'와는 달리 '브랜든 브라이어'는 자신을 키워준 부모마저도 가차없이 죽이는 사이코패스이다. 어렸을 때 내가 두려워했던 슈퍼맨의 모습을 영상화했기에 무척 반가웠으나 딱 거기까지였다. 슈퍼맨이 사이코패스 살인마라면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을 죽일지 보여주는 영화. 적당히 고어하고 공포스러운 영화 말이다.


나도 어릴 적에 빨간 보자기 좀 둘러봤지.








<더 보이즈 The Boys>는 아마존 프라임비디오에서 서비스하는 시리즈이다. 가스 이니스가 그린 동명의 만화가 원작이다. 이 작품은 전통적인 미국의 슈퍼 히어로 장르를 비틀어서 지금의 미국을 풍자한다. 작중에는 다분히 DC코믹스의 '저스티스 리그'를 패러디한 '더 세븐 The Seven'이라는 슈퍼 히어로 집단이 등장한다.


'더 세븐'의 멤버들. 좌측부터 '스타라이트', '딥', '트랜스루센트', '퀸 메이브', '블랙 누아르', 'A-트레인', '홈랜더'


빛을 이용하는 히어로 '스타라이트'와 투명인간 히어로 '트랜스루센트'를 제외하면 나머지 멤버인 '홈랜더'(슈퍼맨), 'A-트레인'(플래시), '블랙 누아르'(배트맨), '퀸 메이브'(원더우먼), '딥'(아쿠아맨) 등은 DC코믹스의 슈퍼 히어로들을 거의 그대로 차용해 왔다. '더 세븐'은 우리가 익히 보아왔던 마블코믹스나 DC코믹스의 슈퍼 히어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더 보이즈>의 세계관에서 슈퍼 히어로들은 선의나 의무감, 희생정신 등 슈퍼 히어로의 덕목이라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들과는 거리가 먼 이들이다. 그들은 그저 인기와 돈을 추구하는 셀럽일 뿐이다. 그들은 우리가 슈퍼 히어로에게서 상상하기 힘든 성폭행, 살인, 약물 등 온갖 막장 짓들을 벌인다. 그러한 범죄를 덮어주고 슈퍼 히어로의 이미지를 만들어주는 곳이 '보우트 Vaught Intl.'라는 다국적 기업이다. '보우트'는 '더 세븐'을 만들고 그들에게 돈을 대 주며 그들의 이미지를 관리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를 통해 온갖 상품들을 만들어내서 이윤을 챙긴다.






하지만 하늘을 손바닥으로 가릴 수는 없는 법. 그들의 실체를 알고 그것을 세상에 알리려는 이들이 있으니 그들이 바로 '더 보이즈 The Boys'이다.


'더 보이즈' 멤버들. 왼쪽부터 '프렌치', '기미코', '빌리 부처', '휴이 캠벨', '마더스 밀크'.



'기미코'를 제외한 멤버들은 그저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그런 그들이 아무리 막장이라고는 하나 어쨌든 인간을 뛰어넘는 능력을 지닌 '더 세븐'에 맞서서 '더 세븐'과 '보우트'사의 추악한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려고 하는 과정이 이 시리즈의 전체적인 플롯이다. 그 과정에서 미국과 전 세계의 온갖 현실들이 풍자의 대상이 된다. 스포츠계의 약물 남용, 미국 내의 기독교 근본주의와 미국 패권주의, 새로운 극우세력의 발흥, 소셜 미디어와 밈(meme) 문화의 부작용, 위선적이고 기만적인 쇼 비즈니스와 거기에 기생해서 돈과 인기를 얻는 셀럽들, 권력을 이용한 성폭력, 인종차별과 성적 소수자 문제 등 현 시대의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풍자한다. 이 시리즈의 매력은 바로 그 점에 있다. 그저 히어로와 빌런이 등장하여 치고 받는 단순한 액션물이 아니라 슈퍼 히어로 장르를 비틀어서 그것을 통해 현재의 문제점들을 풍자하는 것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작품과 녹여낸다. <더 보이즈>는 단순히 슈퍼 히어로 장르의 하위 장르 정도로 치부하고 넘길 작품이 아니라 기존의 어떤 슈퍼 히어로 영화나 시리즈도 하지 못했던 새로운 형식의 슈퍼 히어로 장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묵직한 주제의식과 그것을 표현하는 훌륭한 풍자의 방식 말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이 시리즈의 단점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아마존 프라임비디오라고 하는, 국내에서 잘 이용하지 않는 OTT 서비스를 통해 스트리밍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영상의 품질이나 자막의 수준이 괜찮아서 사실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이 시리즈의 단점은 이 작품의 폭력성이나 선정성의 수위가 꽤 높다는 것이다.(그마저도 원작 만화의 수위보다 낮다는 점을 위안 삼아야 할까.) 아마 처음 본 시청자의 대부분이 시즌 1 첫 화의 3분을 넘기기 전에 큰 충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폭력성과 선정성에 면역력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작품을 참고 보기가 힘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정말 대단한 수작이다. 슈퍼 히어로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보기를 추천한다. 나도 마블코믹스와 DC코믹스의 히어로들을 좋아하고 그들이 등장하는 작품을 즐겨 보는 사람이지만 사실 영웅이 필요한 사회라면 그 사회는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사회가 아니겠는가. 모든 사회가 제 나름의 문제들을 갖고 있지만 우리가 만든 제도와 시스템 내에서 그것들을 해결할 수 있고 해결돼가는 사회가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도 <더 보이즈>는 단순한 오락거리가 아니라 많은 생각할 거리를 우리에게 던져주는 걸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훔쳐보기, 그 뿌리치기 힘든 유혹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